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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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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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조부군[추존][1]사마랑창무정후 유하간평왕 홍의양왕
장무왕
의양성왕 망하간평왕 홍[2]
동평왕
고조 선황제[추존]세종 경황제[추존]제헌왕 유동래왕 [3]
북해왕 [4]
제무민왕
태조 문황제[추존]세조 무황제(1)비릉도왕 궤[5]
효혜황제(2)민회태자 휼
진헌왕 효민황제(4)[6]
성양회왕 경
초은왕
동해충왕 지
시평애왕 유
회남충장왕
청하강왕 [7]
장사려왕 예(혹은 애)
성도왕
오효왕 효민황제[8]
발해상왕 회[9]
예장왕→효회황제(3)[10]
대애왕 연[11]
제헌왕 유[12]
성양애왕 조청하강왕
요동도혜왕 정국동래왕
광한상왕 광덕북해왕
낙안평왕
연왕 [13]
사마영조
낙평왕 연조
여남문성왕 [14]사마수
회왕
낭야무왕 주낭야공왕 근중종 원황제(5)[15]
무릉장왕
동안왕
회릉원왕
연왕 경연왕
부풍무왕 준순양왕
신야장왕
평원왕
양효왕
조왕 [16]
안평헌왕 부안평정왕 옹남궁현왕 승[17]
안평왕 돈[18]
의양성왕 망[19]
사마익남궁현왕 승안평왕 [20]
태원열왕 괴하간왕
상산왕 형안평왕 돈안평왕
동무대후 규팽성목왕 권팽성원왕
고밀문헌왕 동해효헌왕
신채무애왕
고밀효왕
남양왕 원황제[21]
범양왕 수
사마순제남왕 수중산왕
사마진성양정후 손
단수현후 목안평정후 표[22]
안성정후 통임성왕 릉임성왕
안평정후 민안평정후 표[23]
경조부군 이전[추존][24]
정서부군 - 예장부군 - 영천부군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황제 및 추존 황제는 굵게 쓰고 8왕은 작위를 빨갛게 썼다. 그리고 8왕의 난에 관련된 자들은 작위를 갈색으로 썼다. 종친의 이름은 뒤에 쓴다. 그리고 종친은 작위 뒤에 성씨를 생략한다.
각주 [ 펼치기 · 접기 ]
[각주]
[추존] A B C D E [1]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2] 창무정후 유의 양자가 됨.[3] 숙부 요동도혜왕 정국의 양자가 됨.[4] 숙부 광한상왕 광덕의 양자가 됨.[5] 무제 사마염의 적장자지만 2살에 사망하여 혜제 사마충이 사실상 장남이 되었다. 항목이 존재하고 봉국을 물려받았으므로 기재.[6] 여기가 서진의 끝.[7] 숙부 성양애왕 조의 양자가 됨.[8] 백부 진헌왕 간의 양자가 됨.[9] 적장자였던 사마궤와 마찬가지로 1살이라는 매우 어린나이로 사망했으나 봉국을 물려받았기에 기재한다.[10] 직접 난을 일으킨 적은 없는 여남문성왕 량 대신 팔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11] 봉국을 받지 못해 시호로 대체.[12] 백부 세종 경황제 사의 양자가 됨.[13] 숙부 연왕 경의 양자가 됨.[14] 난을 일으킨 적은 없기에 팔왕에서 빼고 대신 효회황제 치를 넣는 시각도 있다.[15] 여기가 동진의 시작.[16] 비정통 황제.[17] 숙부 사마익의 양자가 됨.[18] 숙부 사마형의 양자가 됨.[19] 백부 사마랑의 양자가 됨.[20] 숙부 사마돈의 양자가 됨.[21] 비정통 황제.[22] 종조부 사마민의 양자가 됨.[23] 팔왕의 난 당시 서진의 종실중 한명임에도 가담하지 않았으며, 난이 끝나가는 직전까지 살았다.[24] 황제로서의 뚜렷한 존호를 헌상받지 못했으나 다른 추존 황제와 동격배향(同格配享).




서진의 황족
회릉원왕(淮陵元王)
司馬漼 | 사마최
시호원(元)
작위광릉공(廣陵公) → 회릉군왕(淮陵郡王)
성씨사마(司馬)
최(漼)
사충(思沖)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사충(思沖)으로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2. 생애[편집]


낭야무왕 사마주의 사남으로 283년에 사마주가 사망하자 형제들과 땅을 나누어 받았고 광릉공에 봉해져 식읍 2900호였으며, 좌장군, 산기상시를 지냈다. 팔왕의 난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나라가 혼란했고 300년에 사마륜이 전횡을 부리던 가남풍을 몰아냈지만, 이후에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황위를 찬탈하자 301년에 사마경, 사마예, 사마영, 사마옹, 사마흠 등이 연합해 군사를 일으키자 왕흥과 함께 손수를 공격해 죽였으며, 이로 인해 회릉왕이 되었고 상서에 임명되면서 시중이 더해졌다.

종정, 광록대부를 지녔고 이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이며, 그의 후사는 아들 대까지만 이어지고 회릉왕의 작위는 2차례로 다른 황족이 받다가 유유선양을 받아 유송이 건국되자 봉국이 폐지되었다.

시호는 원(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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