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티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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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누스
Πλωτῖνος | Plotinus
[1]

파일:Plotinos.jpg
[2]

출생
204~205년
로마 제국 이집트 리코폴리스
사망
270년
로마 제국 캄파니아
직업
철학자
학파
신플라톤주의 (창시)

1. 개요
2. 생애
3. 사상
4. 관련 영상
5. 여담



1. 개요[편집]


로마 시대의 철학자. 3세기 로마 제국에서 활동했고, 이후 그의 사상은 포르피리오스와 이암블리코스, 프로클로스로 이어져 신플라톤주의 학파를 형성했다. 이는 여러 세대를 거쳐 로마 제국 내에서 번성하여 그리스도교의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수많은 교회 학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슬람 무타질라 학파아비센나 등 이베리아 반도에도 영향을 주었고, 결국엔 중세 전반 유럽의 모든 신학에서 신학자들이 연구하는 중요 주제가 되었다.

그의 작품 《엔네아데스》가 모두 그리스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그리스어를 전공한 철학자들이 연구를 많이 해서 한 때 고대 후기 그리스 철학자로 묶여 분류되기도 했었지만, 실제로는 중세 초기에 활동했었기 때문에 최근에는 그를 중세철학자로 분류하기도 한다.

2. 생애[편집]


플로티누스는 서기 205년 로마 제국의 이집트 속주 리코폴리스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8세에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하여 당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전문가로 유명했던 암모니우스 삭카스 밑에서 11년 간 철학을 배웠다. 다만 암모니우스 삭카스가 직접 남긴 저술이 없어 플로티누스가 그에게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39세가 되었을 때 로마 황제 고르디아누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에 동행했다가 황제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로마로 가서 정착해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에게 가르침을 듣고자 수많은 지성인들이 몰려들었으며, 철학자, 문인, 정치인, 권세가는 물론 황제 갈리에누스까지 모임에 참여 했다고 한다. 이때 황제의 도움을 받아 캄파니아에 플라톤이 원했던 '철학자들만의 도시'를 건설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이후 저술에 몰두하다가 270년에 세상을 떠났다.

플로티누스는 로마에 살았지만 그리스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책을 썼다. 그리스어가 당시 철학자들의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는 각각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여섯 권의 책 《엔네아데스》[3]을 남겼는데, 이는 그의 제자 포르피리오스가 주제별로 다시 편집한 것이다. 1권은 도덕적 주제를 다루고 2권은 물리학, 3권은 우주론, 4권은 영혼, 5권은 지성, 6권은 '하나'와 지각을 다룬다. 포르피리오스는 6년간 스승을 직접 모셨고, 뒤에 몸이 좋지 않아 휴양차 스승을 떠남으로써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진 못했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는 그를 신뢰했으며, 그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정리할 수 있도록 맡겼다.

플로티노스의 특이한 사상은 그가 계획하진 않았지만 훗날 '신플라톤주의'[4]라는 철학 사조를 낳아 여러 세대를 거쳐 수많은 지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3. 사상[편집]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헤놀로지(Henology)'다. 헨(ἕν)은 '하나'라는 뜻의 그리스어이므로, 헤놀로지는 '하나에 대한 학문'이라는 뜻. 플로티누스가 말하는 '하나'는 단순히 '한 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포괄했을 때의 '하나'를 말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多)은 ‘하나(一)’로 말미암아 존재하는데, ‘하나’는 가장 먼저 존재하는 것으로서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앞서 있게 된다. 따라서 이 '하나'는 우리의 경험적인 지식 너머에 있다.[5]

그리고 '하나'는 항상 '넉넉'하기 때문에, '하나'는 분수처럼 흘러넘쳐서 만물을 만들어낸다. 이를 유출이라고 한다. '하나'(the One)[6]에서 흘러나온 일부가 '정신'(the Spirit or Divine Mind or Nous)[7]이 되고, 정신에서 흘러나온 일부가 '영혼'(the Soul)이 된다.[8] 영혼은 질료(물질)와 합쳐지면서 각종 동식물들로 만들어지는데, 질료에 영혼이 얼마나 더 많이 합쳐지느냐에 따라서 고등생물이 되기도 하고 저등생물이 되기도 하여, 여기서 귀천이 정해진다. 영혼에 합쳐지지 않는 나머지 질료들은 그저 돌과 같은 무생물로 남는다.

따라서 영혼을 가진 인간들은 더 고귀해지기 위해서 '하나'를 목표로 삼고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더 나아가 영혼은 '하나'와 하나되기를 원한다. 이를 회귀라고 한다. 이렇게 '유출'과 '회귀'는 순환하며 하나의 운동을 이룬다. 여기서 '유출'은 아래로 하강하는 운동이고, '회귀'는 위로 상승하는 운동이다. 유출은 넉넉함에 이르렀을 때 흘러넘치는 '내리사랑'의 미덕이다. 회귀는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합일의 열망(에로스)이다. 플로티누스에 따르면, 우리는 신과 하나되기 위한 목적으로 고귀한 영혼을 만들고자 하며, 이러한 사람이 점점 '하나'와 가까워져서 '넉넉해지면' 자신의 덕이 '흘러넘치기'(유출) 때문에 '자동적'으로 도덕적인 행동을 하고 사랑을 베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플로티누스의 윤리관이 된다.

이후, 기독교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플라티누스의 '하나'를 '기독교의 신'으로 대치하여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독교의 개념을 근원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을 유한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무한자로 보는 것, 신을 표현할 방도가 없기 때문에 신은 항상 부정문으로 말해야 한다는 부정신학, 상승운동을 '구원'으로 보고 하강운동을 '신의 은총'으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하나 - 정신(지성) - 영혼"을 "성부 - 성자 - 성령"의 삼위일체로 해석하는 관점,[9] 신과의 합일을 통한 신비주의적 관점 등, 기독교의 수많은 교리와 원칙들이 플로티누스가 만들어낸 개념에 의존하고 있음으로, 플로티누스의 사상은 중세부터 기독교를 공부하고자하는 철학자들이 반드시 거쳐가야하는 관문이었다.

4. 관련 영상[편집]





5. 여담[편집]


  • 플로티노스는 영지주의의 신학적 관념주의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영지주의가 비이성적인 견해와 조잡한 의인화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영지주의자들이 플라톤 철학에 의존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잘못된 방식으로 활용한다고 보았다.[10]
[1] 플루티누스(Plotinus)는 영문 표기로, 그리스어의 음역은 '플로티노스(Plotinos)'이다. 독일어로는 Plotin으로 쓴다.[2] 로마 시대의 수집상들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복제품을 가지길 원했는데, 그걸 로만 카피(Roman copy)라고 한다. 위 작품은 오스티아 박물관에 있는 플로티누스 흉상으로 추측되는 로만카피다.[3] 엔네아데스는 '아홉 편의 글 묶음'을 뜻한다.[4] '신플라톤주의'라는 이름은 18세기 독일에서 정신사를 정리한 이들에 의해서 붙여진 것이다.[5] 그러나 이때 ‘하나’가 이른바 사유 범주 ‘너머에 있다’는 사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더 이상 ‘하나’에 대해 사유할 수 없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플로티누스는 세상의 그 어느 것도 ‘하나’를 온전히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세계-초월적'이면서 동시에 세상의 그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예외 없는 원천으로서 그들과 빠짐없이 관계를 맺고 작용한다는 점에서 '세계-내재적'이라 보고 ‘하나’를 유일한 존재원천 및 원리로 삼은 셈이다.[6] 일자(一者)라고 말하기도 한다.[7] 지성(Intellect)이라고 하기도 하며, 세계가 움직이는 질서나 법칙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양과 별이 움직이는 법칙, 또는 각각의 생명들이 제각각의 형태와 발생을 겪으며 성장하는 질서나 법칙을 말하는 것이다.[8] 플로티누스의 세 가지 주요 개념, 곧 '하나', '정신', '영혼'은, 기독교의 삼위일체(the Holy Trinity) 교리에 영향을 주었다. 단, 플로티누스와 기독교의 삼위일체 사이에는 차이점이 존재하는데, 기독교의 성부(the Father), 성자(the Son), 성령(the Holy Spirit)은 모두 신적인 동일성(divinitas)을 갖는 '셋이 모두 하나'의 동등한 위격인 반면, 플로니누스의 '하나', '정신', '영혼' 사이에는 위계(순서)가 존재한다.[9] 단 플로티누스의 하나, 정신, 영혼에는 위격의 차이가 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성부, 성자, 성령은 동일위격이다. 삼위일체를 해석하는 데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10]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p.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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