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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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홍귀주.jpg
성명홍귀주(洪貴周)
본관남양 홍씨[1]#
생몰1906년 11월 1일 ~ 1986년 5월 19일
출생지전라남도 동복군 읍내면 축동리
(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축동마을)
사망지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매장지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홍귀주는 1906년 11월 1일 전라남도 동복군 읍내면 축동리(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 축동마을)에서 아버지 홍은보(洪銀甫)[2]와 어머니 신안 주씨 주영락 사이의 4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6살 되던 1911년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917년 동복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인 1918년 중퇴하고 한문 서당에 들어가 《추구》·《십팔사략》·《통감절요(通鑑節要)》등을 배웠다. 이후 신학문의 필요성을 다시 깨닫고 1919년 동복공립보통학교에 재입학하여 졸업했고, 1928년 도립 광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1929년 3월 동교 졸업생 및 재학생 회원 12명과 함께 당시 광주읍내 중국요리점 '연빈루'에 모여 졸업 후 항일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졸업생과 재학생간의 단결을 다짐하였다. 이후 그해 7월에 강달모, 송동식 등 광주사범학교 학생 15명과 함께 수피아여학교 뒷산에 모여 독서회조직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동년 9월, 광주형무소 뒷산에 다시 모여 광주사범독서회를 결성하였다.

광주사범독서회는 전회원을 5개반으로 나누고 각반별로 연구활동을 하였는데, 그는 이러한 독서회 활동을 통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했다. 그러던 1929년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에 가담한 그는 독서회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로 인해 광주사범학교에서 퇴학당했다. 이후 모진 고문을 겪다가 1930년 10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광주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6년 5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홍귀주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당홍계 32세.[2] 1883 ~ 1962. 이명 홍재은(洪在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