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덤프버전으로 되돌리기) [[분류:사우디아라비아 국왕]][[분류:1906년 출생]][[분류:1975년 사망]][[분류:암살된 인물]][[분류:타임지 올해의 인물]][[분류:리야드 출신 인물]] [include(틀:역대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45441 0%, #006c35 20%, #006c35 80%, #245441);" {{{#fff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관련 틀'''}}}}}}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8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include(틀:역대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 [include(틀:역대 사우디아라비아 총리)] ---- [include(틀:타임지 올해의 인물/1970년대)] }}}}}}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45441 0%, #006c35 20%, #006c35 80%, #245441);" '''{{{#fff,#fff 사우디아라비아 제3대 국왕}}}[br]{{{#fff,#fff {{{+1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br]فيصل بن عبدالعزيز آل سعود[br]Faisal bin Abdulaziz Al Saud}}}'''}}}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ng_Faisal_bin_Abdulaziz.jpg|width=100%]]}}} || || '''이름''' ||파이살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br](abdullah bin abdulaziz al saud) || ||<|2> '''출생''' ||[[1906년]] [[4월 14일]] || ||[[리야드|리야드 토후국]] [[리야드]][br](現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주]] [[리야드]]) || ||<|2> '''사망''' ||[[1975년]] [[3월 25일]] (향년 68세) ||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주]] [[리야드]] || || '''묘소'''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주]] [[리야드]] 알 우드 공동묘지 || ||<|4> '''재임기간''' ||제2대 총리 || ||[[1954년]] [[8월 16일]] ~ [[1960년]] [[12월 21일]] || ||제2대 총리^^2^^ || ||[[1962년]] [[10월 31일]] ~ [[1975년]] [[3월 25일]] || ||<|2> '''재위기간''' ||제3대 국왕 || ||[[1964년]] [[11월 2일]] ~ [[1975년]] [[3월 25일]] || || '''종교''' ||[[이슬람교]] {{{-2 ([[수니파]])}}} || [목차] [clearfix] == 개요 == [[사우디아라비아]]의 제3대 국왕이다. == 생애 == 초대 [[이븐 사우드]] 국왕의 3남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출범하면서 초대 외무대신을 30년간(1930~1960) 역임했다. 2대 국왕 사우드가 즉위한 이후 왕태제로 책봉되었으나 사우드와 갈등이 있었고, [[나세르]] 혁명 세력의 확산과 재정 정책 실패로 결국 사우드 왕이 퇴위당해 망명하자 즉위하였다. 아랍권 군주제 국가들의 중심적 존재로서, 넓게는 이슬람권의 종주국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을 확실히 세워갔다. [[노예]] 제도를 폐지하고 여성 교육을 처음 도입하였다. 또한 1973년도의 [[오일쇼크]]를 주도시키며 사우디아라비아를 한동안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고, 막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한 복지정책으로 웬만한 서민층들도 잘먹고 잘살게 하는 등 사우디아라비아 왕정의 기반을 확고히 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1975년]] 정신이상이 있던 조카 파이살 빈 무사이드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후에 이 조카는 [[참수형]]에 처해졌다.[* 사우디의 참수형은 아랍식 전통 [[참수도]]인 [[샴쉬르]]를 온갖 제련법으로 예리하게 다듬어 전문가가 딱 한 번 휘둘러 집행한다. 그리고 그 비싼 칼을 날이 휘어져 망가졌을까봐 집행하면 바로 폐기한다. 파이살 빈 무사이드는 왕자 신분이라 특별히 황금으로 만든 칼로 처형했으며, 현재까지 이 칼은 폐기하지 않고 보관중인데, 고위층의 처형에 쓰인 칼은 박물관 등지에 법의 엄정함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보관 및 전시한다고 한다.] 죽은 후 왕위는 동생이자 이븐 사우드의 5남인 칼리드가 승계했다. 오일쇼크를 일으켜 미국에 큰 타격을 주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위상을 올린 왕이자 보수적이고 폐쇄적이기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찾아보기 드문 개혁 성향 군주였기 때문에 암살 당시 [[음모론]]이 꽤나 횡행했다. [[OPEC|석유 무기화]] 및 [[이스라엘]] 견제에 분노한 미국과 유대인들이 배후에 있다는 음모론도 있고, 반대로 [[반동주의|개혁에 반대한 와하브 보수파]]들이 암살에 기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둘 다 뚜렷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그냥 미친 조카가 저지른 단독범죄에 의한 참사로 되어 있다. == 여담 == [[그레이트풀 데드]] 팬(데드헤즈)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레이트풀 데드]]는 암살 이후 Blues for Allah라는 앨범을 그에게 헌정했다.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