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함순안 (문단 편집) == 생애 == 함순안은 1909년경 정용대(鄭用大)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갔고, 1909년 음력 2월 27일경 최덕필(崔德必) 외 수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경기도 풍덕군 북면 남촌리 이장 강신규(姜信奎)의 집에 가서 그더러 같은 마을의 김덕인(金德仁)에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보관하여 둔 벼를 매각하여 돈을 마련하라”는 뜻을 전달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1909년 음력 3월 23일경 밤에 박성안(朴聖安) 등 수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김덕인 집에 들어가 군자금 모금에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김덕인이 거부하자 그의 벼 창고를 방화하여 창고와 벼 5섬을 불태우는 등 의병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체포된 그는 1909년 10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방화·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아 옥고를 치르던 중 1912년 9월 13일 징역 3년 6월로 감형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함순안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