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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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縣令

1. 개요
3.1. 신라의 관직
4. 관련 글



1. 개요[편집]


전근대 한국사, 중국사에서의 의 지방관. 현은 치하 행정구역[1]으로서 대체로 한 군에 열 개 정도의 현이 소속되어 있다.


2. 중국사[편집]


한나라 때에는 호구 수를 1만 호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상이면 현령을 두고, 이하면 현장(縣長)을 두었다. 품질은 현령이 6백~1천 석이었고, 현장이 3백~5백 석으로, 현의 규모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현령(현장)의 휘하에는 현승(縣丞), 현위(縣尉) 관직을 설치했는데, 현승은 현령, 현장을 보조하는 이방, 현위는 병방같은 경무, 군무관이다. 한나라 당시 중국 전역을 통틀어 100여개의 군이 있었고, 한 군마다 10여개의 현이 있었으므로 현의 갯수는 1,000개 이상이였을 것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의 현 숫자는 1,600개가 넘는다.

중국 삼국시대에는 녹봉 비 1천 석이다.

여기까지 보면 현령이 현대 한국의 면사무소장 읍사무소장 동사무소장 정도 말석의 벼슬아치 정도로 생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1만호 이상이 현령인데 당대 전통사회에서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높아서 대가족 사회인 1호에 5명만 있고 1만호를 다스린다고 해도 5만명을 다스리는 벼슬이다. 한사군 낙랑군의 경우 그 인구를 약 62000호에 40만명 가량으로 기록하고 있다. 비록 한사군 지역이지만 어쨌건 당시 한 호에 6~7명 정도는 됐단 얘기고, 여기에 노비, 이민족과 같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만호 이상인 현령은 족히 10만명 이상은 다스린다는 얘기다. 단, 행정력이나 경제력 등은 당연히 현대의 면장 읍장 동장 등이 비교도 안 되긴 할 것이다.[2] 현령은 목민관으로써 백성들을 최일선에서 접촉 통치하여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정책을 시험하며 관원의 정치 행정적 능력을 인증하여 중앙관직으로 나아가던 나름 중요한 관로였다.

송나라 이후 지사(知事)[3]로 개칭하여 지(지역)현사(知지역縣事), 지현사(知縣事), 현지사(縣知事)[4], 줄여서 지현(知縣)으로 불리웠다.

명청대 인구가 급증한 뒤에도 관리조직은 크게 변하지 않아서, 이 현이라고 하는 단위는 한나라 때의 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크고 아름다운 인구의 행정구역이 된다. 이에 따라 상피제도와 현령 한명이 다스려야 하는 인구가 많아짐에 따라, 나라에서 내려온 현령 한명이 거인(擧人)이나 진사(進士)와 같은 지방의 사족, 즉 신사(紳士)를 막우로 데리고 조직을 꾸려 고용하는 형태로 경영이 된다. 그래서 명청대의 현령은 지방에서 상당한 권력자 역할을 한다.

현대 중화민국에서는 현장(縣長)으로 도로 개칭되었으며, 중화인민공화국 치하에서는 현서기가 추가되었다.


3. 한국사[편집]


고려, 조선시대에는 현령이 말단 지방행정관직 중 하나에 속한다. 품계는 종6품으로서 종4품인 군수보다는 많이 낮은 편이나 전체적인 품계로 보았을 때는 상술했듯 절대 낮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로 따지면 지방의 면장 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군사권, 사법권 등이 있다는 점으로 볼 때 크게는 인구가 적은 군의 군수라고 보는게 맞다. 여담이지만 이 현령들이 떠나고 나서 세우는 영세불망비나 공덕비들은 이상하게도 죄다 철로 만든게 대부분이다.

작은 현은 현감을 설치했는데, 고려시대 속현을 정식 현으로 고친 현의 지방관 감무를 개칭한 관직이다.


3.1. 신라의 관직[편집]








4. 관련 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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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춘추시대에는 군보다 상위 행정구역이었으나 전국시대 후기 이후로는 군의 휘하가 되었다.[2] 참고로 말하자면 예외사항이 있긴 하나 한국의 읍은 최소 인구 2만명 이상이므로 읍장은 상당한 직책이다.[3] 현대 한국의 도지사, 미국주지사의 어원이다.[4]일본의 현지사의 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