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도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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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도극장.png

1. 개요
2. 역사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을지로4가 310번지에 소재했던 극장. 존속 시절 운영사는 (주)국도극장(현 국도관광개발(주))이었다.

현재는 그 자리에 베스트웨스턴 프리미어 호텔국도가 들어서 있다.


2. 역사[편집]


일제강점기 전당포로 돈을 번 일본인 미망인 다무라 미네(田村みね)가 2층 목조건물 황금좌(黃金座)를 신축 후 다시 콘크리트로 개축하여 운영했다. 1917년 일본인 도쿠나가 노이치로(徳永態一郎)가 임차하여 동아구락부로 개칭했다가 다시 황금좌로 2년간 경영 후 고인문(高仁文)이 1년간 경영했다. 이후 조선극장 사장이자 무성영화 '춘향전'을 제작했던 일본인 하야카와 마스타로(早川増太郎)가 1년간 경영했고, 요시모토흥행(吉本興行)이 인수하여 경성보총(京成寶塚)극장[1]으로 운영하던 중 1945년 3~4월경 화재로 폐관했다.

광복 후 김동렬이 신축하여 국도극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1946년 5월 28일 개관했다. 개관 알림 광고 개관 피로 공연으로 조선악극단의 공연이 펼쳐졌다.

미워도 다시 한번, 별들의 고향,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등 한국 영화 대표작들이 거쳐갔으나, 1990년대 멀티플렉스에 밀려 쇠퇴하기 시작했다.

1999년 9월말 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0월 4일 서울시는 국도극장을 포함해 역사성을 띤 근대 건축물 보전을 위해 재개발 금지와 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뒤늦게 발표했지만 이미 시작된 철거작업을 막을 수 없었는지 그 해 연말에 조용히 철거가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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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칭하여 성보(城寶)극장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