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홍 (r1판)

편집일시 :

扶餘洪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3. 미디어에서
4. 관련문서



1. 개요[편집]


백제왕족. 아버지는 침류왕, 어머니는 불명[1]. 형이 아신왕으로 형과는 배다른 동생이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徐鈞) 서린(徐璘), 서원(徐元) 서공(徐恭) 서성(徐成) 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서충,서신,서윤,서후상,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2. 생애[편집]


394년 내신좌평 직위에 임명되었다. 내신좌평이 국정을 총괄하는 위치인 점을 감안하면, 부여홍은 아신왕의 측근으로 진무와 함께 아신왕 정권의 주요인사로 여겨진다.

사망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전지왕 시기 아신왕의 서자인 부여신이 내신좌평에 임명된 점을 미뤄본다면 407년 이전에 내신좌평 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부여신과는 달리 사망시기가 기록되지는 않아서 확실치는 않다.

기록상 밝혀지지 않았지만, 광개토대왕릉비에 기술된 396년 백제가 광개토대왕에게 굴복한 이후 고구려로 끌려간 10명의 백제 왕족과 귀족 중 부여홍도 끌려갔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끌려간 것으로 기술된 왕(아신왕)의 아우가 부여홍이라는 설.[2] 그리고 고구려로 끌려간 볼모들이 백제로 송환되었다는 기사는 없기 때문에 부여홍이 끌려갔다면 고구려에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이 높다.


3. 미디어에서[편집]


부여홍이 등장한 사극드라마 광개토태왕(2011년 ~ 2012년)이 최초로, 배우 정재곤이 연기했다.


4. 관련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2-07-14 06:51:52에 나무위키 부여홍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침류왕의 부인이 아닌 걸 보면 후실 소생일 것으로 추정된다.[2] 405년 아신왕의 사망 이후 아신왕의 막내 동생이었던 부여설례가 아신왕의 동생 부여훈해를 죽이고 칭왕할 때 부여홍에 대한 기록이 없는 점을 근거로 든다. 다만 이들과 달리 부여홍은 서자였기 때문에 왕위 계승 순위에는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