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폭군 (문단 편집) ==== 그 외 ==== || '''{{{#ffffff 나라}}}''' || '''{{{#ffffff 왕호}}}''' || '''{{{#ffffff 재위기간}}}''' || '''{{{#ffffff 비고}}}''' || ||<|2> [[로마 제국]] || '''[[네로]]''' || 54년 ~ 68년 || [* 보통 폭군의 대명사 수준으로 유명하지만, 집권 전반기에는 의외로 형식상 유능한 모습을 보인 전형적인 [[암군]]의 그것에 가깝다. 현대에는 업적이 있어 재평가 중이고, 암군에 가까운 폭군으로 불린다. 다만, 로마인들의 기준으로는 형식적 공화정인 로마 제국 안에서 프린켑스가 불법, 위법 행위 외에도 반인륜적 범죄 등을 지시하거나 직접 한 까닭에 암군이 아닌, 진짜 폭군이 맞았다.] || || [[도미티아누스]] || 81년 ~ 96년 || [* 기독교도들에게는 공포의 대상 그 자체였지만, 원로원과 로마 상류층 지식인들에게도 최악의 황제였다. 도미티아누스는 네로와 달리 불법이나 위법 행위를 펼치지 않았고, 그 능력이 뛰어난데다 법질서 확립을 이유로 펼친 엄격하고 공정한 통치 부분에서는 모두에게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이전의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칼리굴라)와 마찬가지로 냉혹한데다 원로원과 갈등의 골이 깊었던데다, 반란 사건 이후 의심이 심해져 암살 이후 기록말살형과 동시에 폭군으로 공인됐다. 갈등의 골이 이전 두 황제 이상으로 최악이었던데다, 황제가 반역죄로 원로원 의원들을 기소 후 고문까지 동원해 욕을 엄청 먹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더욱이 칼리굴라처럼 자기 신격화를 하면서도, 언행까지 대놓고 Rex(왕)들이 사용한 방식을 사용하고 이를 고발인 제도로 끝없이 감시해 원로원과 상류층 모두에게 두고 두고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 || [[아케메네스 왕조]] ||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 기원 전 359년 ~ 기원전 338년 || [* 특히 이집트를 포함한 사트라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는데, 이는 제국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위였다.] || || [[사산 왕조]] || [[아르다시르 2세]] || 379년 ~ 383년 || [* 기독교들 한정. 그러나 기독교도들은 사산 제국내에서 소수였다.] || || [[교황령]] || [[알렉산데르 6세]] || 1492년 ~ 1503년 || [* 당시의 정세에 따르면 세속적인 군주로서는 그럭저럭 [[명군]]이라고 평가받기에 충분한 인물. 다만 오늘날에는 교황 하면 정치가가 아니라 성직자로서의 모습만 떠올리기 때문에 이 성직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악평을 듣게 된 경우다.] || ||<|3> [[오스만 제국]] || [[무라트 4세]] || 1623년 ~ 1640년 || [* 흡연자들에게는 악마보다도 더한 사람이라는 평을 들었다. 단지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였기 때문인데 자세한 이야기는 [[튀르키예/여담]] 참고.][* 다만 법 체계를 개혁하여 국가 막장 테크를 타고 있던 오스만 제국을 다시 일으켜세우는 한편 무너질 대로 무너진 황권을 강화했으며,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여 상당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역대 오스만 제국의 황제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몸소 군대를 지휘한 황제였으며, 담배와 커피를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금지하지만 않았더라도 폭군은커녕 명군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능력만으로는 명군에 더 가깝지만 인간으로서 미움 받아 폭군 소리를 듣는 경우.] || || [[셀림 1세]] || 1512년 ~ 1520년 || [* 이집트를 정복하고 페르시아를 상대로 기선을 제압하는 등 치세 8년 동안 제국의 영토를 2배로 확장한 공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지만, 매일같이 관료들을 처형하는 게 문제였다. 다만 마구잡이로 잡아 죽인 게 아니라 명령을 빡빡하게 내려놓고는 제대로 하면 포상, 제대로 못하면 처형이라서 일관성은 있는 편이었으며, 연회 자리에서 셀림과 신하들 사이에 처형하는 것을 두고 농담이 오고 갈 정도였다는 것을 보면 공포정치까지는 아니었던 듯 하다. 다만 후대에는 "셀림의 관료처럼 되기를!"이라는 말이 욕설로 쓰였다.] || || [[압뒬하미트 2세]] || 1876년 ~ 1909년 || [* 서구권에서 '''붉은 술탄'''이라고 부를만큼 정치적 숙청을 많이 단행한 술탄이었다. 탄지마트 이후 입헌군주제로 바뀌어가던 오스만 제국을 전제군주제로 회귀하기 위해 검열제, 비밀경찰제 등을 도입했으나 이에 분노한 청년 튀르크당의 혁명으로 폐위되었다. 다만 오늘날에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 숙청이나 학살의 규모가 다소 부풀려졌으며 해외 유배형에 처한 경우도 많았다는 등 재평가되는 분위기.] || ||<|3> [[영국]] || [[리처드 3세]] || 1483년 ~ 1485년 || [* 이쪽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의해서 폭군 이미지가 덧씌워진 점도 있다.] || || '''[[헨리 8세]]''' || 1509년 ~ 1547년 || [* 홍무제나 고려 광종, 조선의 태종 & 숙종처럼 헨리 8세도 정치는 잘했지만 그 대신에 숙청을 많이 한 사례다.] || || [[메리 1세]] || 1553년 ~ 1558년 || [* [[엘리자베스 1세|자신의 동생]]이 너무 뛰어난 업적을 세우는 바람에 상대 절하되어 악역으로 묻혀버린 경우. 실제로는 그 정도로 포악하고 무능한 인물은 아니었고, 오히려 당시 군주치고는 너그러운 편이었으며 업적도 여러 개 있다. 엘리자베스 1세의 업적으로 알려진 것 중에서도 사실은 메리 1세 대에 시작되었던 것이 제법 있다.] || ||<|3> [[러시아]] || '''[[이반 4세]]''' || 1533년 ~ 1584년 || [* 말년에 이르러 혹독하고 포악하며 변덕스러운 성정으로 변해버렸다. 신하들을 잔인하게 숙청하기도 했고, 별 것도 아닌 일로 임신한 며느리를 폭행해 유산시키고 이를 항의하는 '''아들'''마저 구타해 죽게 하는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기도 했다. 다만 외교, 문화, 군사적인 면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두어 이후의 [[러시아 제국]]의 기반을 튼실하게 다져서 현재의 [[러시아]]를 있게 만든 군주라는 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 || [[표트르 대제]] || 1682년 ~ 1725년 || [* 러시아 역사를 표트르 이전과 이후로 나눌 정도로, 러시아를 근대화시킨 명군으로 인정받지만 이 근대화를 위해 귀족과 백성들을 가혹하게 부려먹었다.] || || [[니콜라이 2세]] || 1894년 ~ 1917년 || [* 무능한 통치로 나라를 몰락으로 이끌다가 [[피의 일요일 사건(러시아)|피의 일요일 사건]]으로 민중들에게 폭군으로 찍혔다.] || || [[루마니아]] || [[블라드 가시공]] || 1448년^^(1차)^^[br]1456년 ~ 1462년^^(2차)^^[br]1476년^^(3차)^^ || || || [[이란]] ||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 || 1941년 ~ 1979년 || || || [[줄루 왕국]] || [[샤카]] || 1816년 ~ 1828년 || [* 말년에는 암살 위협과 어머니의 죽음 때문에 정신병에 걸려서 미친 폭정을 일삼다가 시해되었다. 하지만, 한때나마 [[남아프리카]]의 대부분을 통일하는 한편, [[영국]] 등의 [[유럽]] 강대국들과 접촉해서 근대화 정책을 시행하는 [[명군]]의 자질도 보여주어서, 오늘날 대다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 사람들은 [[샤카]]를 성군으로 인식하는 편이다.] || || [[메리나 왕국]] || '''[[라나발로나 1세]]''' || 1828년 ~ 1861년 || [* 기독교 탄압과 영토 확장을 위한 내전으로 사람을 죽여 단 6년 만에 고국의 인구를 '''500만에서 250만으로 반토막냈다.''' 다만 최근에는 이게 서구 열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재평가도 있다.] || || [[일본]] [[고훈 시대]] || [[부레츠 덴노]] || 498년 ~ 507년 || [* 일본 고대사 최악의 폭군. 하지만 그 악행이라고 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고사기》에는 없고 《일본서기》에만 기록되어 있어서 후대에 [[케이타이 덴노]]의 즉위를 정당화하려고 중국사에 등장하는 폭군들의 행적을 갖다붙여서 부레츠 덴노를 폭군으로 묘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