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여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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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문서 : 용재총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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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승
2.1. 용재총화에 기록된 이야기
2.2. 조선왕조실록 中 성종실록에 기록된 이야기


1. 개요[편집]


고수여칠(枯瘦如漆: 말라 붙어 검게 칠한 모양 같다는 뜻)은 생김새는 뼈다귀로 된 다리로 걸어다니며 종이 치마를 두르고 있고, 상체는 가리고 있거나 보이지 않아 하체만 보이는 형상이다. 늙은 여자의 목소리를 내며, 사람의 밥과 반찬을 다양하게 빼앗아 먹는다. 조선 때 이두가 자기 집에 나타나서 고생했다고 한다. 특징으로는 사람의 말을 할 수 있는데, 주로 죽은 가족이나 친척의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집에 들어와 음식을 먹어치우거나,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며, 불빛을 내기도 하고 기와나 돌을 던지는 등 인간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한다.


2. 전승[편집]



2.1. 용재총화에 기록된 이야기[편집]


『용재총화』에 기록된 고수여칠 이야기-
사문(斯文)[2] 이두(李杜)라는 사람이 호조 정랑(戶曹正郞)이 되었는데, 집안에 문득 귀물이 들어와서 나쁜 짓을 하므로, 그 말소리를 들으니 죽은 지 이미 10년이나 된 고모[叔姑]의 소리였다. 생산하는 작업을 일일이 지휘하여 비록 아침저녁으로 밥을 바칠 뿐 아니라, 무릇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모두 찾으며 조금이라도 뜻을 어기면 몹시 노하였다. 수저를 잡는 것과 밥을 드는 것은 볼 수 없으나 찬음(饌飮)[3]은 자연히 없어졌다. 허리 위는 보이지 않으나 허리 아래는 종이로 치마를 삼았으며, 두 다리는 여위어 마치 칠(漆)과 같아 살은 없고 뼈뿐이었다. 사람들이 묻기를, “다리가 어찌 이와 같으뇨.” 하니, “죽은 지 오랜 지하 사람이 어찌 이와 같지 않겠느뇨.”라고 대답하였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리치려고 빌었으나 되지 않더니 얼마 안 되어 사문이 병을 얻어 죽었다.


2.2. 조선왕조실록 中 성종실록에 기록된 이야기[편집]


(성종실록 197권, 성종 17년 11월 25일 병인 4번째기사)
승정원에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 요귀가 있는지 아뢰도록 하다.
승정원(承政院)에 전교하기를,
"듣건대 호조 좌랑(戶曹佐郞) 이두(李杜)의 집에 요귀(妖鬼)가 있다고 하는데, 지금도 있는가? 그것을 물어서 아뢰라."
하니, 이두가 와서 아뢰기를,
"신의 집에 9월부터 과연 요귀가 있어서, 혹은 나타나기도 하고 혹은 자취를 감추기도 하며 창문 종이를 찢기도 하고 불빛을 내기도 하며 기와나 돌을 던지기도 하는데, 사람이 부딪혀도 다치는 일은 없으나 다만 신의 아내가 살쩍[4]에 부딪혀 잠시 다쳐서 피가 났습니다. 종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사람과 말을 하기를 사람과 다름이 없고, 비록 그 전신(全身)은 보이지 아니하나 허리 밑은 여자의 복장과 방불한데 흰 치마가 남루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고, 단지 밤에 두 번 사람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신이 처자(妻子)를 이끌고 다른 지붕으로 피해 있었더니, 얼마 아니되어 또 따라와서 때없이 나타났다가 없어졌다가 하기에, 신이 생각하기를, 피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고 여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는 요귀가 없었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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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 중기에 성현(成俔)이 지은 필기잡록류(筆記雜錄類)에 속하는 책[2] 유학자를 일컫는 말[3] 반찬을 뜻함[4]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털. 여기서는 머리털이 아니라 피부에 맞은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