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토욕혼 (문단 편집) == 역사 == 국호의 어원은 시조인 [[모용토욕혼]]이었다. 모용토욕혼은 [[요서]] 지방에 위치한 [[모용선비]]의 지도자 [[모용섭귀]]의 장남이었다. 훗날 모용선비의 [[군주]]가 되어 [[모용부]]를 대대적으로 일으키는 [[이복동생]] [[모용외]]와는 사이가 꽤 나빠서, 일찍이 먼 거리에 위치했던 서역으로 이주하여 부사를 수도로 삼아 토욕혼을 건립했다. [[중국]]에서는 "하남국(河南國)"이라 칭하며, [[티베트]]에서는 "아시(阿柴)"라고 불렀다. 나중에 국호를 "백란(白蘭)"으로 바꾸었지만, 일반적으로 가장 널리 통용되는 명칭은 토욕혼이다. 위치나 국호로 인해 [[티베트|토번(吐蕃)]]과 헷갈릴 수도 있으나, 막상 이들은 토번에게 멸망당했다. 물론 이웃한 나라이니 서로 영향을 주고 받기는 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오호십육국시대]]를 거치던 [[화북]] 지역과 전쟁 및 교류를 잦게 가졌다. [[371년]]에는 화북을 평정한 [[전진(오호십육국시대)|전진]]의 [[황제]] [[부견]]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10대 왕인 모용모괴(慕容慕璝)[* 재위기간: 426년 ~ 436년]대에 이르러서는 전란에 휘말린 진주와 양주의 유랑민들을 받아들이면서 세력을 좀 불렸다. 이때에 이르러 남쪽으로는 [[송(남조)|남조]]와 교류하는 한편 북쪽으로는 [[북위]]와 손을 잡고 [[북하]]를 공격하였으며, [[431년]]에 이르러 북하의 마지막 황제를 사로잡아 북위로 압송함으로써 멸망시키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7세기 초에 이르러서 세력이 약화됨에 따라 [[동돌궐]]과 함께 [[수나라]]에 복속되었다. 7세기 중엽 이후로는 분열된 [[토번]]을 통일한 [[손첸감포]]가 등장하였고, 강성해진 토번은 토욕혼의 목숨줄을 뒤흔들었다. 토욕혼의 마지막 군주였던 모용낙갈발(慕容諾曷鉢)은 토번의 침공에 대항하려 하였으나 끝내 실패하였고, 토욕혼은 [[672년]]에 사실상 멸망하고 만다. 이후 모용낙갈발은 [[당나라]]에 망명하여 그곳에서 벼슬살이를 하다가 사망하였다. 왕을 [[가한]]([[可]][[汗]])이라 칭했으며, 유목 생활을 주로 했지만 일부에서는 농경도 행했다. [[실크로드]] 주변답게 상업도 꽤 발달했었다. 이들의 후손이 현재 중국의 [[토족]]이라는 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