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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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인물 평가
2.1. 능력 및 성격
2.1.1. 명군
2.1.2. 왕자 시절
2.2. 비판
2.2.1. 남편으로서
2.2.2. 아버지로서
3. 모티브


1. 개요[편집]


만화 의 등장인물이자 만악의 근원. 휘(諱)는 한 혹은 원.[1]

외전에서 나온 과거 모습은 아들인 이신보다 훨씬 자유분방했다. 본인의 말로도 싸움꾼이었다고 한다.

왕위를 원치 않았으나, 죽은 장남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왕권 강화를 외치는 이율과 권력을 쥐게 될 맏며느리를 염려한 부왕의 강압 때문에 억지로 계승했다.


2. 인물 평가[편집]



2.1. 능력 및 성격[편집]



2.1.1. 명군[편집]


선왕은 억지로 세손인 이율을 밀어내고 왕위를 물려받게 해놓고 단단한 기반을 닦아놓진 않았는지, 종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회의 도움으로 왕위에 올랐다고 언급된다. 그럼에도 전혀 왕위가 위태롭지 않다. 심지어 초반부 언급으로는 국민적 존경과 애정이 상당하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탄탄한 정통성을 가진 조카어린 나이에 즉위할 상황이었는데[2], 대군이 세손인 조카를 밀어내고 왕이 되었고[3], 그 아들이 세자로 있음에도 효종(조선) 대의 예송논쟁 같은 정통성 논란이 없으며, 되려 국민들은 이 부자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후반부에서 국왕이 선왕의 유고와 이를 감춘 자신의 과오를 밝히면서 자신은 이 유언을 이행할 생각이 없으며, 원한다면 자신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이율에게 양위하겠다 하지만 국민들은 국왕과 그의 뜻을 지지한다. 왕으로서 능력이나 역량 자체는 굉장히 좋은 듯.

머리도 굉장히 좋다고 하며, 대비 등의 인물이 무서워하거나 경계한다. 그러나 성격을 많이 죽이고 있다. 연이은 이율과 대비, 종친회, 의회의 통수와 사건사고로 단단히 빡쳤는지 결말부에서 여태 죽이고 있던 싸움꾼 시절 성격이 다시 나올 것임을 암시했다.

2.1.2. 왕자 시절[편집]


형인 의강세자가 왕권 강화를 빌미로 자신의 여자친구와 거래해서 청혼했음에도 이를 감내했다. 결혼 전에는 확실히 의강세자와 사이가 좋았었더라도 충분히 증오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형제애는 여전했는지, 마지막까지 쓴소리 없이 형의 유언(이율을 왕위에 올려달라는 것)을 들었다.

국왕인 아버지가 세자위도 왕위도 싫다던 그를 억지로 책봉다고 자책한 것을 보면 정말로 왕위에 욕심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손자인 이율의 사상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종친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그를 억지로 세자위에 책봉했다. 결국 세자가 되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의회의 지지를 얻어 기반을 닦아놨다. 왕위에 오르고 권력이 전혀 위태롭지 않았던 것을 보면 왕자 시절에도 정치 능력이 좋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율을 왕위에 올려달라는 형의 유언을 지킬 수 없는 것에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스스로를 합리화시켰지만, 아버지가 의강세자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죽기 전에 유언으로 말을 바꿔서 이율에게 양위하라고 하자 충격을 받았다. 세자가 되고나서 항상 자신을 합리화했던 명분이 단숨에 무너지자, 아버지의 유언을 단순히 한순간의 변덕이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후에 아들에게 왕위를 포기해달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죄책감을 가지게 된다.

결국 아버지와 형 때문에 피해를 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입장임에도 이기적이지 못했다. 즉, 효자이자 좋은 동생이었다.[4]

2.2. 비판[편집]



2.2.1. 남편으로서[편집]


아내를 외면하는 것에 일말의 죄책감은 있는지, '빈궁은 자신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다'는 중전의 말에 반응을 보이거나, 그렇게 이신을 핍박하는 와중에도 중전이 만류하면 그만둔다. 이신의 폐세자를 논하자 중전이 아예 자기도 폐비시키라 하거나, 공식 석상이 아니고선 얼굴 보기 싫다고 하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몇 년째 부부 사이가 영 좋지 않았으며, 술김에 중전이 늦둥이를 임신했을 동안에도 교태전을 거의 찾지 않았다. 심지어 초반부에 나온 걸 봐서는 중전이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 후반부에 개과천선하기는 한다지만, 과거 행적이 워낙 화려하여 결국 중전이 호구 내지는 보살이다.

제주도에 다녀온 후로부터는 중전과의 사이가 좋아지는데, 마지막 권에 중전을 닮아 까칠한 막내 공주님을 보고 싶다고 말한 후, 침전으로 데려가며 셋째 아이를 만들 것을 암시한다. 국왕의 바람대로 중전이 딸을 낳는다면 엄청난 딸바보 아버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2.2. 아버지로서[편집]


아들 부부의 불화 원인을 제공한 적도 몇 번 있다. 특히 채경의 할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과 중전이 이선을 낳으려 할 때가 겹쳤다. 이 때 채경을 친정에 보내달라고 이신이 부탁하자, 빈궁마저 내 눈에서 나게 하고 싶냐며 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한다. 이 말은 동시에 아들인 이신은 이미 '자신의 눈 밖에 난 자식이다'라는 것 역시 내포하고 있을 뿐더러, 그냥 시아버지가 아닌 의 발언이므로 말의 경중 또한 차원이 다르다. 결국 부원군이 세상을 떠났으며, 이로 인한 책임은 이신에게 돌아갔다.[5] 기어이 이신을 폐위시키고 저위에 오르게 된 이율이 죄 지은 어머니를 구제해달라며 찾아오자,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줄곧 친아들을 외면하며 지위마저 뒤흔들어온 제 행각의 영향을 생각하지는 못했는지, 이신이 '이율이 제 이복형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발언을 했을 때 당황하거나, 중전이 이율에게 협박당한 사실을 알았을 때 왜 자신에게 말하지 않았냐고 한다. 아들은 미워했지만,[7] 며느리만큼은 예뻐했다. 단, 며느리가 아들의 약점인 것을 이용해 견제하기도 했다. 그보다도 더 예뻐한 것이 조카다.[8] 아버지로 인해 자식이 병을 앓을 정도다.[9]

대비전 방화사건 때에는 이신을 도청하여 짜깁기된 음성을 바탕으로 그를 방화범으로 몰아가며 직접 불러 몰아세웠다. 게다가 그 통화는 원래 그가 대비와 간통한 별장[10]을 뜯어 고쳤다는 내용이었다. 초반부에서 아들을 자신과 달리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으나 결국 예의 없게 자랐다고 언급하는데, 점점 밝혀지는 행적을 보면 아들을 나무랄 수 없는 수준이다. 애초에 이신이 그렇게 된 주요 원인이다.


3. 모티브[편집]


  • 아들사도세자소현세자 등 부모, 특히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은 왕자가 모티브라고 밝혀진 것으로 보아, 영조인조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작중에서도 아들과의 관계를 두고 영조사도세자를 다시 보는 것 같다고 언급된다.[11]

  • 아들의 목숨은 해하려 하지는 않았으나 차별 대우하는 모습은 숙종하고 겹치고 며느리만큼은 꽤 아꼈던 것은 영조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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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둘 다 본편에 언급되었다.[2] 작중 이율은 세자적자로서 원손-세손 루트를 탄지라 정통성은 차고 넘쳤다. 그 아버지조차 정통성에 문제 없는 적장자였다. 그러나, 선대 왕은 아들 부부의 사상과 그것을 같이 외치는 어린 손자, 그의 뒤에서 수렴청정하며 권력을 휘두를 맏며느리를 걱정했다. 단종은 세종대왕이 따로 신하들에게 안위를 맡길 정도로 걱정한데다, 소헌왕후현덕왕후가 살아있었더라면 수양대군에게 그런 비극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예측이 있다. 그와 달리, 이율은 왕인 할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며, 대왕대비와 어머니 모두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를 밀어내고 왕이 된 숙부는 권력욕이 없는데다 세자가 되라는 부왕(父王)의 명을 거부했음에도 억지로 즉위했다. 정통성 넘치는 조카와 대군인 숙부라는 점은 같지만, 처한 상황은 완전히 대비된다.[3] 전 버전에서는 링크가 세조, 예종으로 되어 있었으나,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것이 아니라 형의 급사와 조카의 어린 나이, 게다가 부왕이 그 조카를 외면한 덕분에 왕이 된 것이기에 효종이 더 적절한 예시이다.[4] 형이 죽고 나서 자신의 옛 연인이었던 형수와 잠시 불륜 관계가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5] 끝까지 신채경은 이 일의 전말을 모른다. 그저 '이신이 자신에게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했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쩌겠나'에 가깝다.[6] 이 부분에서 내적으로 미워한게 아니라는건 은연중 드러나는데 신과 율의 씨름 시합 이후 율에게 술잔을 받으며 왜 세자인 신에게 인사를 올리지 않았냐며 신이에게 어떻게 하던 그건 국왕인 나의 일이며 네가 그러는것은 하극상이고 지금 세자는 율이 네가 아니라 신이임을 명심하라며 나무란다.[7] 작중 언급으로는 정말 미워한 건 아니다. 그러나 잔인하게 냉대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왜 왔냐며 쫓아내기도 하며[6], 채경이 이신을 제발 조금만 더 예뻐해주면 안되냐고 빌고 나서야 가까스로 자선당을 찾았을 정도다.[8] 내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공적으로는 대놓고 아들을 냉대하고 이율을 총애했다. 왕실 행사에서 이신을 쫓아낼 때에도 그 옆에는 이율이 있었던 적이 있으며, 채경의 석고대죄 때에도 이율이 나서자 채경을 용서했다. 종친들 앞에서 폐세자를 공론화하기도 했다. 묘사로는 애초에 살가운 부자 사이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최악도 아니었다고 한다. 너무 노골적이라 종친들이 이율이 세자가 되겠다며 단체로 축하 인사를 가는 등 이신을 대놓고 얕볼 정도였다.[9] 이신은 지병으로 스트레스성 위염을 앓는데, 스트레스에 노출될 때마다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구토한다. 그런데 대왕대비가 병의 원인을 아버지인 왕에게 돌리는 발언을 했다.[10] 대대로 세자빈에게 물려지기에, 머지않아 채경의 소유가 될 별장이었다. 그 곳에 대비와 국왕이 벌인 부정의 증거가 적나라하게 남아있었다. 먼저 세자의 소유가 되므로 이신은 어린 나이에 그 사실을 접했다는 것이며, 그것들을 모아 자신이 보관하고 있었다. 이신의 대사에서는 '그 지저분한 연서들'이라 언급되며, 숨길거면 제대로 숨겼어야지 그게 뭐냐고 대비를 힐난한다.[11] 아버지로 인해 아들이 병을 얻었다는 점, 차남이라는 점, 왕이 될수 없었지만 지지자들의 도움으로 왕이되었다는 점을 볼때 영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