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명보 (문단 편집) === [[아시아]]의 [[베켄바워]] ===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명보가 [[프란츠 베켄바워]]를 롤모델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는 홍명보의 자서전을 보면 명확히 드러나는데, 자신의 수많은 별명 중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제일 먼저 올려놓았다. 이는 반대로 말하자면 홍명보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별명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후배 선수들이 홍명보를 존경해서 '''제2의 홍명보'''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하듯이, 홍명보도 베켄바워를 존경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 라는 별명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단 당시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의 축구팬들은 홍명보를 진짜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고 인식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사실 선수로서의 홍명보와 베켄바워는 선수로서의 클래스는 둘째치더라도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다르며 홍명보는 사실 리베로라고 부르기도 힘들다. 물론, 홍명보의 실질적인 포지션이 바이에른 뮌헨식 앵커맨이었고 베켄바워도 이 포지션에서 자주 뛰었던 걸 생각하면,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호칭도 완전 엉터리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는 자기 자서전에 본인은 은퇴한다면 감독이 아닌 행정가 쪽으로 가고 싶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책이 나온 시점인 2002년 월드컵 직전은 바로 베켄바워가 DFB 수뇌부이자 FIFA 핵심 인사 중 한 명으로서 화려하게 활약하고 있던 시점이다. 특히 베켄바워는 자신의 충실한 오른팔인 페도르 라트만을 대동해 [[2006 FIFA 월드컵 독일|역사상 가장 깔끔한 월드컵 유치전 승리]]를 거머쥐는 등, 그야말로 축구행정가로서는 전성기를 찍던 시점이다. 그리고 베켄바워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행정가 중에선 가장 성공한 케이스이다. 그나마 [[미셸 플라티니]]가 베켄바워랑 비슷한 위상까지 올랐던 스타플레이어 출신 축구행정가인데, 막후 거래와 관련해서 말은 많아도 적어도 일은 잘한다는 평을 받는 베켄바워와는 달리 플라티니는 부패한데다가 일도 못한다는 평을 듣는 것을 보면 사실상 베켄바워 말고는 세계구급 축구행정가로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타플레이어는 없다고 봐도 좋다. 홍명보도 그런 베켄바워를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아 배우고 싶다고 느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베켄바워는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성공했는데 홍명보는 베켄바워랑 비교하면 감독 경력은 초라한 편이었다. 물론 2012 올림픽 동메달과 같은 영광의 순간도 있었지만 2014 월드컵이나 항저우 뤼청 감독 시절처럼 안 좋은 기억이 많았다. 그래도 울산 현대 감독으로 부임해서 다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고 2022년에 울산을 17년 만의 리그 우승으로 이끌면서 감독으로서도 자랑할만한 경력을 만들어내면서 아시아의 베켄바워라는 이미지를 점점 각인시키고 있다. 어쨌거나 홍명보는 베켄바워가 거쳤던 길인 스타플레이어 → 명장 감독 → 행정가 수뇌부의 길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중이다.[* [[미셸 플라티니]]도 의외로 베켄바워랑 비슷한 행보를 걸었었는데, 플라티니 역시 베켄바워처럼 은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국인 프랑스의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그러나 베켄바워가 [[1986 FIFA 월드컵 멕시코|2번의 월드컵 결승]]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및 한번의 우승]], [[UEFA 유로 1988|1번의 유로 준결승]]을 찍은것에 비해 플라티니는 1990년 월드컵에서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유로 1992에서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며 초라하게 감독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홍명보도 사실 [[대한축구협회]]의 희생양 격으로 희생당한 측면이 강했던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서의 부진을 제외하면 감독 커리어도 사실 훌륭하다. [[2012 런던 올림픽/축구|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의 동메달을 따기도 했고, 2021 시즌 [[울산 현대]]에서는 무관에 그치긴 했지만 전북 왕조를 위협하며 다음 시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2022 시즌에는 국대 차출과 [[코로나19]] 감염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전술로 1위를 지켜 우승을 시키면서 기어코 전북 왕조를 무너뜨렸다.] 적어도 행정가로 뽑히는 선임 과정에 관해선 굉장히 논란이 많은 홍명보였지만 그가 행정가로 일했을때는 유능하단 평을 듣고 있다. 홍명보를 싫어하는 안티들마저도 행정가로 일하는 부분에서는 비판이 거의 없을 정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