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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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홀의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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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하키 명예의 전당 로고.svg
하키 명예의 전당 헌액자(1975)







파일:NHL 로고.svg NHL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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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NHL 로고.svg 1961 스탠리 컵 파이널 우승



파일:NHL 로고.svg NHL All-Star Game(1955, 1956, 1957, 1958, 1960, 1961, 1962, 1963, 1964, 1965, 1967, 1968, 1969)



파일:NHL 로고.svg NHL First All-Star Team(1957, 1958, 1960, 1963, 1964, 1966, 1969)



파일:NHL 로고.svg NHL Second All-Star Team(1956, 1961, 1962, 1967)










파일:NHL 로고.svg 보유 중인 NHL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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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텐더 연속 출장 최장 기록(502경기)




파일:글렌 홀.jpg

시카고 블랙호크스 No.1
글렌 헨리 홀
Glenn Henry Hall

출생
1931년 10월 3일 (92세)
[[캐나다 자치령|

캐나다 자치령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자치령"
행정구
]]
서스캐처원주 훔볼트
국적
[[캐나다|
캐나다
display: none; display: 캐나다"
행정구
]]

종목
아이스하키
신체
180cm, 86kg
손잡이
왼손
포지션
골텐더
입단
1949년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입단
소속
디트로이트 레드윙스 (1952~1957)
시카고 블랙호크스 (1957~1967)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1967~1971)
별명
Mr. Hockey





1. 개요[편집]


캐나다의 前 아이스하키 선수. 골텐더 50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이라는 흠좀무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디트로이트 레드윙스[편집]


주니어 리그를 거쳐 1949년에 레드윙스에 입단했지만, 마이너를 전전하다 1952년이 되어서야 백업 골텐더로 등록되면서 데뷔하게 되었다. 1952년에 팀이 우승할 때도 백업으로 대기만 하다가 우승을 거뒀다. 스탠리 컵에 홀의 이름도 새겨지긴 했지만, 테리 서척이라는 훌륭한 골텐더의 존재에 그의 자리는 없었다.

1955-56시즌이 되어서야 서척이 보스턴 브루인스로 이적하면서 주전을 꿰찼고, 늦은 나이에 풀타임 시즌 데뷔하여 첫 시즌부터 70경기 전 경기 출장으로 칼더 메모리얼 트로피와 세컨드팀에 선정되는 활약을 펼쳤다. 홀은 풀타임 2년차에도 전경기 출장을 기록하면서 퍼스스팀 선정되었음에도 NHL 선수협 창설 문제로 찍힌 테드 린지와 함께 도매금(...)으로 시카고 블랙호크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2.2. 시카고 블랙호크스[편집]


호크스 이적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전 경기 출장을 이어나갔고, 1961년에는 자신을 팽한 레드윙스 상대로 커리어 첫 스탠리 컵 우승을 거두는 기쁨을 만끽했다. 1962년 11월 7일 보스턴 브루인스전에 등 문제로 연속 출장 기록은 8시즌에 걸쳐 진행된 502경기[1]에서 중단되었지만, 베지나 트로피를 수상으로 커리어 첫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쁨을 누렸다.

시카고 시절에 5회의 퍼스트팀과 3회의 세컨드팀에 선정되는 활약에도 우승은 단 한 번에 그쳤다.

2.3. 세인트루이스 블루스[편집]


만 36세가 되던 1966-67시즌에 커리어 두 번째 베지나 트로피를 수상했음에도 오리지날 식스에서 추가로 창단하는 확장 프랜차이즈의 확장 드래프트에 보호 선수로 묶이지 않아 세인트루이스 블루스에 지명되어 이적하게 되었다.

베테랑을 수급하여 바로 대권에 도전하게 된 블루스는 홀의 활약으로 창단 첫 해부터 스탠리 컵 파이널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상대는 올스타급 팀을 유지하여 항상 대권에 도전하던 레 카나디앵 드 몽레알. 일방적인 승부가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0승 4패로 스윕당하긴 했지만 전부 1점차 승부가 이어지면서 대등한 싸움을 벌였고, 비록 패배했지만 홀은 우승 때도 수상하지 못한 눈물 젖은 콘 스마이스 트로피(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게 되었다.

다음 해에는 결승 상대팀의 레전드 골텐더 자크 플랑트가 블루스로 이적하면서 1968-69시즌에 홀과 나누어 출전했다. 둘 다 나이는 들었지만 이름값은 어디 안가서, 홀은 커리어 3번째, 플랑트는 커리어 7번째 베지나 트로피를 수상했다. 그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1969-70시즌에 18경기 출장하면서 복귀했고 팀을 다시 한 번 스탠리 컵 파이널로 이끌었지만, 파이널 4차전 오버타임에 돌입한지 40초만에 바비 오어의 전설적인 슈퍼맨 공중부양 세레머니[2]의 희생양이 되었다.

1970-71시즌에 30경기 출장하고 진짜로 은퇴를 선언했다. 1975년에 하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두 번째 우승의 꿈은 1989년 캘거리 플레임스의 골텐딩 코치로서 이루게 되었다.

3. 기타[편집]


  • 경기 전마다 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는 오렌지 주스를 한 잔 마셨다고.

  • 버터플라이 스타일(Butterfly Style)[3]의 선구자로 알려져있다.

  • 고향 서스캐처원주 훔볼트市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글렌 홀 드라이브).

[1] 현대 하키에서 주전 골텐더만 주구장창 내보내는 팀은 없어서 절대로 깨지지 않을 기록 중에 하나이다. 더군다나, 이 당시에는 골텐더 마스크나 헬멧도 쓰지 않던 시절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부상 하나없이 쉬프트도 하지 않고 출장을 이어나간 것이 대단할 따름.[2] 파일:external/sperryhockey.org/Bobby-Orr-the-goal.jpg
사진 좌측의 골텐더가 홀이다.
[3] 낮게 들어오는 퍽을 블록하기 위해 무릎을 전방으로 모아 다리를 오므리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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