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헌 (문단 편집) == 어록 == [youtube(bQVDboFn8TA)] 1949년 6월 25일, 평양에서 열린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제1차 결성 대회에서 남긴 육성 연설이 있다. >"나는 [[보성전문학교]] 교수, [[변호사]], [[동아일보]]사 기자 등 3가지 명함을 들고 [[서양|구미]]를 시찰했다. 어떤 명함이 가장 효과적이었느냐 하면 신문기자 명함이었다. 구미에서 신문기자처럼 권위 있고 자유스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무관의 제왕이었다." >------- >- 1934년 8월호 『신동아』 기고. >"[[3.1 운동]]은 우리 조선 민중의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반항을 가장 집중적으로 표시한 역사적인 전 민족적 투쟁이었다. 그러므로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 수립을 다짐하고 그 목표를 향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는 뜻이다." >------- >- 1946년 3월 3일 『해방일보』 기고. >"우리의 [[8.15 광복|해방]]은 우리의 자력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국제적인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미소공동위원회]]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도와야 한다." >------- >- 1946년 7월호 『인물평론』 기고. >"[[백색테러|테러]]에는 [[적색테러|테러]]로 대답해야 한다." >------- >- 1949년 6월 25일 연설. >"조선 인민은 [[삼팔선|38선]]을 국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인정할 수 없다." >------- >- 1950년 6월 『인민』 기고.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고려대학교 출신/전신 학교]][[분류:메이지대학 출신]][[분류:고려대학교 재직]][[분류:고려대학교 총장]][[분류:김일성종합대학 총장]][[분류:최고인민회의 의장]][[분류:조선로동당 2기 정치위원회 위원]][[분류:명천군 출신 인물]][[분류:양천 허씨]][[분류:1885년 출생]][[분류:1951년 사망]][[분류:동아일보 관련 인물]][[분류:당 대표/북한]][[분류:익사한 인물]][[분류:애국렬사릉 안장자]][[분류:1기 최고인민회의 법제위원회 위원]][[분류:월북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