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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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02년 2월 1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
(현재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사망
1929년 2월 13일
부산형무소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규직은 1902년 2월 1일 경상남도 동래군 동래면 복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제2상업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7년 봄 동교생인 양정욱·윤호관(尹昊寬)·윤태윤(尹兌潤) 등과 동지적 결합을 맺고, 민족정의를 함양시키고 항일투쟁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그후 동지들을 규합하여 1927년 가을 비밀결사 흑조회로 발전시키는 한편, <흑조(黑潮)>라는 잡지를 간행하였다. 그들은 잡지를 학생들에게 배포하며 매월 정기적으로 회합하여 토론을 가졌다. 이렇듯 김규직 등의 노력으로 흑조회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결과 1928년 6월 전교생이 비교육적인 교사를 배척하며 동맹휴학을 단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규직은 독서회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27년 가을의 자신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조직의 강화와 동지 규합 및 투쟁을 보다 활발하게 전개하기 위하여 종전의 독서회를 발전적으로 해산하였다. 그리고 김규직을 대표로 하는 흑조회(黑潮會) 또는 혁조회(革潮會)를 발족하여 유진흥(兪鎭興)·최장학(崔章學)·어소운(魚小雲)·최명인(崔嗚寅) 등 부산과 동래 지역의 각계 인사들과 연합하였다.

흑조회는 매월 정기 모임을 열고 비밀 월간지를 계속 발행하였으며, 회원들이 학생과 일반인을 각각 분담하여 맡아 항일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흑조회는 1928년 6월 18일부터 부산제2상업학교에서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배일 동맹 휴학을 하였다. 이 무렵 김규직은 소년 운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조선소년총연맹 중앙 집행 위원, 경남소년연맹 건설 위원 및 중앙 상무 서기, 동래소년동맹 위원장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그러던 1928년 겨울에 부산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정보를 알아보러 일본에 다녀오던 흑조회 회원 양정욱을 연락선에서 검거하였다. 양정욱을 취조하던 일제 경찰은 압수한 일기장에서 12명의 흑조회 간부 명단을 찾아냈으며 결국 김규직을 비롯한 흑조회 간부 7명이 구속되었다. 구속된 흑조회 간부들은 치안 유지법 위반 혐의로 동래경찰서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했다. 이때 그들을 고문한 이가 바로 악명 높은 한인 경찰 노덕술이었다.

결국 김규직은 노덕술의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다 동래경찰서에서 부산형무소에 옮겨져 예심을 받다가 1929년 2월 13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김규직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