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킨클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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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기 킨클라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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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파일:맨체스터 시티 FC 로고.svg

1995-96 · 1996-97
파일:조지아 축구 연맹 로고.svg

조지아 올해의 축구선수

1993 · 1996
파일:더비 카운티 로고.svg





조지아의 前 축구 선수

파일:1688071305854.jpg
이름
게오르기 킨클라제
გიორგი ქინქლაძე | Georgi Kinkladze
출생
1973년 7월 6일 (50세)
소련 조지아 SSR 트빌리시
국적
[[조지아|

조지아
display: none; display: 조지아"
행정구
]]

신체
173cm / 체중 68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 / 은퇴)
소속
유스
FC 므레테비 트빌리시 (1979~1989)
선수
FC 므레테비 트빌리시 (1989~1991)
FC 디나모 트빌리시 (1991~1995)
1. FC 자르브뤼켄 (1993 / 임대)
CA 보카 주니어스 (1994 / 임대)
맨체스터 시티 FC (1995~1998)
AFC 아약스 (1998~2000)
더비 카운티 FC (1999~2000 / 임대)
더비 카운티 FC (2000~2003)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 FC (2004~2005)
FC 루빈 카잔 (2005~2006)
국가대표
파일:조지아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54경기 8골 (조지아 / 1992~2005)




1. 개요[편집]


조지아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 포지션은 포워드였다.

90년대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로 당시 별명은 조지아가 낳은 90년대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고 불린다.


2. 선수 경력[편집]


FC 므레테비 트빌리시 유스출신으로 1989년 1군으로 승격하여 데뷔했는데 그의 나이 16세였다. 므레테비 트빌리시는 하위권 클럽이였지만 킨클라제는 곧바로 두각을 나타내면서 활약하기 시작하며 주전을 차지했다.

1991년 피르벨리 리가를 우승하면서 팀을 1부리그로 승격시킨다. 1부리그로 올라오자 킨클라제는 조지아의 명문팀 FC 디나모 트빌리시에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100만 루블로 이적한다.


2.1. FC 디나모 트빌리시[편집]


데뷔 시즌부터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리그, 컵을 석권하면서 더블을 기록한다. 하지만 조지아 내전으로 인해 조지아는 어수선한 상황이었고, 1993년 독일리그의 1. FC 자르브뤼켄으로 임대생활을 떠난다. 하지만 적응실패로 힘든 생활을 보냈고, 다시 팀으로 복귀했다. 복귀하자마자 최고의 활약을 보이면서 조지아 올해의 선수를 수상한다.

시즌 종료 후 당시 팀의 회장이었던 메라브 조브다니아는 정치적인 상황과 맞물려 킨클라제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제의하기도 했다. 그러던 도중 CA 보카 주니어스의 스카우트에 눈에 들어 한달간 보카 주니어스 임대 생활을 또 했다.

당시 그의 우상이였던 디에고 마라도나를 만나면서 들떠 있었으나, 결국 이적을 하지는 못하면서 다시 원소속팀으로 돌아온다. 이탈리아 클럽과도 링크가 났지만 이적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다 킨클라제의 경기를 본 프랜시스 리 회장이 킨클라제를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을 추진했다. 1994-95 시즌 어수선한 상황속에서 다시금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또 한번 더블을 기록했고, 시즌 종료 후 200만 파운드로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한다.


2.2. 맨체스터 시티 FC[편집]


맨체스터 시티 FC 올해의 선수
1994-1995 시즌
우베 뢰슬러

1995-96 시즌
~ 1996-97 시즌

게오르기 킨클라제

1997-98 시즌
마이클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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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 시즌 토트넘 홋스퍼 FC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전부터 뛰어난 활약과 놀라운 플레이로 팬들을 놀라게 했던 킨클라제였지만, 맨체스터 시티는 암울한 상황을 보내고 있었다. 8월부터 11월까지 세 달 동안 리그 경기에서 1승도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중에 있던 미들즈브러 FC와의 경기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이면서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팀은 암흑기에 빠지며 부진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거기에 있던 킨클라제의 뛰어난 활약은 맨시티의 팬들에겐 유일한 희망이였다.

3월에 있던 사우스햄튼 FC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솔로골을 보이면서 이달의 골로 선정되기도 했다.[1] 결국 시즌 종료후에 맨체스터 시티는 18등으로 강등되면서 킨클라제의 거취가 주목받으면서 다수의 클럽들[2]이 킨클라제에게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킨클라제는 맨체스터 시티에 잔류하면서 팀의 승격을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제가 떠날 기회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바르셀로나와 다른 팀이 저에게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갈 수 없었습니다. 맨체스터 시티가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복귀하는데 돕고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는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게오르기 킨클라제


1995-96 시즌: 39경기(선발 39경기) 4골 5도움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프리미어 리그
37
37
0
4
4
FA컵
1
1
0
0
1
EFL컵
1
1
0
0
0
합계
39
39
0
4
5

1996-97 시즌은 격동의 시즌이였고 이 때 맨체스터 시티는 한 시즌에만 감독이 5번 바뀌는 과정에 있었다. 직전 시즌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자신을 증명했던 킨클라제 였기에 상대하는 팀들에게 경계대상으로 떠오르며 집중견제를 받으며 거친태클을 많이 당했다. 1월에 치러진 크리스탈 팰리스 FC전에서 강력한 태클에 의해 들것에 실려가며 부상을 당하기도 했지만, 킨클라제는 맨시티에서 대체불가한 선수였기에, 그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크게 느껴졌다. 결국 상위권 순위에서 멀어지자, 팬들은 다시한번 킨클라제를 떠나보내야 할까 두려움에 휩싸였다. 시즌 레딩 FC과의 최종전에서 킨클라제는 출전하지 않았지만 팬들은 킨클라제에게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며 열렬한 응원을 보냈다. 시즌을 14위로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킨클라제는 구단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면서 팀에 잔류한다.

1996-97 시즌: 40경기(선발 40경기) 12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EFL 챔피언십
39
39
0
12
0
FA컵
1
1
0
0
0
합계
40
40
0
12
0

1997-98 시즌 킨클라제는 다시금 맨시티를 승격시키리라 다짐했지만, 맨시티는 직전 시즌보다 더 안좋은 성적을 보이고 있었다. 결국 시즌 중반기를 넘어가던 중 프랭크 클라크 감독이 경질되면서 조 로일감독이 부임한다. 강등권 탈출을 목표로 삼아야 했던 맨체스터 시티였기에 조 로일은 킨클라제가 강등권 싸움에는 오히려 독이되는 존재로 판단했고, 킨클라제를 팔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로일 감독은 킨클라제 합류후 맨체스터 시티가 성적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면서 그를 탓하기 시작했고, 6경기 동안 명단에서 제외시켜버리는 강력한 수를 내보이기도 했다. 결국 그 해에 킨클라제는 나오면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감독의 눈밖에 나 많은경기를 선발출전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맨체스터 시티는 리그 22위를 기록 3부리그로 강등당하는 최악의 시기를 보낸다.

조 로일은 새로 팀을 개편해야 한다고 구단 보드진을 설득했고, 그 계획에 킨클라제는 필요 없다고 설득, 결국 3년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킨클라제는 500만 파운드에 아약스로 이적한다.

1997-98 시즌: 28경기(선발 27경기) 3골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EFL 챔피언십
28
27
1
3
0
합계
28
27
1
3
0

2.3. AFC 아약스[편집]


아약스에 입성한 킨클라제는 원래는 야리 리트마넨의 대체자로 영입되었지만 당초 FC 바르셀로나로 떠날거 같았던 리트마넨이 계약이 무산되면서 잔류하게 되자 킨클라제는 자신이 뛰던 자리가 아닌 좌측 윙어로 뛰게 되었다. 심지어 자신의 영입을 추진했던 모튼 올슨 감독이 경질되면서 새로 얀 워터스 감독이 부임했으나 워터스 감독은 킨클라제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았고 거기다 잦은 부상으로 킨클라제는 고생을 하며 결국 시즌 12경기 출전에 그쳤다.

시즌 종료 후 팀에서 자리를 잃은 킨클라제는 곧바로 새 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9-00 프리시즌에 잉글랜드 리그로 이적을 추진했지만 워크 퍼밋 발급이 되지 않으면서 계약이 무산되며 아약스에 남게됐으나 이미 킨클라제는 논외 자원으로 분류되며 등번호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11월 더비 카운티 FC로 이적이 성사된다.


2.4. 더비 카운티 FC[편집]



파일:p3663.png

더비 카운티 최고 이적료[3]를 기록하면서 킨클라제는 더비 카운티로 입성한다. 원래는 겨울 이적시장 이전 등록이 안되었지만 잉글랜드 축구에 기여한 공로로 인해 특별 허가를 받으면서 바로 출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더비도 시즌 내내 고전하면서 강등권 탈출에 힘을 쏟고 있었고 킨클라제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힘든 생활을 하고 있었다. 거기다 킨클라제도 팀을 떠나려 했으나 좋은 제안이 없었고 더비 카운티에 잔류한다.

그리고 새로 시작된 01-02 시즌 선발과 교체를 반복하며 출전했고, 더비의 감독이었던 짐 스미스가 경질되면서 새로 콜린 토드가 선임된다. 콜린 토드는 킨클라제 같은 유형의 선수를 선호하지 않았으며, 결국 킨클라제와 토드 감독은 불화가 터진다. 킨클라제는 변호사를 고용하면서까지 토드 감독과 면담을 잡기도 했다. 토드 감독은 킨클라제가 불행하면 떠나라고 까지 말하면서 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시즌 중반기 토드 감독의 더비는 리그 꼴등을 기록하면서 토드 감독이 경질되면서 새로 존 그레고리 감독이 선임된다. 그레고리 감독이 선임된 후 킨클라제는 다시 1군으로 자리 잡으면서 경기를 뛰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우 더비는 강등을 면한다. 하지만 빛 때문에 선수단의 임금을 줄이기 위해서 정리를 시작했고, 구단 최고 주급자 중 한명이던 킨클라제도 정리 대상이였다.

킨클라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갈라타사라이 SK가 킨클라제에게 제의를 했으나 킨클라제가 거절하면서 이적이 무산되자 더비는 계약 해지를 시도하면서 킨클라제를 압박한다. 결국 02-03 시즌 초반 5경기를 결장하며 킨클라제는 팀을 떠나는듯 했으나, 성적이 안좋아진 더비는 다시 킨클라제를 출장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02-03 시즌도 더비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구단 올해의 선수로 선정된다. 이렇게 최고의 활약을 보이자 더비는 킨클라제에게 주급을 삭감하면서 1년 연장 계약을 제안하지만, 트로피를 얻고 싶었던 킨클라제는 구단을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결국 계약기간이 끝나면서 FA로 팀을 떠난다.


2.5. 아노르토시스 파마구스타 FC[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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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간 클럽을 구하지 못했던 킨클라제를 영입하면서 킨클라제에게 1년 계약을 체결한다. 시즌 중반에 영입되었던 킨클라제는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시즌을 마무리했고, 구단은 리그 우승을 거머쥐면서 챔피언스 리그 출전 자격을 획득한다. 그렇게 되자 킨클라제에게 1년 연장을 제안했으며 킨클라제도 이에 수락한다.

그렇게 시즌을 보내는 듯 했으나, FC 루빈 카잔에서 관심을 보였고 이에 킨클라제는 루빈 카잔으로 이적한다.


2.6. FC 루빈 카잔[편집]


루빈 카잔으로 이적해온 킨클라제는 이제 어느덧 황혼기의 나이에 접어 들었다. 데뷔전 부터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거의 날려버린 킨클라제는 부상에서도 복귀했지만 주전 자리를 밀리면서 결국 1년 만에 계약을 종료하며 팀을 잃는다. 그 후 킨클라제는 선수 생활을 은퇴하기로 마음먹으며 은퇴한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전형적인 플레이 메이커 스타일로 볼을 다루는 능력이 아주 출중했으며 빠른 스피드를 동반한 창의적인 플레이를 선보이는데 능했다. 사선으로 파고 들어오는 그의 능력은 상대에게 아주 큰 위협이 됐으며 세트피스 능력또한 출중해서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의 세트피스를 도맡기도 했다. 이러한 안으로 파고드는 능력과 볼을 달고 뛰는 전진성이 있었기에 공격수 바로 뒤편과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플레이하는 오른쪽 윙이 그의 최적의 포지션이였다.

하지만 왼발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했고, 수비적인 공헌도가 하나도 없었기에 수비를 중요시하는 감독들에 한해서는 킨클라제의 떨어지는 수비 공헌도때문에 킨클라제를 기용하지 않으려 하는 상황이 잦았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 [편집]




5. 여담 [편집]


[1] 이 골은 시즌 최고의 골 2위에 선정된다.[2] 바르셀로나, 인테르, 리버풀, 셀틱 등[3] 300만 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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