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기타 == [[이원조(1933)|이원조]]가 유일한 하나회의 [[민간인]] 회원이었다. 그는 사관학교는 커녕 장교 및 부사관 코스 이력도 없던 [[경북대학교]] 출신 민간인이었음에도 [[노태우]]와 경북고등학교 동기로서 하나회 수뇌부들과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울려 다녀 친목회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이런 연줄로 [[전두환 정부]] 시절 여러 보직을 거치며 [[정경유착]]을 주도하는 핵심 일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한 [[박종규(1944)|박종규]] 중령은 군사정권 시절에 소장([[제56보병사단]]장)까지 진급하긴 했지만 하나회는 아니었다. 또한 [[안병호(군인)|안병호]] 전 수방사령관은 자신이 하나회가 아니었다고 부정하고 있다. 그래봐야 노태우의 9-9인맥이기 때문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나회 선후배로 맺어진 군 인사들이 5·6공 시절 정치 테러를 사주했다는 말도 있다. 보안사가 정보를 제공하고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령부]]가 [[공작원|북파공작원]]들을 동원해 테러를 가했으며, 이 두 조직의 수뇌부는 하나회 선후배로 이어져 있었다는 것. 이들이 관련된 사건으로 6공 시절 크게 불거진 일이 중앙경제신문 [[오홍근]] 부장에게 정보사 소속 요원들이 벌인 테러 사건이다. [[오홍근 테러사건]] 문서로. 이 당시 이를 주도한 정보사령관은 '''[[이진삼]], [[이진백]] 등'''이다.[* 이진삼은 육사 15기로 전두환 정부 시절에는 민병돈, 고명승 등에게 밀리며 정보과 21사단장 같은 요직이 아닌 곳에서만 일했지만 노태우가 집권하자, 1군 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같은 요직에서 일했다. 이진백은 갑종장교 출신인 그의 동생이었는데, 형의 빽으로 8사단장, 정보사령관을 지내며 잘 나갔다.]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을 김영삼이 자신의 대통령 선거 자금 관련 비리를 덮으려고 벌인 게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앞선 내용에 있듯이 하나회 숙청은 1993년에 벌어진 일이고 김영삼의 대통령 선거 자금 문제가 불거진 건 [[1995년]]이다. 12.12. 사태와 5.18. 관련자들을 잡아들인 일이 김영삼의 대통령 선거 자금 비리를 덮으려고 벌인 일일 가능성이야 있지만, 1993년에 일어난 하나회 숙청 건을 1995년의 일과 연계시키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하나회 숙청은 오히려 김영삼 전 대통령 본인의 하나회에 대한 혐오에 의한 것에 가깝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민주화 운동의 대표격 인물이며, 김대중에 뒤지지 않는 수난사를 겪은 인물이다. 1970년대에는 하나회의 후원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질산 테러와 조폭 테러, 국회 제명, 1980년대에는 강제 정계 은퇴와 가택연금까지 당한 과거가 있기 때문에 군부, 정확히는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반감이 매우 강했다. 하나회 숙청이 벌어진 지 10년이 훨씬 넘게 지나고 기자들조차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확인 없이 기억만 가지고 기사를 쓰다 보니,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건이 백승도가 하나회 명단을 뿌린 일이 계기라거나, 하나회 소속 장군이던 이충석이 술자리 난동 부린 게 계기라거나 하는 식의 말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하나회 숙청 란에 있듯이 하나회에 대한 숙청은 김영삼이 취임 직후부터 명단 살포나 술자리 난동 건이 있기 이전에 시작한 일이다. 명단 살포와 술자리 난동 건은 하나회 숙청의 확대와 심화를 부른 계기이지 하나회 숙청 자체의 계기가 아니다. 하나회 명단 살포 사건의 경우 사건의 원인과 배경에 대해 말이 많다. 백승도 스스로는 의기에 의해 벌인 일이라 하나, 하나회를 제거하려는 군내 세력이 백승도를 하수인으로 쓴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백승도는 명단 살포 사건을 일으킨 몇 년 후 "내 의도는 하나회 소속 영관급 장교들마저 계속 진급에서 누락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회에도 건전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선별적으로 구제돼야 한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50400329107001&ed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6-05-04&officeId=00032&pageNo=7&printNo=15757&publishType=00010|관련 기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청죽회라는 대항 조직 성격의 사조직도 있었다. 하나회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영남 중심 인맥이라면, 청죽회는 이북과 [[경기도]] 출신 인맥으로 유명한 사람은 [[김종호(1935)|김종호]] 전 내무부장관, [[이종찬(1936)|이종찬]] 전 국정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등이 있다. 하나회와는 경쟁관계였던터라 견제도 많이 받았다고 하지만, 이종찬 같이 중용된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회는 육군 장교, 그것도 정규 육사 출신들만의 클럽이었으므로, 안 그래도 세력이 미약했던 [[대한민국 해군]]과 [[대한민국 공군]], 같은 육군이라도 [[갑종간부후보생]] 장교[*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서 [[사병 출신 장군|사병출신에서]] [[현지임관|장교로 임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과거에는 3사, 학군, 학사장교들보다 기수도 훨씬 높고 비중이 높았었다. 대체로 하나회보다는 선배들이었고 한국전 직후 1954년에 임관한 육사 11기에게는 최대의 경쟁자였다. 한국전으로 임관한 갑종 장교는 학군, 학사가 생기기도 전에 임관한 사람들이다.], [[육군3사관학교]] 및 [[학사장교]], [[학생군사교육단|ROTC]], 장교들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시기에 더욱 심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학사장교]]는 전두환이 직접 만들어 준 제도'''인데도 이랬다.[* 여기에는 상당히 우스운 상황이 있다. 원래 [[전두환]]은 자기 아들들의 병역을 얼렁뚱땅 넘기기 위해서 [[석사장교]]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것 때문에 생기는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해 훈련은 거의 비슷하게 하되, 현역으로 제대로 복무시키는 [[학사장교]] 제도를 같이 만든 것이다.] 이렇게 육군사관학교 출신들만이 주요 요직을 차지하는 현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하나회의 흔적을 청산하기는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406|#]] 가끔 [[틀딱|생각 없는 노인들]]이 "그래도 하나회는 의리 하나만은 끝내준다"고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이들이 아버지와 같은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배신하고 하극상을 일으킨 자들을 보고도 그들이 과연 의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병주 소장이 특전사령관으로 있던 시절 여단장과 참모 목록을 보면 하나회의 주요 수뇌부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중 [[박희도]]는 지휘를 똑바로 못 해서 [[무장공비]] 1명에게 부대 전체가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자신의 지휘과실로 예편당하게 생겼을 때 상관이던 정병주 사령관이 몇 번이나 비호해주고 준장 진급에도 도움을 주었지만 배신한다. 애초에 하나회에서 의리를 지킨 사람은 [[김복동]] 한 사람 뿐이다. 당연한 거지만 조폭 집단 보고 "조폭이 범죄는 일으켜도 의리 있는 집단"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