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푸 (r20220720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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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알려진 한푸의 모습[1]

1. 개요
1.1. 명칭의 유래
3. 시대별 한푸의 모습
4. 종류
4.2. 남성 한푸
5. 현대 중국 내의 인식과 한푸 트렌드
6. 대중매체에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정체: 漢服
간체: 汉服
Hànfú
다른 명칭
漢裝
華服

중국, 특히 한족의 전통 복식. 원래 '한푸'라는 말은 그저 한나라 시대의 복식을 의미하는 말일 뿐이었지만, 한국한복일본기모노만주족치파오가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이름을 내세워 적극적으로 홍보되고 있는 반면, 중국의 경우엔 중국의 복식을 일컫는 단어가 딱히 없었기에, 제대로 된 홍보가 이루어지지도 못했으며, 한복과 기모노에 비해 유명세가 저조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만주족의 전통복식인 치파오가 한족의 전통복식들보다 유명하여, 오히려 치파오를 한족의 전통 복식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였다.[2] 여기에 중국의 중화사상, 대한민족주의 정서까지 가세하여 '한족의 우월한 전통문화들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 네티즌들을 중심으로 한푸의 의미를 한족 전통복식, 더 나아가 중화 전통복식으로 확장시켜 중국의 모든 전통복식을 통틀어 일컫는 단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가 나오기 전에는 치파오 이전의 복식들을 어떻게 칭했냐 하면, 그냥 그 시대의 명칭에 服자를 붙여서 불렀다. 당나라 복식은 탕푸(唐服), 명나라 복식은 밍푸(明服)라는 식으로. 한 마디로, 한푸에 속하는 복장들은 전부 실존했던 옷들이 맞지만, '한푸'라는 단어 자체는 최근에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한푸를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신조어인 셈.

한국식 한문 독음으로는 한국의 전통의상처럼 둘 다 한복이지만, 한자가 漢服韓服으로 다르다. 때문에 중국어 발음에 따라 '한푸(Hanfu)'라고 구분에서 일컫는다. 또한 전통의상은 대개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부르고 표기하기 때문에 어찌 되었든 한푸라 일컫는 것이 맞다. 우리가 일본의 전통의상을 한국 한자음인 '착물(着物)'이 아니라 기모노라 하고, 만주족의 전통의상을 '기포(旗袍)'가 아닌 치파오[3]라 일컫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중국 전통의상으로 널리 알려진 치파오(旗袍)는 청나라 이후 전래된 만주족의 전통복장에서 비롯된 복식으로, 이전 한족의 복식과는 차이가 크다. 즉, 치파오모든 중국 시대의 복식을 한푸라 할 수 있다. 사실 상술하였듯 한푸란 말도 중국 인터넷을 비롯한 민간에서 임시로 만든 용어이며, 여기서 치파오만 한푸의 분류에서 빼놓는 것은 상당한 모순이 존재한다. 또한 오랜 시간 가까이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만큼 유사한 부분은 있을 수도 있음에도 한국이나 일본, 베트남, 위구르 등의 복장에서 조금이라도 유사한 복장을 모두 한푸라 주장하며 매체에 노출시키는 것 또한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후술.

중국의 한푸(汉服)는 본래 남녀를 불문하고 바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국의 한복(韓服)의 근간이 되기도 하는 북방계 호복을 들여오면서 바지를 도입했다. 동아시아는 문화적으로 매우 가깝기 때문에 서로의 의복 양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은 조선 이전까지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단령을 관복으로 사용했으며, 중국은 명나라 홍치제 이전까지 고려양이 유행하기도 했다. 특히나 중국의 한푸는 이민족의 영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변해왔다. 당나라수나라한족선비족이 세운 국가이기 때문에 의복에서 선비족의 복식과 한족의 복식이 융합된 형식을 보이며, 명나라홍치제 이전까지 몽골풍과 고려풍을, 홍치제 이후부턴 송나라의 의복과 몽골풍이 섞인 형태의 한푸가 유행했다.

한국의 한복(韓服)은 본래 북방계 복식인 호복의 특징을 따라 소매가 좁았는데, 이후 소매가 넓어졌다가 조선시대를 지나며 다시 소매가 좁아지게 되었다. 중국의 한푸(汉服)도 마찬가지로 북방 유목민족[4]의 복식에서 유래한 호복의 영향을 받아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북방계 호복양식인 바지를 한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주로 거란족, 선비족 같은 몽골계 유목민이 입던 호복인 단령을 수, 당 시기부터 받아들이기도 했다.[5]

원래 위아래 한 벌인 통옷에서 발전했으며, 일본의 기모노와 마찬가지로 마름질[6]을 하지 않고 바느질을 한다는 특징이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각 부분을 조각조각 잘라서 잇지 않고 천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든다. 이렇듯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기에 각 신체 부위에 딱 맞게 만들어지지는 않는 편이다. 말하자면 다소 프리사이즈 같은 격.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중국은 주변 이민족들과 영향을 워낙 많이 주고받은지라 같은 시대의 복식일지라도 의복이 천차만별이라서 가령 조복식의 예복, 단령 같은 공복, 평상복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해 여기에 나와있는 옷들은 아주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한 의복들은 관련 링크의 "연관목차"를 클릭하여 왕과 귀족들 의복을 확인하면 볼 수 있다. 일단 고려 때의 의복이지만 상위층은 중국의 의복을 채용하였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조복, 면복, 구장복, 칠장복, 공복 등을 참고하면 된다, 친절하게도 그 의복에 대한 상세한 출처가 있어 어느 시대 중국 것인지 확인이 가능하다.(사실 본 링크의 의복들 대다수가 복원 사료로 중국의 의복에 근거하여 복원)

1.1. 명칭의 유래[편집]


한푸라는 명칭은 21세기에 들어와서 새로 생긴 신조어다. 특히 중국 민족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치파오를 비롯한 만주족(청나라) 문화가 중국을 대표하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정착된 용어인데, 일단 한푸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이들은 '삼황오제 시대부터 청나라 이전까지 한족들이 입어왔던 모든 옷'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한푸라는 용어는 기준이 상당히 모호하여 중국 복식학계에서도 정의가 논란 대상이 되고 있다. 중앙일보 - 치파오 벗고 한푸 입는 중국…한족주의 부활하나 기사에서 <한푸는 민감한 주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복식 전문가는 “한푸는 신조어”라고 말했다. “한족의 전통 복장을 뭉뚱그려 ‘한푸’라고 부를 뿐, 한·당·송·명 등 한족 왕조마다 독자적인 복식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한푸라는 단어가 정착한 것은 2000년대로 추정되고 있는데, 위 기사에서는 <2001년 중국 상하이 APEC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치파오를 입고 사진을 찍었는데, 여기에 일부 중국인들이 반발하면서 '한푸'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고, 상술한 기사에서는 2003년 정저우(郑州)의 노동자 왕러톈(王乐天)이 직접 만든 한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면서 한푸 부흥운동이 시작됐다>고 서술한다. 그리고 <2004년에는 싱어송라이터 쑨이(孙異)가 한푸 부흥 운동 주제가 ‘중회한당’을 작곡하는 등, 부흥운동이 힘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리잡은 한푸라는 명칭은 학술적인 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복식계에서도 한푸의 정의를 두고 논란이 많으며, 현지에서조차 공식 용어로 인정받지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명칭부터 청나라에 대한 반발 및 한족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라는 문제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중국 내 복식학자들은 2020년대 들어 심각해진 중국의 복식 동북공정을 우려하면서도 한족 민족주의 세력과 공산당 양쪽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에 명칭과 분류에 대한 학술적 정의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 하는 상황이다.

청나라만주족 문화를 버리고, 대신 한족의 문화를 부흥시키자는 중심의 민족주의가 공고해진다는 비판 역시 뒤따른다. 위 기사에 따르면 <장셴(张跣) 청년정치학원 교수는 “한푸 운동은 한족의 순결성과 우월성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며 “한푸 운동은 ‘민족의식의 회귀’가 아니라 ‘민족의식의 퇴화’이며 ‘문화의 자각’이 아닌 ‘역사의 퇴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중국의 현행 헌법은 “민족단결을 유지·보호하는 투쟁 중에 대민족주의(大民族主義), 특히 대한족주의(大漢族主義)를 반대한다”고 전문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헌법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때문에 중국 공산당에서는 한복을 중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역사왜곡을 진행하면서도, 한푸 부흥운동 세력들에 대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어느 정도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적당히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청나라 뿐 아니라 명나라, 송나라, 당나라 역시 이민족의 영향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론의 여지없이 푸라고 할 수 있는 복식은 한나라, 길게 잡아도 삼국시대(중국) 복식까지다. 마침 인기 최고 시대다 남북조 시대 이후의 문화를 논하면서 이민족의 영향을 배제하거나 역으로 뭐든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이비 역사학일 뿐.

2. 호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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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호복()

호복은 북방계 기마민족의 복식들의 총칭으로, 정주민족의 복식인 한푸와 대비되는 복식이다.

이 호복은 한족주의자들이 존재를 부정하고 이런 옷 역시도 한푸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는 복식이기도 한데, 이는 자신들의 조상이 오랑캐의 옷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심리이다. 호복은 한푸보다 오히려 한복과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는데 모자에 깃털이 있는 등 고구려 벽화에서 등장하는 복식과도 상당히 비슷해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 한복 자체가 북방 알타이계 복식인 호복이 근간이다. 호복이란게 이런 북방계열 복식을 가리키는 것이니 비슷한 것은 당연지사.

농경 정착계 복식인 한푸와 달리 북방계 복식인 호복·한복이 지니는 대표적인 특징은 을 타기 편하도록 바지가 존재하고 을 쏘는 등 무기를 다루기 편하도록 좁은 소매 형태라는 것이다. 유목과 기마 생활을 하던 북방 민족들이 입던 옷에서 유래한 만큼 높은 활동성을 고려한 구조라는걸 알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자연환경 영향도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한푸는 더운 지역 환경의 영향으로 바람이 잘 통하도록 소매가 넓고 치마를 입는 형태를 띄며[7], 북방계에서 유래한 호복·한복은 추운 지역 환경의 영향으로 바람을 잘 막도록 소매가 좁고 바지를 입는 형태를 띈다고 추측하는 시각도 있다. 북방계 민족들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던 지금의 중앙아시아, 러시아 남부, 몽골고원, 중국 북부, 만주, 한반도는 알다시피 겨울이 오면 굉장히 춥다.

호복은 전국시대였던 기원전 3세기 이후 중국의 한푸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영향이 바지를 도입한 것이다. 한푸는 원래 상의하상(上衣下裳)형 복식으로 남성도 치마를 둘렀으며, 상의에 바지를 입는 상유하고(上襦下袴)형 복식은 원래 기마민족들이 입는 복식이던 호복의 특징이다. 그러다가 조무령왕이 기마전술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오랑캐의 야만적인 옷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격렬하게 반대하던 신하, 왕족, 태자 등을 무시하고[8] 호복령을 도입한 것이 기점이 되어 전국시대 국가들이 일제히 군사력 확충을 위해 기마병을 운용하며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한푸에서도 북방계 바지가 생겼고, 이후 단령을 비롯한 호복 또한 한푸로 편입하였다.

자세한 것은 호복 문서로.


3. 시대별 한푸의 모습[편집]



3.1. 상/주 시대[편집]


상(은)나라 시대 한푸.
오스프리에서 그린 주나라 시대 한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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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알타이 복식 계통인 호복 스타일과 달리 바지가 없고 남녀 모두 치마가 발달했으며, 몹에 겹겹이 둘둘 감는 형식이다.


3.2. 춘추전국시대[편집]


남성들의 경우 이때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중국의 기마술은 이 시대에 도입되었고, 한푸의 바지도 전국시대 조나라에서 조무령왕이 중원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북방 민족들의 기마병을 도입하면서, 말을 타기에 유리한 바지가 함께 도입된 것이다. 처음엔 '어찌 우리가 오랑캐들 옷차림을 따라하느냐'면서 반대여론도 많았지만[10], 전란의 시대에 군사력 증강을 위한 기마병 편제가 전 중원에 퍼지면서 군복 격이었던 바지가 전 중국에서 남성 의상이 되었다.[11]

3.3. 진나라, 한나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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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계의 옷인 한복과 달리 한푸는 바지를 입지 않거나 가랑이가 트인 풍차바리를 입었기 때문에 빙글빙글 돌려 허리에서 묶는 원피스 형태인 곡거포(曲裾袍)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목을 완전히 목도리처럼 감싸던 형태가 점차 아래로 내려와 내의와 중의가 드러났으며, 고대 유물에서 남아 있는 다양한 모양의 상투에서 여러 민족들이 융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몸을 한벌로 깊게 감싸는 옷인 심의(深衣)는 이 곡거포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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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초기에 옷자락이 곧은 직거포(直裾袍)가 잠시 유행하였다가 한나라 중기 이후부터 바지를 입기 시작하면서 함께 자리잡게 된다.


3.4. 위진남북조시대[편집]


전통 예법과 교리를 중시했던 한나라가 멸망하고, 사회 혼란기 속에서 중국인들은 자유로운 기풍을 추구했다. 남자들이 화장을 하기도 하고, 여자들의 옷은 화려하고 복잡한 형태로 꾸며진 잡거수소복으로 발달하게 된다. 또한 워낙 많은 나라가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형태가 획일화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도교의 유행으로 선녀를 형상화한 기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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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의 발달로 점차 옷깃과 옷자락이 곧아지고 바지저고리, 치마저고리의 두벌옷 형태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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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대수관삼으로 남성들이 입던 옷이다.


3.5. 당나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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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족 남자들과 일부 여자들이 관복 겸 기본 복식으로 자주 입던 단령. 서역에서 유래한 호복(胡服)의 한 종류이다. 동아시아 나라들이 관복으로 단령을 입는 문화가 이 때부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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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초당(初唐), 무주(武周),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晚唐) 시기 여자 복식

북방계 이민족인 선비족 출신의 호한 혼혈 무천진 관롱집단이 다스리던 당나라한족 입장에서 보면 오랑캐() 문화로 해당할 요소들을 다수 받아들일 정도로 개방적인 성향이었고, 그만큼 실크로드를 통해 외국과의 교류가 많고 문화와 경제가 크게 번성했던 시기였다. 기존까지 형성된 중국 고유 문화에 여러 지역의 이민족 문화가 융합하여 많은 발전을 보였는데 의복 또한 개방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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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당나라 시기의 중국은 여러 국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성문화까지 개방적으로 변하여 유교적인 관습으로 제한받던 여성들의 의복은 굉장히 개방적으로 변해갔다. 옷깃이 내려가고 소매가 넓고 크며 치마를 허리 높이 묶어 가슴골을 크게 강조했으며, 투명한 얇은 비단으로 몸만 가리는 형태의 복식이었다.

이러한 발전 덕분에 당나라 시기의 한푸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선호하는 전통의상이다. 흔히들 최고의 전통의상으로 당나라 때 의상을 꼽는다.

한국남북국 시대로 들어 신라발해에서 고위층을 중심으로 이러한 당나라풍 복식을 반영했고[12], 일본도 비슷한 시기였던 나라 시대~헤이안 초기부터 고위층이 입던 기모노에서 당나라 스타일의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가 동아시아 각국의 복식이 가장 닮은 시기였다.

참고로 일부 한/중/일 일부가 당나라 복식 전파를 과도하게 해석하여 한국의 고대 한복과 일본의 고대 기모노를 형성한 근간이 당나라 한푸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고 전문가들마저 진지하게 그런 주장을 펴는 경우도 있으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고대 한복은 호복에서 기원한 것이며 고대 기모노 역시 호복이 기원이다.[13] 당나라, 남북국 시대 신라와 발해, 나라 시대 일본이 동시기 당나라의 영향을 짙게 받았더라도 한 시대에 유행했던 스타일일 뿐이지 아예 당나라 복식이 한복과 기모노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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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를 추구하는 풍조가 성행해 화장술이 발전했다. 얼굴을 새하얗게 칠하고 짙은 눈썹, 펭귄 같은 입술, 과한 볼터치, 인도의 빈디 영향을 받은 미간의 꽃점 등으로 포인트를 주는 게 특징이다.

3.6. 송나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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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의복은 당나라 의복에 송나라만의 특징을 더했다. 당나라와 달리 정세가 안정적이지 못한데다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 당나라보다는 덜 화려하고 조금 더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당나라 때의 과감함은 어디로 가고 여러 겹으로 꽁꽁 싸맸다 전대의 당나라와 후대의 명나라도 그랬지만 송나라의 복식 역시 고려거란 등 주변 민족들과의 복식과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다.

남성 복식의 경우 당나라 때도 입었던 기존의 단령복두 이외에도 조선 후기의 고사인물화 같은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포(袍) 종류 비슷한 겉옷 위에 치마를 두르는 복장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사복겸 일상복으로 동파관과 심의를 입게 되는데 동파관과 심의는 고려에서도 수입하여 연거복으로 입었던 것이 이후의 조선에도 전해졌다.

여성들은 가슴가리개 형태의 속옷인 말흉(抹胸)을 두르고 속바지인 개당고와 합당고를 차례대로 껴입은 뒤 그 위에 치마/바지를 입고 마무리로 배자를 걸쳤다. 배자는 소매 길이와 기장이 길거나 짧은 것부터 시작해서 소매 폭이 넓은 것과 좁은 것이 있는 등 종류가 다양했으며, 소매와 옷깃에 자수를 넣어 장식했다. 착장법


3.7. 명나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한푸/명나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8. 청나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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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전기와 후기의 대표적인 여성 의상과, 청 초기의 한족 여성 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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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중후기~ 근대로 넘어가는 때의 여성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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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시대의 한푸를 입은 중국 한족 여성 일러스트. 해당 일러스트 작가가 중국을 구성하는 민족들(한족+소수민족)의 전통의상 차림을 그린 것인데, 한족의 의상이 청 시대의 한푸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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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후궁견환전>에서, 입궁 전 한족의 평상복 차림을 한 주인공 견환. 견환은 한군기 출신이다.

청 시대 한족 여성들은 치파오를 입는 만주족 여성과 달리, 치마(췬)와 저고리(아오)로 구성된 복장을 계속 입었다. 더불어 전족 풍습도 유지했다. 청나라가 강요한 남자들의 복식은 만주족 의상에 동화되었으나, 여성들은 상대적으로 한족식 문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바깥 활동이 적은 여자들의 풍습은 청나라 정부에서[15] 그냥 내버려둔 측면이 크다.

명나라 시대에 존재했고, 조선에도 전해졌던 하피는 청나라 시대에 와서는 본래의 긴 띠의 형태에서 조끼 형태의 겉옷으로 변화했고, 한족 명부(귀부인)는 길일이 되면 망포(蟒袍)라는 한족의 의복 위에 조끼로 변한 하피(霞帔)를 덧입고 그 위에 운견(雲肩)이라는, 역시 명나라 시대부터 이어온 어깨 망토를 걸쳤다. 머리에는 명나라 시대부터 내려왔던 봉관을 썼다. 이런 식으로

청 시대에는 이질적으로 정주민족인 한족들이 이부식으로 나뉜 복장을 하고 만주족이 긴 치파오를 입었는데, 이것은 원-명을 거치면서 한족 문화에 이부식 옷차림이 정착된 것이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만주족의 의복 역시 완벽한 원피스 형태의 현대 치파오 복장이라고 보기 힘들다. 만주족의 옷은 명나라조선과 마찬가지로 이부식 복장 위에 포를 덧입는 것으로 봐야 맞다. 만주족의 치파오는 창파오(長袍), 긴 겉옷(포)의 역할을 한 것으로, 안쪽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저고리와 바지의 이부식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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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시대의 아오와 마면군.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만주족의 영향을 짙게 받아, 상의의 경우에는 옷의 형태와 여밈이 치파오와 비슷한 단추 여밈으로 바뀌었다. 반면 치마는 명나라 시대부터 입었던 마면군을 계속해서 입었는데, 청대에는 더 화려하고 정교하게 변했다. 난간 모양처럼 치마폭에 선을 두르거나, 무수히 많은 주름을 잡고 그 위에 자수를 놓는 등 사치스럽게 장식한 치마가 많았다. 명나라를 포함한 순수 한족 왕조에서 유교의 영향으로 검소함을 추구한 반면, 이민족계 혼혈왕조인 당나라와 순수 이민족 왕조인 원나라, 청나라는 상대적으로 화려함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족 여성들의 의상도 그 영향을 받아 이민족계 왕조 치하에서는 상대적으로 화려해진 듯하다.

청나라 시대에는 하의로 바지만을 입기도 했는데, 이것은 만주식 문화로, 치마를 입지 않고 바지만 입는 것은 초중기에는 주로 하급 계층의 여성이 그렇게 했다. 하지만 청나라 후기에 들어서면서 신분과 민족을 막론하고 한족 여성도 저고리와 바지만 입기도 했다. 이후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한족 여성들은 이부식 의상을 고수했지만 정작 한족 국가인 중화민국 수립 이후에는 오히려 만주족이 입었던 치파오를 입기 시작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 이미지는 1920~30년도 중화민국 시기에 한족들이 개량한 의상으로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알고 보면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옷[17]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 청나라 시대의 한푸는 중국식 전통 혼례 복장으로 가장 많이 쓰인다.[18] 요새 들어 일부 한족 민족주의자들의 활동이 거세지면서 명나라 시대의 한푸나 그 이전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장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화교들을 포함한 많은 한족 집단이 여전히 청나라 시대의 한푸를 혼례 복식으로 쓴다.[19] 청나라 시대에도 한족 새색시는 만주족 새색시와 다른 차림으로 성장(成裝)하였으므로 그 전통이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여성용 한푸 외에 남성용 한푸 역시 명맥이 끊기지는 않았다. 도교 도사들은 한족의 한푸와 속발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고, 그외 만주족 귀족이나 황족들은 한푸를 취미삼아 입을 수 있었으며 반청 인사들을 비롯한 민간에서 한푸를 전승시켰기에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4. 종류[편집]


* 여기에 표기된 한자는 모두 정체자이며, 중국에서 쓰는 것은 간체자다.

* 기모노 문서를 봐도 알 수 있듯 전통복식은 대개 그 나라의 발음대로 부른다. 반대로 외국에서는 한복을 한국 발음대로 표기하고 부른다. 한국식 한문 독음이 아닌 중국어 발음대로 적어야 한다.


  • 샹이샤상(上衣下裳/shàngyīxiàshāng) : 상의와 치마를 입은 복식을 뜻하는 말로, 중국 복식을 대표하는 말로 통용된다.[20] 말 그대로 상의와 치마를 입은 것을 상의하상이라 한다.


4.1. 여성 한푸[편집]



4.2. 남성 한푸[편집]


  • 몐푸(冕服/miǎnfú)
  • 후푸(胡服/húfú)
  • 창산(長衫/chángshān)
  • 자오산(罩衫/zhàoshān)
  • 차오푸(朝服/cháofú)
  • 창푸(長服/chángfú)
  • 파오산(袍衫/páoshān)
  • 비자(比甲/bǐjiǎ)
  • 룽파오(龙袍/lóngpáo) : 용포
  • 망파오(蟒袍/mǎngpáo)
  • 푸터우(幞頭/fútóu)
  • 잉자오푸터우(硬脚幞頭/yìngjiǎofútóu)
  • 리꽌(禮冠/lǐguān)
  • 우샤마오(烏沙帽/wūshāmào)

5. 현대 중국 내의 인식과 한푸 트렌드[편집]


근대 이후 중국이 서구 근대화되어감에 따라 치파오 등 일부를 제외한 중국 전통 복식은 양복 정장이나 인민복 등 서양의 영향을 받은 옷들이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한푸 또한 구시대의 취급을 받아 명절 때나 관광지에서나 입는 전통 복장이 되어갔다. 그러다가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정치 경제적 사정이 호전되고 중국의 민족주의가 흥기함에 따라 중국의 전통 의복 그 중에서도 중국의 주 민족 한족의 전통 복장인 한푸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006년, 베이징 대학 역사학과 학생들이 한푸를 복원하여 홍보한답시고, 자기들 주장으로는 한푸랍시고 입고서 시민들과 만났으나, 결과물은 고려양의 개량 버전이었으며, 이는 한나라 시절의 한푸와 전혀 다른 것은 물론이고, 송나라 시절의 한푸와 비교해도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시 중국 시민들의 경우, 대장금의 인기와 한류의 영향에 의한 한복의 인지도 상승 등으로 '한푸가 아니라 한복이네’ 또는 '대장금에서 본 옷이다'라고 인지한 경우가 상당수라고 한다.# [21] 중국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우선 청나라 때 변발정책과 더불어서 복장도 바꿀 것(체발역복)을 강제했기 때문에 전통적인 한푸가 거의 300년 단절된 것도 있고,[22] 여기에 추가로 모택동 시절의 문화대혁명 때문에 전통문화와 단절된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명나라 초기 베이징 일대의 고려양 한푸야 고려옷과 교류하여 영향을 받은 것이고 별로 오래 유행했던 것도 아니라서 한복으로 착각한다고 이상한 건 아닌데, 당나라 복식을 가지고 기모노 아니냐 일본인 코스프레하냐고 묻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현대의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한족들의 민족주의 의식의 고취와 더불어 한족의 한푸를 입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한푸운동(영문위키). 전국 시대부터 이민족들의 옷(호복)이 유입되어 중국 역사가 흘러가면 갈수록 원본에 가까운 치마형 한푸보다는 바지저고리 형태의 실용적인 의복을 착장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진다. 이유야 당연히 활동이 편해서. 실제로 호복 유입 전의 한푸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현재 한푸라고 홍보되고 있는 중국 고중세 복식들은 한족의 한푸의 원형에 호복의 양식이 깊이 들어간 형태이다. 상고 한족의 한푸는 한국의 심의 비슷한 옷이다.

현재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의 검색어 ‘#한푸’는 클릭 수가 21억 6천만 건을 기록했다. 2020년 7월 17억 3천만 건에서 2020년 10월에만 4억여 건이 폭등했다. 짧은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에 올라온 한푸 영상은 350만 건, 중국이 차단한 인스타그램에도 #한푸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4만 5천 건에 이른다. 한푸 열풍이 전세계 화교 사회로 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중국 내에서 한푸 입기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타오바오의 관계자는 "송나라 배경의 드라마 <녹비홍수>가 인기를 끌면서 2020년 3월 한푸 판매량이 전년보다 146% 급증했다." 하고 말했다. 타오바오가 발표한 '2019 중국 패션 트랜드 보고'에 따르면 여성복 인기검색어 3위, 남성복 인기검색어 10위에 '한푸'가 올랐다. 중국 최초의 한푸 브랜드 '중회한당'은 올해 10월까지 13개 매장을 새로 오픈했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이 지난해 전체 매출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급상승중이다. 한푸 관련 포스트

2010년 이후로 아이치이, 텐센트 비디오등의 OTT들이 등장했다. 이 플랫폼들이 만든 사극드라마들이 엄청난 대히트를 기록하며 한푸에 대한 중국인민의 인기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후 최고수준에 이르렀다. 제작되는 사극드라마들의 수도 엄청나게 많아진 상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극드라마는 청나라가 아닌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되고 있다.[23] 한푸를 코스프레하는 중국인들도 많아졌고 더우인이나 비리비리같은 곳에서 한푸를 입은 영상이 인기영상에 최소 한두개정도는 올라와 있는 상태다. 예능에서 mc빼고 한푸만 착용하거나 출연자 전원 한푸만 착용하는 프로그램까지 생긴 상태다.

그렇지만, 단순히 잃어버린 역사를 찾자는 좋은 취지의 운동이 아니고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가 심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국수주의 중국인분청우마오당들이 자국의 한푸를 사랑하는 수준을 넘어서 중국 영토 내에서 출토되는 것들은 물론, 중국의 소수민족이 입는 모든 양식의 의복들을 싸그리 다 한푸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복기모노 등 주변국의 전통복장들도 모조리 한푸라고 주장한다.

한푸 부흥운동은 치파오를 비롯한 청나라의 문화에 반발하여 한족 중심 민간단체가 시작했다. 그런데 한족이 아닌 다른 민족들의 복식의 영향을 받았거나 한족과 한족 외 타 민족이 지배계층이었던 시절 중국인들이 입어온 위진남북조, 당나라, 송나라,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명나라 복식 모두 호복이거나 호복의 영향을 짙게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식들은 물론 중국 소수민족의 옷들까지 전부 한푸(汉服)라고 부르지만 유독 만주족의 영향을 받은 치파오만은 한푸가 아니라고 하니, 과연 한푸가 무엇인지부터 따져야 할 판이다. 사실 민간 주도 한푸 부흥운동은 한족주의를 경계하는 민족주의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과도 차이가 있다. 만주족을 배제하고 한족 중심의 사상을 주장하는 것은 쑨원오족공화[24]와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당장 중국 헌법은 표면적으로는 중국 여러 민족들의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화주의를 내세우고 한족 민족주의인 대한족주의를 반대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만주족의 치파오만을 유독 배제하고 한족의 한푸를 내세우는 것은 중국의 현행법을 정면으로 저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 역시 나온다. 중국 공산당 측은 한푸 부흥 운동을 대놓고 밀어주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제재하지도 않는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한족 민족주의자들은 청나라를 만악의 근원으로 취급하고 이들 사이에선 만주족과 연관된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만주족들이 중국 공산당 및 그와 연계된 조직을 모두 은밀히 조종하고 있으며, 계획생육정책 또한 한족을 소수민족들과 혼혈시켜 말살하기 위한 계획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대한족주의자들은 한푸 역시 호복을 비롯한 주변 복식의 영향을 받아왔고, 한복과 기모노, 아오자이 등 주변국들의 의상들이 한푸와 교류하면서도 독자적인 발전계보를 탔다는 역사를 무시하거나 부정하며 증거를 가져다줘도 외면한다. 트위터인스타그램 등지에서는 VPN을 사용하는 중국 네티즌들과 한국, 일본, 베트남 등 다른 나라의 네티즌들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복을 그리는 국내 작가들이 중국인들의 공격을 당하는 일도 시도때도없이 일어나는 중이다. 조금이라도 주변국의 전통복장과 닮은 부분을 찾아내기 위해서 신장 위구르 자치구 같은 지역의 전통복식을 들고와서 한푸를 배꼈네 마네 하는 모습을 보면 황당할 정도. 특히 원말명초 고려양 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여 거론하면 열폭 분노한다.

실제로 2020년, 샤이닝니키 한복 사태를 위시한 중국의 한복 왜곡 논란 소위 '한복공정'이 일어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6. 대중매체에서[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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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냥 쉽게 생각해서 용비불패나노마신, 화산귀환 등의 무협지에 나오는 복식을 떠올리면 된다.[2] 이는 한푸가 중국 대륙을 차지했던 다른 이민족 국가들의 의복은 포함시키면서 청나라치파오만은 제외한 모순적인 상황의 이유가 된다.[3] 중문 위키에는 만주어sijigiyan(시지갼)이라고 나와있다. 만주 문자 표기는 ᠰᡳᠵᡳᡤᡳᠶᠠᠨ를 오른쪽으로 세운 것으로 나온다.[4] 원, 명 시기 잠깐 동안은 한반도 계통 복식을, 청 때는 만주식 복식도 받아들였다.[5] 수나라와 당나라 자체가 황실 지도층이 한족에 동화된 선비족 계통이어서 선비족의 호복문화가 당대 중국 의복문화에 매우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6] 천을 자르는 일[7] 예를 들면 기모노도 세월이 흐르며 일본열도의 고온다습한 환경 영향으로 소매와 바지통이 넒어지고 어깨나 겨드랑이 부근에 트임이 생기는 등 남방계 복식과 가깝게 되었다.[8] 조무령왕은 산더미로 쌓인 상소를 무시하고 아예 호복령을 반대하던 태자를 폐위하는 강경책을 펼치며 호복령을 밀어붙였다. 그야말로 당대 상식을 뒤엎은 개혁가였던 셈.[9] 춘추시대만 하더라도 지금의 황허 일대는 수풀이 우거진 밀림지대에 가까운 식생이었다. 실제로 아직도 심심하면 당시의 코뿔소코끼리의 유골이 발굴되기도 한다.[10] 무엇보다 북방 민족들이 틈만나면 중국을 침공하고 약탈한터라 중국인들에게서 북방 민족들에 대한 악감정이 심했다.[11] 이는 비슷한 시기의 서방(고대 로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의복의 형태가 치마이니 원래는 다들 남녀 할 것 없이 치마만 입고 다녔다. 그러다 추운 지방에 사는 북방민족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해, 또 말을 타기 위한 이유 등으로 바지를 발명해낸 것. 중국은 전국시대에 중원의 북방 기마민족들로부터 바지가 전해졌고 라틴족고대 로마 시대에 켈트족으로부터 바지가 전해졌다. 다만 초기에는 완전한 긴바지가 아닌 종아리를 드러내는 반바지였으며 긴바지는 게르만족으로부터 로마 후기에 전해진다.[12] 기존까지의 한복 고유 복식도 동시에 존재했다.[13] 일본 고분벽화와 일본서기 백제, 가야 관련 기록들로 확인할 수 있다.[14] 해당 일러스트 작가는 대만인이다.[15] 만약에 한족 남성들이 한푸를 입다가 청나라 정부에게 발각당할 경우 아마 바로 처형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유교도나 도사, 승려들은 속발이나 아예 삭발을 하고 한푸를 입었지만. 남성 한족 전통 한푸를 유지시켜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만주족인데 만주족에겐 복식을 제한하는 법이 없어서 만주족 남성이 한족식 한푸를 입고 다녀도 큰 문제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륭제 초상화 중 한족 한푸를 입고 코스프레 그린 것이 있다. 정작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중화권 사극에 등장하는 만주족 캐릭터는 한푸를 입은 모습이 전혀 안 나오지만. 그리고 남성 한족 전통 한푸가 유지된 것은 유목민계 정복왕조답게 종교에 관대한 청나라에서 앞서 말한 것처럼 유교도 및 도사들의 한푸 착용을 금지하지 않은 것도 크다.[16] 고대 한국의 기본 복장 역시 바지-저고리 위에 포를 덧입는 것이었다. 유목 문화가 남아 있는 기마민족의 공통적인 복식 문화라 할 수 있다.[17] 여기서 말하는 '차이나 드레스'는 기존 치파오를 개량하여 타이트하게 만들고 여러 가지 디자인을 한 근세의 물건이다. 물론, 현대에 개량된 치파오도 엄연히 그 원본으로 만주족의 치파오가 있기에,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의상이라는 말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근세에 들어, 한족-만주족 가리지 않고 중국 국적의 여성이면 치파오를 전통 의상으로 입게 된 역사가 오래지 않았다>고 쓰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18] 현대 만주족의 경우 언어, 문화적으로 한족에 거의 동화되긴 했지만 신부가 전통 혼례 복장으로 청나라 만주족 여성의 복장을 입는 점에서 한족과는 차별화된다. 한족계 무슬림인 회족 또한 한푸와 전혀 다른 형태인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전통 혼례 복장으로 입는다.[19] 동남아시아로 간 화교 집단인 "페라나칸" 집단의 전통 혼례 복식은 청 시대의 아오췬과 매우 비슷하다[20] 한복은 반대로 위에 저고리, 밑에 바지를 입는다 하여 상유하고(上襦下袴)라 한다.[21] 다만 '명나라 복식'을 의미하는 밍푸는 고려양의 영향을 받아서, 그리고 '한복'의 스타일에 가까운 한푸라서 한복과 헷갈릴 우려가 더 있다. 중국에서도 인식이 잘 되어 있는 한나라나 송나라 복식을 재현했다면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22] 다만 청나라의 고위층들인 만주족들은 한푸를 즐겨입는 경우가 많았다.[23] 청나라 드라마는 제작비에 비해서 인기가 없다. 주요 원인은 여자시청자들이 변발을 싫어해서(...)라고 한다. 그래서 청나라 황실스토리만 따와서 가상국가로 인물명바꾸고 치파오대신 한푸를 입히거나 적어도 변발은 뺀 시대극 드라마를 만들기도 한다.[24]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위구르족 포함), 티베트족이 평등한 관계에서 서로 협력하는 공화국을 건설해야 한다는 쑨원의 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