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허헌 (문단 편집) == 가족 == 본처 정경자(鄭競慈)와의 사이에 딸이 둘이었으나 첫째는 어려서 죽고 둘째 딸 [[허정숙]](본명 허정자)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 유학 중 [[사회주의]]를 공부하고 조선에서 [[박헌영]], [[주세죽]] 부부, [[조봉암]], [[김조이]] 부부와 함께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다. 그녀는 광복 후에 [[소련군정]] 지역에서 활동하였고, [[연안파]] 간부 활동을 하다가 [[김일성]] 계열로 넘어가 북한 고위 정치인이 되었다. 허정숙은 주로 문화, 선전 쪽의 업무를 맡았는데, 문화 선전상으로 재임하던 시절 [[최승희]]와 마찰이 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최승희를 없애버리는데 성공했다. 물론 최승희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최승희는 허정숙뿐만 아니라 다른 당 간부들, 심지어는 김일성과도 툭하면 싸워댔고, 많은 사람들의 공적이 되었기 때문에 최승희의 [[숙청]]이 허정숙의 공로(?)만은 아니다. 허정숙은 자유여성주의 운동을 부르짖으며 몸소 자유연애를 실천했는데, 첫 남편 임원근이 투옥되자, 송봉우와 동거하며 아이를 낳았고 1929년 그가 사회주의에서 사상 전향하자, 또 다른 남자 신일룡과도 외도, 출산한다. 이후 [[최창익]]과 3번째 결혼 및 출산한 뒤 1946년 이혼했고, 최창익이 숙청당할 때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다. 이 시점에서 허정숙은 이미 연안파가 아닌 김일성 쪽으로 넘어간 상황이었다. 허헌은 첫 사위 임원근이 투옥 중에 그 변호를 맡고 있었는데, 딸이 송봉우와 동거하며 아이까지 출산하자 정신적 충격이 아주 컸다고 한다. 본처 이외에 재혼을 하기 전까지 오(吳) 씨, 최(崔) 씨 등과의 사이에서 2남 1녀를 두었으며, 재혼한 후처 유문식(柳文植)과의 사이에서 4남 2녀가 더 있다. 그 중 맏딸이자 (허정숙에 이은) 둘째 딸인 허근욱(1930~2017)은 아버지를 따라 월북했으나 곧 북한 생활에 염증을 느껴 [[6.25 전쟁]] 와중 남편 박노문과 아들을 데리고 [[월남]]했다. 월남 초기에는 아버지와 이복언니 등 가족이 북한의 고위직이라는 이유로 종종 간첩 혐의로 수사를 받거나 수감되는 고초를 겪었으나 1959년 [[KBS]]에 입사하여 라디오 [[방송작가]]이자 [[소설가]]가 되었다. 1989년 KBS에서 정년 퇴직한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여 남북문학교류위원회, 민족평화통일자문위원회, 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다 2017년 3월 2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역시 후처 출생이자 총 6남 4녀 중 7번째인 허종욱(許琮旭)은 훗날 허종(許鍾)으로 개명했으며 북한의 [[유엔|UN]] 차석대사 및 외교부 순회 대사를 역임했다고 허근욱이 밝힌 바 있다.[[http://news.joins.com/article/3507165|#]]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