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빠른 진급 ==== 하나회는 다른 장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진급이 빨랐으며 하나회 내부에서조차도 [[전두환]]이 가장 빨랐다. 일단 전두환의 경우, [[소령]]은 재직 기간이 1년 정도에 불과해 사실상 [[대위]]에서 바로 [[중령]]이 된 거나 다름 없었으며 [[1973년]] 고작 42살의 나이에 [[준장]]에 진급했다. 경력으로 따지자면 [[소위]]로 임관한 지 고작 23년 만에 [[장성급 장교]]가 된 것이며 이는 현직 [[준장]]보다 약 10년 정도 진급이 빠른 것이다. 게다가 [[1955년]]에 [[소위]]로 임관한 [[전두환]]은 [[1950년]]에 임관한 [[장태완]]과 비교했을 때 [[1978년]]에는 '''둘이 동일한 소장'''이었다. 문제는 [[장태완]]은 명백히 [[6.25 전쟁]] 참전용사인 것에 비해 전두환은 같은 기간 [[육군사관학교]] 생도로서 후방에서 학업에 전념했을 뿐이었는 점이다. [[전두환]] 뿐만 아니라 [[노태우]] 역시 1년 남짓 정도의 차이를 두고 [[전두환]]과 거의 동일한 루트와 동일한 진급 속도로 군복무를 했다. 게다가 [[박희도]], [[최세창]] 등 하나회 장교들은 이런 식으로 진급 속도가 엄청나게 빨랐다. 참고로 육사 10기 다음해에 전두환의 육사 11기가 있던 것이 아니라 6.25 이전 군영, 육사 1~9기, 갑종 1~2기가 있었고, 6.25 중에 육사 10기, 육종 1~32기, 갑종 3~50기쯤 6.25 이후 갑종 50기~111기쯤 그 다음 기수가 1955년 졸업한 육사 11기이다. 즉, 육사 10기와 11기 사이에는 까마득한 차이가 있었고 6.25때 맹활약한 수천명의 갑종, 육종 출신 선배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정책으로 11기는 선배들을 다 뛰어넘고 육사 10기 턱밑 까지 따라 왔다. 육사 10기가 1950년 7월 임관했으니 1955년 임관한 육사 11기는 말도 안되는 속도의 승진이었던 것. 절대 육사 10기 다음해가 11기가 아닌 것이다. 다만 전두환 등이 열받는 포인트는 자신들은 정규 4년제이고, 육사 9기는 1년제, 그 이전 기수는 몇 달, 육종과 갑종은 몇주 교육 밖에 안받았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군영부터 육사 8기까지 전체 교육을 다 합쳐봤자 3년이 안되어 육사 11기의 4년에 비교할 수 없이 적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 하물며 몇주 교육 받고 임관한 갑종과 육종 선배들을 무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리고 육사 선배들도 5년을 건너뛴 이들 후배만을 당겨주었다. 이는 12.12. 쿠데타를 이해 하는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