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령 (문단 편집) == [[중국사]] == [[한나라]] 때에는 호구 수를 1만 호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상이면 현령을 두고, 이하면 [[현장]](縣長)을 두었다. 품질은 현령이 6백~1천 석이었고, 현장이 3백~5백 석으로, 현의 규모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현령(현장)의 휘하에는 [[현승]](縣丞), [[현위]](縣尉) 관직을 설치했는데, 현승은 현령, 현장을 보조하는 [[이방]], 현위는 병방같은 경무, 군무관이다. 한나라 당시 중국 전역을 통틀어 100여개의 군이 있었고, 한 군마다 10여개의 현이 있었으므로 현의 갯수는 1,000개 이상이였을 것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의 현 숫자는 1,600개가 넘는다. [[중국]]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에는 [[녹봉]] 비 1천 석이다. 여기까지 보면 현령이 현대 한국의 [[면장|면사무소장]] [[읍장|읍사무소장]] [[동장|동사무소장]] 정도 말석의 벼슬아치 정도로 생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만호 이상이 현령인데 당대 전통사회에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서 대가족 사회인 1호에 5명만 있고 1만호를 다스린다고 해도 5만명을 다스리는 벼슬이다. [[한사군]] [[낙랑군]]의 경우 그 인구를 약 62000호에 40만명 가량으로 기록하고 있다. 비록 한사군 지역이지만 어쨌건 당시 한 호에 6~7명 정도는 됐단 얘기고, 여기에 [[노비]], [[이민족]]과 같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만호 이상인 현령은 족히 10만명 이상은 다스린다는 얘기다. 단, 행정력이나 경제력 등은 당연히 현대의 면장 읍장 동장 등이 비교도 안 되긴 할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예외사항이 있긴 하나 한국의 읍은 최소 인구 2만명 이상이므로 읍장은 상당한 직책이다.] 현령은 목민관으로써 백성들을 최일선에서 접촉 통치하여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정책을 시험하며 관원의 정치 행정적 능력을 인증하여 중앙관직으로 나아가던 나름 중요한 관로였다. [[송나라]] 이후 [[지사(관직)|지사]](知事)[* 현대 한국의 [[도지사]], [[미국]]의 [[주지사]]의 어원이다.]로 개칭하여 지(지역)현사(知지역縣事), 지현사(知縣事), 현지사(縣知事)[* 현 [[일본]]의 현지사의 어원.], 줄여서 [[지현]](知縣)으로 불리웠다. 명청대 인구가 급증한 뒤에도 관리조직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이 현이라고 하는 단위는 한나라 때의 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크고 아름다운]] 인구의 행정구역이 된다. 이에 따라 [[상피제도]]와 현령 한명이 다스려야 하는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나라에서 내려온 현령 한명이 [[거인(동음이의어)#s-2|거인(擧人)]]이나 [[진사#s-1.2|진사(進士)]]와 같은 지방의 사족, 즉 [[신사#s-1|신사(紳士)]]를 막우로 데리고 조직을 꾸려 고용하는 형태로 경영이 된다. 그래서 명청대의 현령은 지방에서 상당한 권력자 역할을 한다. 현대 [[중화민국]]에서는 현장(縣長)으로 도로 개칭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는 현서기가 추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