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환두대도 (문단 편집) == 역사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rmatiansword.jpg|width=100%]]}}}|| 기원전 2세기 사르마티아 도검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hwansoodo.jpg|width=100%]]}}}|| [[후한]] 시대의 환수도 이전까지는 환두대도 양식이 [[중국]] [[한나라]]의 환수도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엄밀히는 [[유목민족]]인 [[사르마티아]]의 고리 달린 칼이 [[시베리아]]와 [[중국]]으로 넘어온 것이다. 비슷하게 유목민족이던 [[스키타이]]나 사르마티아의 도검 유물 중에서 고리 달린 형태가 적잖게 나오며 [[부여]]의 동병철검의 경우 양식이 아주 다양한데 고리 장식 형태도 극히 일부 발견되긴 했다. 다만 중국에선 검이 아닌 도의 형태가 널리 쓰였고 이러한 중국식 환수도가 낙랑군 등을 중심으로 한반도에 영향을 줘 주류 양식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말엽부터 [[당나라]] 때까지 주류를 이룬 군도(軍刀)였다. [[한국]]에서는 [[원삼국시대]]를 시작으로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폭넓은 시대에서 사용한다. [[일본]]으로는 [[고분 시대]] 때 한반도와 교역하면서 환두대도 양식이 전해졌으며 후대에 당태도(唐太刀)에서 유래하는 일본도(카타나) 양식이 나타나기 전까지 주된 도검으로 썼다. 한반도의 경우 6세기 즈음 부터 칼코등이가 달리고 환두가 작아지는 경향을 보이며 [[고려시대]] 때 심부대도가 되고, 이후의 [[환도(무기)|환도]]로 이어진다. [* 일전에는 몽골의 영향을 받아 곡도가 되었다는 설이 보편적이었지만 러시아 체르냐찌노 발해 고분 유적에서 곡도 유물이 발견되어 몽골 침입 전부터 발해 유민을 통해 곡도를 접했을 가능성도 생겼다.[[전어도#s-2]] 항목의 2번 문단에서 해당 유물의 사진을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res.heraldm.com/20140211000655_0.jpg]]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벽화에 그려진 [[고구려]] 또는 [[신라]] 사신. 허리에 패용 고리를 이용해서 찬 환두대도가 보인다. [[삼한#s-2]]을 통틀어서 출토한 횡도 유물들은 대부분 장식이 단순하고 전투에서 주로 사용하는 실전무기 양식과 가까웠지만, 갈수록 이런저런 장식들이 붙으면서 소유자의 신분과 지위를 함께 상징하는 면이 커졌다. 특히나 [[용]], [[봉황]] 등 화려한 장식이 있는 것들은 [[왕족]] 같은 신분이 고귀한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었는데, 이는 병권(兵權)을 상징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