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탱크맨 (문단 편집) === 용기에서 비롯된 행위 === 6.4 항쟁 당시 [[인민해방군]]의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속출했다. 고로 군인들이 별 생각 없이 탱크맨을 진짜로 밟고 지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훗날 자칭 이슬람 국가 [[ISIL]]은 실제로 포로를 탱크로 뭉개서 죽였으며,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러시아가 2022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부차 학살|차에 탄 민간인을 전차로 깔아뭉갰다]].] 혹은 짓밟지 않더라도 탱크에서 나온 군인이 총으로 쏴 버리고 시체를 옆으로 치운 후 지나갔을 수도 있다. 즉, '''탱크맨은 정말 죽음을 각오하고 탱크를 막아섰던 것이다.''' 여기서 만약에 탱크맨마저 전차가 밟고 지나갔다면 더 큰 일이 되었을 것이다. 저 사진이 퓰리처상 후보작 중 하나였으며 사진 속 인물이 타임지 선정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었던 인물로 뽑혔음을 생각하면 큰 일이었을 것이다. 탱크맨 사진 자체도 충격적인데 전차에 처참하게 짓밟히는 탱크맨의 모습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면 그 즉시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인식은 바닥으로 추락했을 것이고 국내에서는 반발이 더욱 거세져 시위진압도 실패했을 가능성도 있다. 여러 사람이 학살당하는 것은 분명 더욱 비참한 일이나, 때로는 어떤 한 사람의 죽음이 학살보다 더욱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있다. [[틱꽝득]]의 소신공양은 [[베트남 공화국|월남]]의 운명을 결정지었으며,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자유당]] 정권의 파멸을 불러왔다. 결정적 장소에서 발생한 비극적 죽음은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되어 꺼지지 않는 혁명의 연료가 되는 셈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전차 부대가 본인을 밀고 지나가게 하는 것이 탱크맨 본인의 의도였을 수도 있다. 게다가 컬러 사진으로 보면 길이 [[피]]로 물들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장에 '''컬러 사진에 있는 길에 있는 주황색의 무언가가 다 핏자국이다.''' 탱크맨이 서 있던 바로 그 길은 몇 시간 전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던 곳이었다. 실제로 같은 위치를 몇 시간 전에 같은 구도로 찍은 사진을 보면, 미처 수습되지 못한 수많은 시체들과 부서진 자전거들이 널려 있다. 시민들이 학살된 바로 그 자리에서 탱크맨 자신도 단신으로 '''"그래!! 나를 탱크로 밟고 지나가라!! 어디 한 번 죽여볼테면 죽여봐라!!"''' 라는 마음으로 죽을 각오를 하고 탱크를 막아선 것이다. 군인들도 차마 시민을 눈앞에서 전차로 짓밟지 못할 양심[* 근데 이것도 확실하게 장담할 순 없다. 상부에서 시위를 계속하면 죽이라고 시켜서 하는 거라 탱크 사건 전에도 여러 사람들을 참혹하게 죽인 것이므로, 탱크맨 역시 사실 탱크를 운전하던 군인이 그냥 죽인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단지 평범한 사람이 그런 무서운 용기를 내는 걸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전설에는 이런 사건들이 꽤 있지만, 20세기에 증거가 남는 인류의 영상기록 역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이렇게 혼자 신념만으로 생명을 건 사건이 매우 적다.) 몇 명만 쏴도 나머지가 도망가는 걸 많이 봐 왔을 테니, 오히려 너무나도 당당히 전차 앞을 가로막은 모습에 탱크맨이 들고 있는 것이 자폭용 폭탄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당황해서 일단 멈춘 것일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와 별개로 [[살인]]이 주는 중압감은 그 차원을 달리한다. 국가 불문하고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교도관]]들조차 [[사형]] 집행만큼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심지어 교도관이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은 대개 살아 있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나은 인간이 대부분인데도 말이다. 차라리 군경이 잔뜩 나와 총격을 가하는 상황이었다면 '다들 하는데 나라고 뭐.', '나는 허공에 총을 쐈어. 내 탓은 아냐!'라는 최소한의 합리화와 현실부정이라도 가능하지만, 탱크맨을 죽이는 행위와 그로 인한 죄책감은 오롯이 '전차 앞으로' 라는 명령을 내린 [[전차장]] 홀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 된다. 군인이라도 결국 전투훈련을 받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전차 앞에 서는 데만에도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며, 죽음을 무릅쓴 자세가 가히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당장 땅이 울리도록 자신을 압도하며 서 있는 수십 톤짜리 살상무기를 상상하면 공감이 될 것이다. 탱크라는 건 보통 무게가 아니기에[* 당시 사용된 [[59식 전차]]의 무게가 약 36톤이다. 59식 전차가 비록 다른 현대 주력 전차에 비해 가벼운 느낌이 들지라도 어쨌든 탱크는 맞다.] 빠른 속도로 움직일때 바로 근처에 서 있으면 진짜로 땅이 흔들리며, 사람이 넘어질 수도 있다. 단순히 움직이는 전차 옆에 당당하게 서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집중력이 요구된다. 살벌했던 당시의 상황과 거대한 폭력 앞에 단신으로 혼자 서서 막아내는 그의 용기가 인상깊게 표현되어 위 사진이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선정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