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푸 (문단 편집) === [[청나라]] === [[파일:external/i2.w.yun.hjfile.cn/song5_5022.jpg]] 명나라 전기와 후기의 대표적인 여성 의상과, 청 초기의 한족 여성 의상이다. [[파일:external/i2.w.yun.hjfile.cn/qing6_5022.jpg]] 청 중후기~ 근대로 넘어가는 때의 여성 의상.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13672ca509891cdca17b9b23181b1cea.jpg]] 청 시대의 한푸를 입은 중국 한족 여성 일러스트. 해당 일러스트 작가가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들(한족+[[소수민족]])의 전통의상 차림을 그린 것인데, 한족의 의상이 청 시대의 한푸이다.[* 해당 일러스트 작가는 [[대만인]]이다.] [[파일:external/g4.hexunimg.cn/141018679.jpg]] 드라마 <후궁견환전>에서, 입궁 전 한족의 평상복 차림을 한 주인공 견환. 견환은 한군기 출신이다. 청 시대 한족 여성들은 치파오를 입는 만주족 여성과 달리, 치마(췬)와 저고리(아오)로 구성된 복장을 계속 입었다. 더불어 [[전족]] 풍습도 유지했다. 청나라가 강요한 남자들의 복식은 만주족 의상에 동화되었으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한족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깥 활동이 적은 여자들의 풍습은 청나라 정부에서[* 만약에 한족 남성들이 한푸를 입다가 청나라 정부에게 발각당할 경우 아마 바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유교도나 [[도사]], [[승려]]들은 속발이나 아예 삭발을 하고 한푸를 입었지만. 남성 한족 전통 한푸를 유지시켜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주족인데 만주족에겐 복식을 제한하는 법이 없어서 만주족 남성이 한족식 한푸를 입고 다녀도 큰 문제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륭제]] 초상화 중 한족 한푸를 입고 ~~[[코스프레]]~~ 그린 것이 있다. 정작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화권 사극]]에 등장하는 만주족 캐릭터는 한푸를 입은 모습이 전혀 안 나오지만. 그리고 남성 한족 전통 한푸가 유지된 것은 유목민계 정복왕조답게 종교에 관대한 청나라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유교도 및 도사들의 한푸 착용을 금지하지 않은 것도 크다.] 그냥 내버려둔 측면이 크다. 명나라 시대에 존재했고, [[조선]]에도 전해졌던 하피는 청나라 시대에 와서는 본래의 긴 띠의 형태에서 조끼 형태의 겉옷으로 변화했고, 한족 명부(귀부인)는 길일이 되면 망포(蟒袍)라는 한족의 의복 위에 조끼로 변한 하피(霞帔)를 덧입고 그 위에 운견(雲肩)이라는, 역시 명나라 시대부터 이어온 어깨 망토를 걸쳤다. 머리에는 명나라 시대부터 내려왔던 봉관을 썼다. [[https://tc.sinaimg.cn/maxwidth.800/tc.service.weibo.com/mmbiz_qpic_cn/463f84033940d7cd764f2434ba169a15.jpg|이런 식으로]] 청 시대에는 이질적으로 정주민족인 한족들이 이부식으로 나뉜 복장을 하고 만주족이 긴 치파오를 입었는데, 이것은 원-명을 거치면서 한족 문화에 이부식 옷차림이 정착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만주족의 의복 역시 완벽한 원피스 형태의 현대 치파오 복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만주족의 옷은 [[명나라]]와 [[조선]]과 마찬가지로 이부식 복장 위에 포를 덧입는 것으로 봐야 맞다. 만주족의 치파오는 창파오(長袍), 긴 겉옷(포)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안쪽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저고리와 바지의 이부식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 고대 한국의 기본 복장 역시 바지-저고리 위에 포를 덧입는 것이었다. 유목 문화가 남아 있는 기마민족의 공통적인 복식 문화라 할 수 있다.] [[파일:external/2.share.photo.xuite.net/978231699_m.jpg]] 청 시대의 아오와 마면군.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만주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상의의 경우에는 옷의 형태와 여밈이 치파오와 비슷한 단추 여밈으로 바뀌었다. 반면 치마는 명나라 시대부터 입었던 마면군을 계속해서 입었는데, 청대에는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변했다. 난간 모양처럼 치마폭에 선을 두르거나, 무수히 많은 주름을 잡고 그 위에 자수를 놓는 등 사치스럽게 장식한 치마가 많았다. 명나라를 포함한 순수 한족 왕조에서 유교의 영향으로 검소함을 추구한 반면, 이민족계 혼혈왕조인 당나라와 순수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 청나라는 상대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족 여성들의 의상도 그 영향을 받아 이민족계 왕조 치하에서는 상대적으로 화려해진 듯하다. 청나라 시대에는 하의로 바지만을 입기도 했는데, 이것은 만주식 문화로,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만 입는 것은 초중기에는 주로 하급 계층의 여성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청나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신분과 민족을 막론하고 한족 여성도 저고리와 바지만 입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한족 여성들은 이부식 의상을 고수했지만 정작 한족 국가인 [[중화민국]] 수립 이후에는 오히려 만주족이 입었던 치파오를 입기 시작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 이미지는 1920~30년도 중화민국 시기에 한족들이 개량한 의상으로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알고 보면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옷[* 여기서 말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기존 치파오를 개량하여 타이트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디자인을 한 근세의 물건이다. 물론, 현대에 개량된 치파오도 엄연히 그 원본으로 만주족의 치파오가 있기에,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의상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근세에 들어, 한족-만주족 가리지 않고 중국 국적의 여성이면 치파오를 전통 의상으로 입게 된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중국식 전통 혼례 복장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 현대 만주족의 경우 언어, 문화적으로 한족에 거의 동화되긴 했지만 신부가 전통 혼례 복장으로 청나라 만주족 여성의 복장을 입는 점에서 한족과는 차별화된다. 한족계 무슬림인 [[회족]] 또한 한푸와 전혀 다른 형태인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전통 혼례 복장으로 입는다.] 요새 들어 일부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세지면서 명나라 시대의 한푸나 그 이전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화교들을 포함한 많은 한족 집단이 여전히 청나라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식으로 쓴다.[* [[동남아시아]]로 간 [[화교]] 집단인 "[[페라나칸]]" 집단의 전통 혼례 복식은 청 시대의 아오췬과 매우 비슷하다] 청나라 시대에도 한족 [[색시|새색시]]는 만주족 새색시와 다른 차림으로 성장(成裝)하였으므로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성용 한푸 외에 남성용 한푸 역시 명맥이 끊기지는 않았다. [[도교]] 도사들은 한족의 한푸와 속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그외 만주족 귀족이나 황족들은 한푸를 취미삼아 입을 수 있었으며 반청 인사들을 비롯한 민간에서 한푸를 전승시켰기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경극]]배우들 또한 무대의상으로 속발가발을 쓰고 한푸를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