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플로티누스 (문단 편집) == 생애 == 플로티누스는 서기 205년 로마 제국의 이집트 속주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8세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당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로 유명했던 암모니우스 삭카스 밑에서 11년 간 철학을 배웠다. 다만 암모니우스 삭카스가 직접 남긴 저술이 없어 플로티누스가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39세가 되었을 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동행했다가 황제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로마]]로 가서 정착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에게 가르침을 듣고자 수많은 지성인들이 몰려들었으며, 철학자, 문인, 정치인, 권세가는 물론 황제 갈리에누스까지 모임에 참여 했다고 한다. 이때 황제의 도움을 받아 캄파니아에 [[플라톤]]이 원했던 '철학자들만의 도시'를 건설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저술에 몰두하다가 270년에 세상을 떠났다. 플로티누스는 로마에 살았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책을 썼다. 그리스어가 당시 철학자들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각각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여섯 권의 책 《엔네아데스》[* 엔네아데스는 '아홉 편의 글 묶음'을 뜻한다.]을 남겼는데, 이는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주제별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1권은 도덕적 주제를 다루고 2권은 물리학, 3권은 우주론, 4권은 영혼, 5권은 지성, 6권은 '하나'와 지각을 다룬다. 포르피리오스는 6년간 스승을 직접 모셨고, 뒤에 몸이 좋지 않아 휴양차 스승을 떠남으로써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는 그를 신뢰했으며, 그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맡겼다. 플로티노스의 특이한 사상은 그가 계획하진 않았지만 훗날 '[[신플라톤주의]]'[* '신플라톤주의'라는 이름은 18세기 독일에서 정신사를 정리한 이들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다.]라는 철학 사조를 낳아 여러 세대를 거쳐 수많은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