김기주(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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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울산 김씨
출생
1908년 12월 10일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 고장산마을[1]
사망
1940년 12월 24일
전라남도 장성군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기주는 1908년 12월 10일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 고장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광주사범학교 2학년 재학 중이던 1927년 4월 동교 3학년생 하의철 등과 함께 민족차별 교육을 일삼던 일본인 교유(敎諭) 에다(江田)를 타교로 몰아내는데 주동역할을 하였다.

이후 1928년 3월에 강달모, 임종근(林鍾根) 등과 함께 동교 학생 간부로 선임되어 교내 항일학생운동 조직의 확대에 노력하였다. 1929년 3월 졸업을 기해 그를 비롯하여 송동식·홍귀주 등 동교생 14명은 당시 광주읍내 청요리집인 영빈루에 모여 졸업 후의 항일운동에 관한 방도를 협의하였다.

졸업 후 그는 교직으로 나아가 보통학교 훈도로 재직하면서 광주사범 독서회 활동에 참여하고 있던 중 1929년 11월 3일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가하였다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모진 고문을 당하다가 성진회 사건에 연루되어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았으나 항소하여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장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0년 12월 2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김기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2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인근의 금계리와 함께 울산 김씨 집성촌이다. 김동일 전 서울특별시 중구청장과 독립유공자 김종수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