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해체의 부작용? === 요약하자면 [[그런거 없다]] 하나회는 사관학교 우등생들을 권력에 빌붙는 정치군인으로 타락시켰다. 이들은 선후배 간 ‘끈끈한 정’으로 국방부, 육본, 특전사, 수방사, 기무사 등 서울에서 근무하는 요직을 독차지하며 공정한 진급 경쟁을 차단시켰다.[* 이는 야전을 착실히 거쳐야 할 초급 장교들을 전방이나 [[베트남 전쟁]] 같은 실전에서 복무하는 대신,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었다. 기껏 파견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경기도]] 등지로 간 것이 고작이었고, 그나마 파병 나가서도 현지에서 일부가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 과정에서 출세를 위해 뇌물과 아부를 동원하며 군 기강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비리를 등에 업은 군대는 동서고금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 한다. 윗 문단에서 하나회를 옹호한 노태우 역시 이런 썩어빠진 하나회의 풍습에 기여한 인물이다.[* 애초에 하나회의 가입 조건이 꼭 능력주의인 것도 아니었다. 당장 하나회의 수괴인 전두환부터가 육사 추가 합격자로, 육사에서는 상당히 무식한 인물이었다. 농담이지만 자기 스스로 “공부를 못했다”라며 자조하는 영상도 유튜브에 돌아다닌다.] [[독일]] [[제1차 세계대전|1차대전]] 에이스들이 모여서 후학을 양성한 항공클럽[*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 국방군|독일군]]이 전투기를 가질 수 없자 파일럿 육성을 위해 꼼수로 만든 집단이다.]처럼 군사적인 능력이 출중한 사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하나회에도 유능한 인물은 꽤 있었다. 하나회의 후기 구성원 중에는 사관학교 성적 우수자가 많았기에[* 한국논단 등 보수 단체의 주장이기는 하나, 육사 수석과 차석 등에 하나회가 열렬히 구애한 것을 보면 빈말은 아니다. 하나회는 마치 꿀벌이 꿀을 찾듯, 권력에 집착하는 특유의 성질을 지녔다. 군인의 출세는 사관학교 시절의 성적에서 시작하기에 하나회가 이들에 집착한 것도 같은 연유다.], 하나회는 자연스럽게 국군의 요직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김영삼의 숙청으로 1990년대 육군의 허리에 해당하는 영관급 장교에 상당한 인적자원 공백이 생겨버렸다는 것. 노태우의 [[2011년]] 발간한 회고록도 궤를 같이한다. 하나회 숙청을 "김영삼이 군을 잘 몰라서 한 일"이라면서, 하나회 숙청으로 전투력 약화와 3류급 인사들의 지도부 발탁 등을 거론했다. 몇몇 군사전문가들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에서 국군의 대응이 이런 문제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하나회의 존재로 유능한 장교가 조기 전역'''하기도 했다. 하나회 가입을 거부한 장교나, 전방에서 복무하면서 군사적 능력을 쌓은 非하나회 군인들은 이 하나회 때문에 대부분 영관, 심하면 대위에서 끝나버리는 판국이었다. 하나회의 해체 과정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이때 당시 장성 임명은 대대로 하나회에서 하고 이걸 하나회의 두목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승인하는 게 관행이었다. 요직과 진급을 철저하게 장악했기에 [[당나라 군대|하나회 소속이 아닌 장성은 하나회 소속 대령의 눈치를 보는 사태에 이른다. 이게 얼마나 심각했느냐 하면, '''비하나회 군단장이 자기 휘하에 있는 하나회 연대장의 눈치를 봤다!''']] 조천성 사단장이 자기 휘하인 전두환 연대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행동했다가 중장 진급에 실패하고 10년 넘는 기간 동안 어디서 뭐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가 겨우 나타난 사례만 보더라도, 하나회의 계급 무시는 엄청났다. “국군의 허리인 하나회를 들어낸 것이 잘못되었다”라는 비판은 오류다. '''‘하나회가 국군의 허리를 편법적으로 장악했기에’''' 도려낸 것이다. 일각에서는 강릉시 무장공비 침투 사건 대응에 하나회 해산이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지만, 진실은 강릉시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에서 국군의 대응에 문제가 생긴 진짜 이유는 '지나친 보병 위주의 군사작전'이다. 죄다 소총수밖에 없으니 고도의 훈련을 받은 무장공비들에게 화력으로 계속 밀리기 일쑤였고, 그나마 제대로 활약한 부대가 [[특전사]]였음을 생각해보자면, 되려 하나회 회원들의 망상 속에 존재하는 '보병 만세'가 원인이다. 그래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육군 보병 편제에 유탄발사기 사수가 추가된 것이다. 또한 이때 활약한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하나회원이라서 강릉시 무장공비 침투 사건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게 아니다. 장선용은 애초에 [[부사관]]으로, 오직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이 [[경상도]]인 장교들만 받아들였던 하나회와는 거리가 멀다. 노태우가 주장하는 강릉 무장공비 사건도, 자세히 살펴보면 박정희가 유신에 반대하는 [[채명신]][* 채명신의 회고록을 보면, 박정희의 정권 연장에 반대하고 명예로운 퇴임을 요구하였다는 이유로 쓸쓸하게 전역하였다. 1972년 5월 30일 오후 5시 [[유재흥]] 전 [[국방부장관]]에게서 "국방부로 와달라"는 명령을 받고 국방부로 갔는데, 국방부 직원들은 모두 퇴근하여 삭막했고, 유 장관은 어두운 표정으로 책상에서 전역 명령서를 꺼내주었다고 한다.] 등을 내치고 노재현 같은 정치군인을 기용하면서 한국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게릴라전 대처 능력을 상실해 버렸고, 이것이 곪아 터진 것이 강릉 무장공비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장용 식수(飾樹)를 여유 있게 가져가지 않는 점과, 인식되기 쉬운 흰색(장교용) 및 노란색(병 및 하사관용)을 계급장으로 사용한 점 등이다.[* 다만 계급장은 꼭 하나회의 탓이라 보기 어렵다. 당장 위 문단에서 거론된 채명신 역시 흰색 계급장을 옹호하며, 검은색 계급장은 ‘죽음을 연상’시킨다며 반대했다.] 또한 노태우는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장으로 있으면서 [[군사분계선|휴전선]]에 배치된 9사단의 29연대, 30연대를 반란에 동원했다. 당시는 [[10.26 사건|박정희 암살]]로 인해 2급 비상사태[* 전투 명령이 떨어지면 곧바로 전투 상태에 들어가는 작전 명령.]가 선포돼 있었는데 전방 사단의 병력 반 이상을 빼간 것이다. 만에 하나 [[김일성]]이 이것을 알아채고 대남 공격을 시도했다면 한국군은 대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거기다가 9사단과 함께 서부전선 방어의 중핵을 책임지는 [[제2기갑여단]]과 [[제1군단]] 예하 병력까지 반란에 동참하고 있었으니 서부전선 특히 [[파주시]] 방면에서의 방어 공백은 심각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태우가 말하는 전투력 약화, 3류급 인사들의 지도부 발탁, 하극상은 모두 노태우가 소속된 하나회의 악영향이고, 결국 노태우는 [[셀프 디스]]를 해버린 셈이다. 게다가 위의 결성 과정 문단에서 서술했듯, 하나회의 수뇌부인 육사 11기~12기 회원들은 '''대체로 무능'''했다. 말단이 아무리 유능해봤자 수뇌부가 무능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일례로 박희도의 경우 무장공비를 놓친 일로 인해 [[이세호]] 전 육군참모총장에 의해 하마터면 현역부적합전역을 당할 뻔했다. 하나회의 숙청이 아니라 하나회의 존재로 인해 군이 약화되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하나회가 아니면 사단장이 연대장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되었는데 군대의 규율이 바로 설까? 하나회 소속이 아니면 실력이 있어도 핵심 보직에 가지못하는 상황인데, 상식적으로 이것은 군의 약화를 불러온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들은 [[12.12 군사반란|대한민국을 혼란하게 하고 정권을 장악하려던 반란 세력]]이다. 불법 조직을 해체하고 그 조직원을 처치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군인에게 능력만큼,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명령 복종이다. 명령 불복종을 넘어 군인으로서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국민들에게 [[5.18 민주화운동|총부리를 들이민 순간]]부터 이들은 능력이 있든 없든 무조건 해체해야 할 조직이다. 하나회 해체는 필연이었고, 파생되는 부작용 역시 ‘그래서 하나회를 해체하지 말았어야지!’보다 '''‘그러니까 하나회 따위 안 만들었으면 이런 일 없잖아!’'''라고 반응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훗날, [[2021년 미얀마 쿠데타]]로 인해 한 나라가 [[미얀마군|군부]]에 의해 휘둘리는 광경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하나회 해체는 [[김영삼/긍정적 평가|김영삼 정권의 큰 업적]]으로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평가가 더욱 높아졌다. 다만, 미얀마 군부는 1962년 ~ 2015년, 2021년부터 사실상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 집단에 가깝고 정부에서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미얀마 정치판에 깊게 뿌리를 박았단 점, 군인과 일반 시민간의 교류는 커녕 군인 끼리만 교류를 하는 사실상 신분제에 준하는 상황 등 대한민국 정치판보다 내정이 훨씬 어지럽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