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하나회 (문단 편집) === 12.12. 장성 축출 === 같은 해 5월 8일 국회에서 야당의 [[박계동]] 전 의원은 [[황인성(1926)|황인성]](육사 4기, 호남 출신) 전 [[국무총리]]에게 '12.12는 쿠데타냐 아니냐?'라고 물으며 OX로 답 하라고 했고, 이에 황 총리는 '하나의 군사적 행동으로 위법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민주당 [[이해찬]] 전 의원은 '부대를 이탈해 서울특별시까지 탱크를 몰고 온 것이 합법적인 행동이냐?'고 재차 질의하자, 황인성 전 총리는 다시 한 번 위법사항은 아니라고 하였다.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식의 정치적이고 흐리멍텅한 대답이 아니라, '위법사항이 아니다'라는 딱 부러진 답변을 한 것이다. 당장 국회에서 민주당의 반발과, 하나회 출신 여당 의원[* [[이춘구]](제천), [[박준병]](보은, 옥천, 영동), [[강창희]](대전 중), 김복동(대구 동 갑), [[정호용]](대구 서구 갑), [[허화평]](포항), [[박세직]](구미), [[김상구]](상주시, 군), [[허삼수]](부산 동), [[정동호(1935)|정동호]](의령, 함안), [[배명국]](진해, 창원군), [[신재기]](창녕), [[권익현]], [[안무혁]](전국구) 등 하나회 출신 국회의원들이 상당히 많았다. 이들은 당연히 군사정권 시절에 여당의 거수기 노릇을 하던 인물들이었다.]간에 고성이 이어졌다. 결국 다음 날 황 총리는 사과하였고, 그래도 반발이 이어지자 13일에는 '''"12.12. 사태는 하극상에 의한 군사 쿠데타적 사건이었다."'''라는 청와대 공식 답변이 나왔다. 그렇다면 그 쿠데타를 일으킨 12.12. 주역들을 처벌해야 할 것이 아닌가? 12.12. 당시 쿠데타의 주역은 보안사(전두환)와 병력을 출동시킨 특전사, 수방사, 9사단(노태우)이다. 이 중 앞서 3개 부대의 지휘관들은 군내에서 출세할 만큼 다 출세한 후 이미 정치권에 진출하였다. 반면 중앙청에 탱크를 몰고 쳐들어간 9사단 출신 등 일부는 아직 군문에 남아 있었는데, 당시 사단장 노태우 이하로 --구창회 참모장--[* 18기. 3군 사령관까지 올랐지만 하나회 숙청으로 이미 날라감.], 이필섭 29연대장(현 합참의장, 16기), 안병호 작전참모(현 2군 부사령관, 20기)가 바로 그들이다.[* 김봉규 30연대장은 12.12때 병력을 출동시켰지만, 이건영 군사령관에게 보고를 했다는 죄로 별을 못 달고 군문을 떠났다.] 또한 수방사에서 2중 플레이를 했던 김진선 상황실장(현 2군 사령관, 19기)이 현직에 있으며, 무엇보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체포하고 참군인 [[김오랑]] 소령을 사살한 당시 3공수 15대대장 박종규(현 56 보병사단장, 23기)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당사자들이야 12.12 당시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고 항변한다. 실제로 12.12 당시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여 반란 모의를 한 다른 장수들과 달리 이들 4명(이필섭 합참의장, 김진선 2군사령관, 안병호 2군 부사령관, 박종규 56사단장)은 사전에 아무 말도 못 듣고 일선에서 근무하다가 상관들의 지시를 받고 따르긴 했다. 특히 당시 29연대장으로 중앙청에 군대를 출동시킨 이필섭 합참의장은 "그때는 정말 사단장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라며 자신은 지시를 따른 죄밖에 없다고 했지만, 이후 9사단장까지 역임하며 9-9 인맥의 성골로 온갖 꿀을 빨아 온 것이 사실이다.[* 당시 출동한 대대장 3명은 전부 장성이 되었고, 다른 작전 관계로 출동 못한 29연대 2대대장은 전역했다. 대신 예하 대대장을 출동시킨 후 이건영 군사령관에게 상황 보고한 김봉규 30연대장도 역시 장성이 되지 못한 채 군복을 벗었다.] 안병호 당시 작전참모는 어떻게 한번 좌천 시킨 사람을 또 자르냐며 기자회견까지 하려고 했지만 측근들이 말렸다. 김진선은 개혁 성향의 인물로 전두환 시절에 이미 하나회를 공격한 공적으로 새정부에서 2군 사령관에 임명되었지만, 12.12 당시 수방사 상황실장으로 허위보고를 하면서 장태완 장군을 헷갈리게 만들었는데, 김진선의 변명은 '아군끼리 피 흘리게 만들 수 없었다'는 것. 이번 12.12. 장성 전역 조치에 하나회 측에서는 같은 12.12. 가담자라도 하나회만 자른다고 불만을 가졌다. 실제로 당시 중앙청까지 군을 밀고 들어간 대대장 출신 장성 3명은 非하나회여서 그런지 아무 처벌이 없었다. 하지만 박종규 소장만은 도저히 넘어갈 수 없었다. 박종규 본인은 정병주 당시 특전사령관 체포 명령을 최세창 3여단장에게 받았을 때 '사령관을 체포 명령을 거부하고 여단장을 잡아야 한단 말인가?'라며 정황상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한쪽 팔에 총을 맞고 박종규에게 개처럼 질질 끌려갔던 것을 가장 수치스러워하던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참군인 김오랑 소령의 부인 백영옥 씨는 충격에 눈이 멀었다는 비극적인 스토리는 박종규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이필섭 함참의장 등 12.12. 가담 장성 4명의 예편이 발표된 5월 23일, 박세환 교육사령관이 대장으로 승진 후 김진선의 후임으로 2군 사령관에 임명되었다. 박세환 사령관은 고려대 ROTC 1기로 학군 출신 첫 대장이었다. 드디어 非하나회, 非육사도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ROTC는 1965년에 시작하여 1993년 당시 현역 장교의 절반, 초급 장교의 70%(육사의 7배)를 차지하고 있었다. 의무 복무 후 90%가 전역하지만 남은 10%의 단결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새로운 엘리트 파워집단으로 노태우 정부 말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의 취임 일성이 '군 내 사조직을 해체하라'였는데 이는 ROTC를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세환 사령관 이후 ROTC 3기인 임재문 준장이 기무사령관에 임명되는 등 문민정부 내에서 이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렇게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3달 만에 장군 18명이 옷을 벗고 떨어진 별이 '''40개'''[*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에 참가한 [[장성급 장교|별]]의 합계가 22개였다.]가 넘었는데, 이는 전두환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서 상급 장성들의 목을 다 날리고 하나회로 군을 장악한 이후 처음 있었던 대규모 군 내 [[숙청]] 작업이었다. 이때 새로 임명된 중장 이상의 인사가 너무 많은 탓에 대통령이 달아줄 [[계급장]]이 모자라서 현역인 국방부 국장급 인사들에게 계급장을 빌려서 달아줬다는 일화도 있다. 평소 인사가 6, 12월에 있으니 이를 예상치 못하고 별들을 준비 안 해놔서 생긴 후문. 그 정도로 급박하게 인사이동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여기까지를 '''1차''' 하나회 숙청 작업으로 볼 수 있는데, 김영삼의 최초 의도는 여기까지였다. 하나회 완전 숙청이 아니라 김영삼의 권력에 도전할 만한 세력만 도려내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하나회의 수장들만 날렸고 일부 장성들과 영관급 이하는 건드리지 않았다. 당시 [[중앙일보]] 특종 보도제목인 <3성 장군 이상 하나회 예편 조치> 등이 말해주듯이 대통령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수뇌부만 숙청하는 것이었다.[* 장성급이야 정치색으로 찌들 대로 찌들었지만, 원래 영관급 이하들은 기수별로 [[경상도|영남]] 출신의 성적 최상위권자들을 수뇌부가 미리 찍어놓고 집요하게 스토킹하여 꾸역꾸역 가입시킨 이들이 꽤 많았고 최소한 공부는 잘했던 자들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름 우직하게 군 생활을 하면서 하나회에게 당한 게 많았던 권영해 장관과 김동진 육군참모총장은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권영해의 경우 소장 출신인 것을 두고 군부 쪽에서 여태까지 국방부장관은 예비역 대장이 하던 관례를 들먹이며 일개 소장 출신이 장관에 올라서 어쩌구저쩌구 하는 비난 첩보를 듣던 상황이었고, 김동진은 육사 17기 수석졸업자로 엘리트 중 엘리트지만 비영남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대구 및 영남권 기반으로 구성된 사조직인 하나회에게 온갖 수모와 박해를 받아왔다. 일례로 육참총장 이전 김동진의 보직이었던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은 [[21세기]]에는 근 20년간 가장 많은 육군참모총장을 배출한 요직 중의 요직이 되었지만[*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한의 핵개발및 미사일 도발등으로 인해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특별히 북한의 핵무장이 가시화 되는 시점에서 더더욱 필수불가결한 위치로 올랐다.], 당시에는 육군참모총장 경쟁에서 패한 퇴물 대장이 가는 자리였다.[* 2010년대 후반 들어서는 연합사 부사령관이 한 - 미 군사외교관 정도로 역할이 축소되어 선택받은 일부만 2차 보직으로 합참의장을 받고 그 외에는 임기가 끝나면 전역한다. 국방개혁 및 자주국방 등을 이유로 야전 지휘관들에게 참모총장이 될 기회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김승겸]] 장군만 영전하고 [[김병주]] 장군 등 그 외에는 전역해야 했다.] 그래서 권영해와 김동진 모두 하나회에 대해 이를 갈고 있었는데, 일례로 [[박관용]] 전 비서실장의 증언에 따르면 유능한 초급장교 보호 차원에서 일정 선까지는 살려보자고[* 이때도 [[대숙청|초급 장교를 갈아버렸다가 고생한]] [[소련]]의 예시 등이 내려오고 있었다.] 대통령의 동의를 얻은 후 박관용이 직접 H호텔 일식당에서 이들을 만나 여기서 그만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권영해는 그런대로 납득을 하는 눈치였지만 김동진은 정색했는데, "실장님은 군 내부 사정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여론을 따질 계제가 아닙니다. 우리한테 맡겨주시면 됩니다."라고 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이 와중에 일이 터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