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보기문서 편집수정 내역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r0 버전으로 되돌리기) [include(틀:독일 국방군/장성급 장교)]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폰 마켄젠2.jpg|width=100%]]}}} || ||<#666> {{{#FFF 이름}}} ||<(>'''Friedrich August Eberhard von Mackensen''' [br]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에버하르트 폰 마켄젠[*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 용례대로는 '폰마켄젠'으로 표기한다.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 및 관사는 뒤 요소와 붙여 적도록 하고 있다.]|| ||<#666> {{{#FFF 출생}}} ||<(>[[1889년]] [[9월 24일]], [[독일 제국|독일국]] [[서프로이센]]주 브롬베르크[* 現 [[폴란드]]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 비드고슈치(Bydgoszcz)] || ||<#666> {{{#FFF 사망}}} ||<(>[[1969년]] [[5월 19일]], [[서독|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주 [[노이뮌스터]] || ||<#666> {{{#FFF 최종 계급}}} ||<(>[[파일:Si_4a.png|width=32]] [[육군]] [[상급대장]](Generaloberst) || ||<#666> {{{#FFF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br] [[제2차 세계 대전]] || ||<#666> {{{#FFF 복무}}} ||<(> [[독일 제국군]] 1908-1918 [[국가방위군]] 1918-1935 [[독일 국방군]] 1935-1944 || ||<#666> {{{#FFF 가족}}} ||아버지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형 한스 게오르크 폰 마켄젠 || ||<#666> {{{#FFF 주요 서훈}}} ||<(>곡엽 기사 [[철십자 훈장]]||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마켄젠.jpg|width=100%]] || [[파일:폰 마켄젠.jpg|width=100%]] ||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의 [[나치 독일]] [[독일 국방군]]의 군인. 최종계급은 상급대장이다. == 초기 행적 == [[독일 제국]]의 영토였던 [[포젠|포젠 주]] 브롬베르크[* [[베르사유 조약]] 이후 [[폴란드 제2공화국]]의 영토로 할양되고 나서 원래 이름인 비드고슈치로 돌아왔다.]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의 전쟁영웅인 [[아우구스트 폰 마켄젠]] 원수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군에 입대하였으며 기병 장교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였다. 종전 후 잠시 국가방위군에 남았으나 이후 [[자유군단]]에 가입하였다. 독일 국방군이 창설되면서 1 기병여단의 지휘관을 역임하였고 이후 [[빌헬름 리스트]]의 참모가 되었다. == [[제2차 세계 대전]] == || [[파일:폰 마켄젠3.jpg|width=100%]] ||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14군 참모로 [[폴란드 침공]]에 참전하였다. [[프랑스 침공]]에서는 12군 참모를 맡았으며 기병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동부전선의 3군단[* 기계화 군단이었으며 2차 하르코프 공방전 이후 3기갑군단으로 재편성되었다.]의 지휘를 맡아 [[바르바로사 작전]]에 참여하여 당시 소련과의 국경이었던 브워지미에시를 돌파하고 루츠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호린강을 넘어 스탈린 라인을 돌파, 지토미르를 점령하는 전공을 거두었다. 이때의 전공으로 기사십자 철십자훈장을 수훈받는다. 이후 1942년 5월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참여하였으며 소련 남부전선군의 6군과 57군을 포위섬멸하는 남쪽의 축을 맡아 소련 6군과 57군을 궤멸시키는 전공을 거뒀다.[* 57군 사령관 쿠즈모 포들라스는 이 포위에서 퇴각하던 도중 전사했다.] 이후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클라이스트]]의 후임으로 1기갑군의 지휘를 맡아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 참여하였다. 2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서의 전공으로 곡엽기사십자 철십자훈장을 수여받고 상급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후 [[이탈리아 전선]]의 14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이탈리아 북부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몬테카시노 전투]] 이후 남부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은 명령불복종을 이유로 마켄젠을 해임하였고, 마켄젠은 [[1944년]] 퇴역한다. == 전후 전범재판과 최후 == 14군 사령관 시절에 로마 주둔군의 지휘관으로써 당시 공산주의 파르티잔에게 독일군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아돌프 히틀러]]의 재가를 받은 보복명령이 내려졌다. [[OKW]] 지휘참모부장 [[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 남부전선 사령관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의 지휘체계로 이어진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하달하였으며 이때의 일로 종전 후인 [[1946년]] [[로마]]에서 열린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후 21년 형으로 감형[* 이때 연합국 측의 탄원도 있었고 [[비오 12세]]도 감형을 탄원하였다.]되었으며 [[1952년]]에 석방된다.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969년]] [[서독]] 북부 [[노이뮌스터]]에서 사망하였다. [[분류:제1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독일제국군/군인]][[분류:독일 국방군/인물]][[분류:독일의 귀족]][[분류:1889년 출생]][[분류:1969년 사망]][[분류:나치 독일/인물]][[분류: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 주 출신 인물]][[분류:독일의 실향민]]캡챠되돌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