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박정희]]의 비호 === 1961년 [[서울대학교]] [[학생군사교육단]] 교관으로 근무 중이던 [[대위]] 전두환은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박정희의 친위세력을 자처하면서 '육사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시가행진'을 조직하였고, 이 공로로 박정희[* 당시 박정희의 계급은 [[대장(계급)|대장]]. 보직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비서관으로 보임되었다. 이 때문에 박정희가 군 수뇌부와는 별도로 군 내 자신의 친위세력을 심어둔다는 의미에서 하나회를 방조 혹은 적극적으로 육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윤필용 사건 이전부터 박정희는 전두환, 손영길 등 육사 11기의 준장 진급식에 파티를 열어주고, 별도로 고급 승용차까지 하사하였다. 노태우, 김복동에게는 '하나회'의 최초 명칭인 일심회의 '일심([[一]][[心]])'이라고 새겨진 지휘봉을 내려주었다. 이는 다른 장성들에게는 하지 않은 대단한 특혜였다. 하나회의 존재가 박정희에게 공식적으로 보고된 이후에도 전두환을 최고 요직 중 하나인 [[국군기무사령관|보안사령관]]에 임명하는 등 계속해서 신임을 보였다.[* 애초에 5.16. 군사정변 당시 박정희의 부관이 바로 위에 있는 손영길이었고, 전두환의 장인 이규동과는 같은 만주군관학교-만주군 출신에 안면까지 있었다. 즉 전부는 아니더라도 하나회 구성원 다수와 5.16. 이전부터 개인적인 친분이 이미 있었다는 말이다.]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는 박정희가 하나회의 존재를 보고받자 격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실제와 다르다는 게 보편적인 평가다. 당시 박정희에게 충성을 경쟁하던 인간들은 널렸는데, 대통령이 조직의 존재 자체를 알고 격노할 정도의 반응을 보였다면 실제 훗날 [[김영삼]] [[전직 대통령|전 대통령]]의 하나회 숙청 이상의 강도로 하나회를 박살냈을 것이고, 핵심 구성원인 전두환과 노태우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서슬퍼런 독재 권력을 가진 박정희의 노여움을 산 일개 사조직이 나중에 자신들의 보직을 이용하여 나라를 뒤엎었다는 게 말이 되는지 의문이다. 작중에서는 이를 박정희가 잠깐 격노하지만 전두환의 각하 친위대 드립[* 항목 가장 위에 있는 '''"군대 내부에도 각하를 추종하는 세력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대사가 활용되었다.]을 듣고 풀어지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한편 박정희가 하나회를 적극 지원했다는 설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도 있다. 박정희가 취임할 당시 총애하던 차지철과 전두환에게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했는데, 차지철은 이를 흔쾌히 응해서 전역하고 정치인이 되었다. 반면에 전두환은 "군대에도 충성스러운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면서 의원직을 거절했다는 것이다. 이게 맞다면 애초에 전두환은 군 내부에서 박정희 친위세력을 만든다는 이유로 전역을 거부했던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58416&CMPT_CD=P0000|박정희의 전두환 총애, 이유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당연히 말이 안 되는 소리인 것이, '''군인이라면 당연히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에게 충성해야 한다.'''[* 군인이 충성해야 하는 대상은 군 통수권자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대통령'이어야 하고, 당연히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든 군은 통수권자와 나아가 군 통수권을 위임한 국민에게 충성하여야 하나 전두환이 말한 충성의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고 '박정희' 개인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