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희망 (문단 편집) === 희망에 대한 논의들 === 왜 [[판도라의 상자]]에 희망이 남아 있었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일설에 따르면 그냥 희망이 아니라 '헛된 희망'이었다는 전승이 옳다는 이야기가 있다. 희망이 있는 것은 좋지만, [[희망고문|희망이 강박]]으로 될 때는 문제가 된다. 근대 이후로 변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일종의 강박으로 변질되어버린 경우가 많다. 헛된 희망이 강박이 되어서야 삶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 물론 헛된 희망 뿐만 아니라 희망 그 자체가 정말로 긍정적인 개념인가 하는 의문의 제기도 오랫동안 계속되어 왔다. [[괴테]]의 경우에는 [[파우스트(희곡)|파우스트]]에서 희망을 인간의 가장 큰 적중 하나라고 얘기했다. 제2부 중 황제의 연회 부분 참고. 해체적인 관점에서(또는 포스트 모던의 관점에서) 보자면 희망이라는 개념은 본질주의로부터 비롯된 하나의 환상일 수 있다.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데카당스의 예술과 철학, 즉 우리가 말하는 보편적인 서구의 근대 이전 철학은 삶을 증오해 삶으로부터 도망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그 학문들은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면서도 정작 삶에는, 혹은 삶을 포기하는 것에는 희망이 있으리라고 말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이것은 서구의 학문과 기술이 기본적으로 '생명체로서의 자기유지'를 넘어서는 '행복 혹은 선'이 있다고 상정하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이데아가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가능태가 그랬으며, 중세에 이르러서는 신이라는 개념이 그랬다. 근대에 와서는 현상 너머에 있는 사물 자체와 인식의 체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칸트에 이르러서는 선험적 종합판단의 가능성이 본질 개념을 대체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로 행복과 선이 주어질 수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잠깐 빌리자면, 우리의 모든 인식은 신이 내려준 것이 아니라 진화의 결과이며, 1+1=2라는 판단도 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진화적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서구 철학에서 자주 보이는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은 데카르트 시대에나 설득력이 있을 수 있었으며, 우리 육체가 무의미하다면 동시에 우리 정신도 무의미한 것이 된다. 단순한 생명체로서의 자기유지가 우리의 희망인 것이 아니라면, 행복 혹은 선을 찾으려는 희망은 그러므로 하나의 환상이 되어버린다. 포스트 콜로니얼과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희망은 기만의 장치에 불과하다. 희망은 자본주의 국가가, 그리고 신식민지 체제가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통치 수단이 된다. 경제적 지표는 상승을 가리키고, 언론은 우리가 노력하면 삶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 이데올로기는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하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지적했듯, 우리는 각자가 노동한 몫 만큼을 제대로 받아가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노력의 결과로 남는 것은 좌절과 삶의 피폐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한병철의 피로 사회도 이와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모든 것이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현대성의 희망, 그리고 변화에 대한 강박과 자기계발의 담론은 민중들을 다만 피로하게 할 뿐이다. 삶이 달라지리라는 희망조차 전혀 없이, 끝없는 변화의 강박과 피로만이 약속되어 있는데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기만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절망을 현시하는 것, 그리고 '희망을 넘어서는 것'에서 서발턴의 정치적 연대, '목소리 내기'가 가능해진다. 아무튼 희망을 가진다고 꼭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건 아니고, 의미 없는 희망에 [[도박|인생 다 꼴아박고는]] [[행복회로]] 오버클럭하면서 매달리면 이루어 지긴 커녕 크고 처절한 비극이 기다릴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건 희망이랍시고 집착하는것이 아닌지 구분하는 것이다. 때로는 희망을 버리고 [[체념]]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삶 자체'''에 대한 모든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면, [[자살|결국 이 결과]]만이 남게된다. 모든 희망을 버렸을 때 남게 되는 자살, 철학적 자살에 대한 논의 또한 가끔씩 이루어지고는 한다. 이를테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가 그랬듯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