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각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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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골각문자-갑골문자-金-篆-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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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에서 제시한 이미지

1. 개요
2. 특징
3. 국내 보도
4. 논란
4.1. 한자한민족이 만들었다?
4.2. 중국이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루었다?
5. 같이보기



1. 개요[편집]


골각문자는 2005년 중국 산둥성의 창러현에서 여럿 발견된 문자이다. [1]



2. 특징[편집]


문자의 모양과 뼈에 새겼다는 점에서 갑골문자와 유사하다.

갑골문자와의 차이점은 우선 새긴 뼈가 갑골문자는 보통 거북이 등딱지에 반해 골각문자는 소의 견갑골이나 사슴뼈 등 새긴 뼈의 종류가 다양하고, 점 치기의 용도의 갑골문자에 반해 골각문자는 사람들 사이의 기록의 용도였다.

골각문자를 발견한 류펑쥔(刘凤君) 교수는 골각문에서는 다른 갑골문 보다 한 줄당 포함된 글자가 더 많고, 또한 문자의 배치가 문법적으로 조합된 조합자군임[2]과 생성 시기[3]를 근거로 골각문이 한문의 시초라고 주장했다.


3. 국내 보도[편집]


중앙일보에서 2008년, 골각문자에 대해 보도했고 당시 산둥성에서 (한민족이 포함된) 동이족이 거주하였기에 '골각문자는 동이족의 문자일 것이다'라는 주장[4]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중앙일보의 보도 이래로 골각문자에 대한 연구 근황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아 진위여부가 확실하지 않기에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문자는 아니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골각문자에 대한 글이나 블로그의 출처가 거의 중앙일보의 보도일뿐일 정도로 골각문자에 대한 정보가 중앙일보의 보도된 내용 외에는 전무하다.


4. 논란[편집]


골각문자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적은데에 비해 감춰진 고대 역사를 밝혀낼 가능성이 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자인지라 여러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궤변을 내놓으며 허무맹랑한 주장을 제시하고 이를 맹신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왜곡된 주장을 거르고 판단하기 위해선 주장에 대한 근거와 출처가 타당한지를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4.1. 한자한민족이 만들었다?[편집]


일부 환빠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골각문자는 동이족이 만들었다라는 가설을 정설이라 받아들이고 심지어 동이족을 한민족과 동일시하여 한민족이 한자를 창시했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제대로된 역사학적 논리[5]에 기반하지 않은 과대해석에 가깝기에 역사학적 검증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골각문자에 대한 대부분의 블로그가 이러한 주장의 다른 블로그를 아무 사실 검증없이 무작정 베끼며 근거를 조금씩 수정하며 정설인 것처럼 말하기에 골각문자를 처음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리 주장이 역사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더라도 여기저기서 주장하는 것을 보고 이가 검증된 사실이라고 오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골각문자에 대한 블로그 뿐만 아니라 다른 글들을 찾아볼 때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아 판단해야 한다.(나무위키의 문서도 예외없다.)


4.2. 중국이 인류 최초의 문명을 이루었다?[편집]


중국 내에서도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잘 모르는 문자지만 다수의 중국인들이 골각문자가 중국 본토에서 출토되었으니 일단 엄연한 중국의 문자라고 못 박아두고, 4000~4500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점을 근거로 중국이 세계 최초 문명을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중국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서도 이를 당당하게 주장한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은 자문화 중심주의에 기반하여 섣부르게 내린 결론이다. 특히 현 중국 본토에서 발생하였고 오랫동안 한족들이 사용해왔으니 무조건 중국의 문화(한족의 문화)라고 여기는 행위는 동북공정의 논리와도 일치한다.

5. 같이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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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0~80년대에도 이미 여러 골각문자가 발견되곤 했지만 당시 학계에서 주목 받지 못했다. 후에 류펑쥔 교수가 다시 다량의 골각문자를 발견하며 본격적으로 연구가 시작되었다.[2] 골각문자가 기록의 용도였음을 알 수 있다.[3] 골각문자는 룽산 문화 발생 시기, 갑골문자는 그 후인 상주시대 때 생성되었다.[4] 류씨의 주장이라고 언급하는데 여기서의 류씨는 류펑쥔 교수이다.[5] 환빠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은 이 주장에 대한 근거로 주로 각 문자의 음과 한국어의 한자음 또는 고유어 발음의 유사성을 가져오는데 대부분 이러한 비교는 각 어휘의 어원과 발음의 변천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끼워 맞추기식 억지 근거이다. 애초에 서로 비슷한 음운이 많은 웬만한 언어라면 적지 않은 어휘를 끼워 맞출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