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팔츠 (문단 편집) === 탄생 === [[중세]] [[유럽]]에는 [[현대]]와 같은 고정적인 [[수도(행정구역)|수도]]가 존재하지 않았으며[* 설령 법적으로 어디를 [[수도(행정구역)|수도]]라고 명문화했더라도, 그냥 군주가 [[대관식]]을 치르는 곳 내지는 개인 취향으로 자주 방문하는 곳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대표적으로 [[부르고뉴 공국]]의 명목상 수도였던 [[디종]]이 있다.], [[황제]] 혹은 [[왕]]은 정기적으로 팔츠에서 팔츠로 이동하면서 머무르는 동안 수도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농업 생산량이 많았거나, 상공업이 발달했던 [[영국]], [[프랑스]]나 [[남유럽]] 등지는 고정된 수도가 있었지만[* 대표적으로 [[동로마 제국]]이 있다.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한 이래로,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해 멸망할 때까지, [[제4차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잠시 [[아나톨리아]] 반도로 [[니케아 제국|쫓겨났을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수도를 이전하지 않았다. [[영국]]도 [[로만 브리튼|로마 제국령 시절]]부터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성장했던 [[런던]]의 경제력이 압도적이었던 탓에, [[노르만 왕조]] 시기에 처음 런던에 수도를 정한 이래로 왕실이 내내 그곳에 뿌리를 박았고, 같은 이유에서 [[프랑스]]도 [[파리(프랑스)|파리]]에서 [[중세]] 시기에서 현대 공화국 시기까지 단 한 차례도 수도 이전을 하지않았다.], 그럴 여유가 없고 상대적으로 지방분권적인 경향이 강했던 [[동유럽]]이나 [[신성 로마 제국]]에서는 고정된 수도를 둘 수 없었다. 팔츠는 교통 요지나 부유한 지역, 농업 생산력이 좋은 지역에 위치했으며, 일일행(一日行)을 염두에 두었기에 하루 동안 말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인 30km 간격마다 팔츠가 세워졌고, 이러한 팔츠를 따라 생긴 길을 이왕도(移王道)라는 의미에서 이티네라레(Itinerare)라고 불렸다.[* 현대 영어의 itinerary로도 이어졌는데, (주로) 비행기 티켓 교환권의 통칭으로서 교환용 고유번호와 이동경로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또한 itinerary는 [[토익]] 빈출 단어로서 여행일정표를 가리키는 데에 많이 쓰인다.] 팔츠를 옮겨 다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왕들은 국토를 돌아다니면서 제후들을 감시하고 계약관계를 상기시켰으며, 팔츠에 머물며 칙령을 발표하고 봉신들을 중재했으며, 궁정회의와 재판, [[대관식]], [[선거]], 기타 대규모 행사를 주재했다. 또, 당시로서는 부족하고 한정된 지역생산성을 극복하여 왕과 가신들을 먹여살려야 했으므로, 부유하고 농업생산이 좋은 지역에 팔츠가 위치할 수 밖에 없었다. 각 팔츠는 교통이 편리한 곳에 세웠기에, 왕은 주기적으로 팔츠를 옮겨다님으로써 해당 팔츠와 그 지역의 물자가 고갈되는 것을 방지했으며,[* 궁정에서 요구하는 물자량이 엄청났다. 동시대 전거(典據)인 색슨족의 제국연대기 “Annalista Saxo”에 따르면, [[오토 1세]] 대제가 팔츠에 머물렀을 때, 대략 천여 명 정도의 수행원을 먹이기 위해 매일 1,000마리의 돼지와 양, 마차 10대 분량의 포도주와 맥주, 15,000포대의 곡식, 소 8마리, 이외에도 닭, 새끼돼지, 생선, 계란, 채소 등이 소비되었다고 적고 있다. 수행원의 가족과 기타 인원도 동행하였을 터이니, 실제 기록보다 몇 배는 먹여살려야 할 인원이 많았을 것이며, 어지간한 선제후라도 이런 막대한 물자 소모를 계속 버텨내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중세 유럽은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서 수도에 물자를 운송하다가 손실을 입느니, 차라리 왕이 수도를 옮겨다니는 게 경제적이기도 했다.] 이러한 일상적인 순방은 궁정의 경제적 궁핍함을 잠재울 수 있는 효과도 있었다. 이러한 곳은 제국칙령과 같은 특권을 지닌 주요도시에 위치하고 있다. 평시 황제가 부재한 경우에는 각 팔츠에 배치된 백작, 즉 [[궁정백]]이 팔츠 일대의 직할령 재산을 관리하면서 주변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하였다. 팔츠의 용도는 황제 혹은 왕의 취향에 따라 모습이나 용도가 변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황제들이 겨울을 보내는 겨울궁전, 여러 축제를 즐길 축일궁전과 부활절 축제를 위한 부활절 궁전 등이 있으며, 때때로 주교좌 성당이나 수도원으로 변용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