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엔유 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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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조 제5대 천황
고엔유 덴노
後圓融天皇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75px-Emperor_Go-En%27y%C5%AB_detail.jpg

출생
1359년 1월 11일
북조 야마시로국 교토 일조동원전
(現 교토부 교토시)
사망
1393년 6월 6일 (향년 34세)
야마시로국 교토 소천선동어소
(現 일본 교토부 교토시)
능묘
후카쿠사북릉(深草北陵(심초북릉)
재위기간
북조 제5대 천황
1371년 4월 9일 ~ 1382년 5월 24일
북조 상황

인세이

1382년 5월 24일 ~ 1392년 10월 21일
일본 상황

인세이

1392년 10월 21일 ~ 1393년 6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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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통
지묘인통(持明院統(지명원통)

오히토(緖仁(서인)
부모
부황 고코곤 덴노
모후 산조 켄시
형제자매
14남 3녀 중 차남
배우자
산조 사다코
자녀
3남 2녀
종교
불교
법명
코죠(光淨(광정)
원호
고엔유인(後圓融院(후원융원)
시호
고엔유 덴노(後圓融天皇(후원융천황)
연호
오안(應安(응안, 1371년 ~ 1375년)
에이와(永和(영화, 1375년 ~ 1379년)
고랴쿠(康歷(강력, 1379년 ~ 1381년)
에이토쿠(永德(영덕, 1381년 ~ 1382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일본 난보쿠초 시대 북조의 제5대 천황으로 지묘인 황통이었다. 그를 옹립한 무로마치 막부의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대립했다.


2. 생애[편집]


본래 황통 계승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천황이 되기 좋은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1371년에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와 호소카와 요리유키의 지지를 얻어 천황으로 즉위하게 되었다. 요시미츠의 지지로 즉위했고, 실권은 무로마치 막부가 쥐고 있었지만 교토 조정의 수장이었던 고엔유 덴노는 권력을 놓고, 요시미츠와 신경전을 벌였다. 후궁인 산조 타카코의 아버지인 산조 기미타다가 덴노의 관할인 교토의 토지를 손에 넣기 위해 요시미츠에게 간청한 것에 화가 나 타카코에게 앞으로 말도 안하고 얼굴도 안보겠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

고코마츠 덴노의 즉위식이 가까워지자 즉위식 실시를 둘러싸고 요시미츠 및 니조 요시모토와 대립하는 등 천황과 막부 간의 갈등이 깊어졌다. 또한 산조 타카코와 요시미츠 사이의 밀통을 의심하여 타카코의 등에 칼을 휘둘러 부상을 입혔고, 총애하는 구여인 아제치노 츠보네와 요시미츠의 밀통을 의심하여 궁에서 내쫒았다. 거리에는 요시미츠가 고엔유 덴노를 멀리 유배시키려고 한다는 소문이 돌았고, 막부의 사신이 거처로 오자 천황은 자살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모후인 주시가 말려 자살 소동은 잠잠해졌지만 천황의 권위는 밑바닥으로 추락해버렸다.

1393년, 고엔유 덴노가 붕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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