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 카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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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glen-kuiper-athletics.jpg

글렌 앨런 카이퍼
Glen Alan Kuiper

출생
1963년 5월 20일 (60세)
위스콘신 주 러신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학력
인디언 힐스 커뮤니티 칼리지
신체
188cm / 81kg
프로입단
1982년 1월 드래프트 10라운드 (전체 243번 / CIN)
캐스터
파일:NBC 로고.svg NBC Sports California (2004~2023)[1][2]

1. 개요
2. 경력
3. 여담



1. 개요[편집]


미국의 전 야구선수이자 스포츠 캐스터. NBC 스포츠 캘리포니아에 소속되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경기 중계를 맡고 있다. 위스콘신 주 레이신 출신이며 제일 큰 형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목소리 두에인 카이퍼이다.


2. 경력[편집]


1982년에 신시내티 레즈에 지명받았으나, 대학 진학을 위해 지명을 포기했다. 1985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 입단하였고, 1986년에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마이너 리거로 활동하였다. 두 시즌간 산하 로우싱글A팀에서 내야수로 활동하였고, 성적은 79경기 208타석, .250/.345/.267이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 재입학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지역방송의 마이크를 잡으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만의 시그니처 콜은 딱 3개인데, 다음과 같다.

"(투수이름) kicks and deals, and we're underway..." 경기 시작을 알리는 첫 투구 시작 시
"And that baby's gone!" 홈팀이나 원정팀이 홈런을 쳤을 때
"...and that's the ball game." 경기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갔을 때

홈런콜이나 경기종료 콜은 형과 매우 흡사한 점이 있다. 아무래도 방송 생활을 먼저 시작한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 추측된다.

입사한 지 20년이 가까워지는 2021년까지도 댈러스 브레이든과 함께 오클랜드의 거의 모든 경기를 생중계한다.[3]

하지만 2023년 5월 6일에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당시 캔자스시티 원정경기 동행중이었는데, 실제로 그는 니그로리그 박물관을 견학까지 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는 흑인을 비하하는 단어인 'nigga'를 어설픈 발음[4]으로 뭉개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그 즉시 NBC Sports California는 그의 출연을 즉시 중지시켰다. 어찌보면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했다가 밥줄이 끊어진 톰 브래너먼과 유사한 케이스가 될 듯 하지만, 오랫동안 팀에 공헌한 공로를 인정받는다 하면 엄중 경고로 끝날 가능성도 있는 상황.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NBC Sports California는 사안이 엄중하다고 봤고, 결국 그를 해고하고 말았다. [5]


3. 여담[편집]


파일:duane&glen.jpg
  • 누가 사이 돈독한 형제 아니랄까봐 두 형제의 집이 캘리포니아 주 댄빌[6]이다. 실제로 이 두 형제는 야구장 안에서는 엄청난 프로의식으로 무장하여 본업에 충실한다. 하지만 반대로 구장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손에 손잡고 사이좋게(...) 집으로 간다고 한다. 참고로 두 형제의 집은 고작 5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고하며, 경기가 없는 날에는 가족끼리 모여 식사 등을 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 2021년 6월 8일(현지시간), 지역 네트워크 인터뷰에서 밝히길 형인 두에인 카이퍼가 체내 염증 제거 시술을 받기 위해 중계부스를 비운다는 말에 마음이 쓰였는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도 많이 걱정이 가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면서 그저 형의 쾌유를 기원하는 말만 전할 수 밖에 없었다고 눈시울을 붉혔다.[7] 그리고 한달 반 후인 7월 24일(현지시간),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원정경기 중계 시작 직전까지 통화를 했다. 항상 건강 챙기라며 훈훈하게 주고받은 것은 덤. [8]

  • 오랫동안 중계 파트너로 함께한 해설자 레이 포시[9]가 2021년 8월 5일 16년간 암을 투병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휴식기를 갖는다고 발표하자 진심으로 슬퍼하며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트윗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바람에도 포시는 10월 13일, 향년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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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로 방송 커리어는 1992년에 시작했다.[2] 후술한 사유로 인해 2023년 5월 6일까지 근무.[3] 후술할 레이 포시의 사망으로 인해 두 사람이 중계하는 비중은 더 커지게 되었다.[4] 원래 Nigro라는 단어를 써야 하는데, 실언이었다고 한다.[5] 후임은 라디오 중계 아나운서인 빈스 콘트레니오와 새크라멘토 킹스산호세 샤크스 중계의 아나운서인 자니 도스코가 맡게 되었다.[6] 샌프란시스코 광역권에 속한 작은 도시[7] 실제로 환자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쾌유를 기원하는 말이 큰 힘이 된다고 한다.[8] 8월 20일부터 22일까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3연전이 있다. 그때 보자고 했다고...[9] Ray Fosse (1947~2021),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포수 부문 골드글러브 2차례 수상하면서 전성기를 보냈다. 하지만 1970년 올스타 경기에서 피트 로즈에게 홈플레이트 충돌 이후 기량이 하락(1971시즌에는 부상 후유증을 달고 살면서도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하여 여러 팀을 옮겨다녀야 했다. 그래도 4개 팀(클리블랜드, 오클랜드, 시애틀, 밀워키)에서 12년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