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탈북 (문단 편집) == 특징 == || [[남북의 창|[[파일:남북의 창 로고.png|width=80]]]]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VvIbrFLCp48, width=100%)]}}} || || '''[클로즈업 북한] “남한 방송 보며 동경”…다양해진 탈북 이유[br]{{{-2 (2023년 5월 27일 방영분)}}}''' || 북한은 이동이나 여행의 자유가 심하게 제한된다. 북한 내의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고 [[려행증]]을 발급받지 않거나 없으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수도인 [[평양시|평양]]은 특별한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한 데다가, 출신 성분이 불분명한 이들은 아예 허락조차 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국내 이동에조차 여권이 필수라는 말이 된다.[* 연방제도 아니고 한 나라 안에서 이동하는 것조차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게 만든 독재자는 [[폴 포트]], [[이디 아민]], [[마시아스 응게마]],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그나마 이는 일부 지역에만 적용되었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처럼 당대에도 정말 도를 넘은 수준의 독재자밖에 없다. 정작 연방제의 대명사 미국에서는 여권이 필요없으며, 소련도 다른 지역을 이동하려면 국내 여권이 필요했으나 소련은 여러 '[[공화국]]'들로 이루어진 국가라 공화국들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 여권이 필요한 경우였기에 북한과 비교하기는 힘들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탈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국경 지역, 그것도 [[신의주]] 같은 평안도 일대보다는 그나마 통제를 피할 수 있는 동북쪽 함경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즉 탈북하고 싶어도 지리적 여건이나 형편이 함경도민들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한국 정착 탈북자 중 두만강 국경지대인 회령, 온성, 무산 출신이 절반이라는 주장도 있다.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4/17/2014041701291.html|#]] [[평안북도(이북5도위원회)|평안북도]]는 [[압록강]] 중류나 하류가 인력으로 도강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하다 보니 이쪽 출신도 별로 없다는 점이 크다. [[두만강]]은 압록강 하류보다는 건너기가 수월한 듯하다. 브로커를 끼고 탈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함경북도나 량강도 같이 [[함경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역은 연변 출신 조선족으로 위장할 수 있으나 평안도 쪽은 그것이 어려워 더 발각되기 쉽다고 알려져 있다.[* 반대로 상당히 드문 경우이기는 하지만, 개성 출신이라 [[경기 방언]]을 쓰다보니 거꾸로 중국에서 남한 사람으로 위장하기 쉬웠다는 개성 출신 북한이탈주민의 증언도 존재한다.]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할 정도다. 설사 해외로 나왔다고 해도 북한 [[국가보위성]]에서 파견한 보위원의 감시 하에 일거수 일투족이 보고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감시 체계를 벗어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모험이다. 그나마 [[뇌물]]이라도 상납하면 못 본 척 넘어가긴 하지만, 일반 주민들이 그런 금액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냉전]] 시기에는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이용했는데, 이 경우는 보통 탈북이 아니라 귀순[* 평범한 민간인이 아닌 군인이나 고위 관료의 탈북은 여전히 '귀순'이라는 단어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탈북은 1994년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쓰게 된 명칭이다. 과거 냉전 붕괴 이전에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주 훌륭한 선전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급격히 막장테크를 타면서 탈북자의 수가 매년 1~2천명으로 늘어나고, 체제 경쟁 구도도 약해지면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탈북자]]들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탈북자들은 [[경기도]] [[안성시]]에 소재한 [[통일부]]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 교육을 받고, 공식적으로는 새터민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하나원에서는 [[간첩|북파공작원]] 전역자들에 대한 적응교육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새터민들이 하루아침에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사기 피해를 매우 많이 당하는 편이다. 또한 [[대한민국 정부|정부]]에서는 소정의 지원금을 주는데, 이것을 위해 탈북 전문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착금 300만원을 받았는데 이중에서 브로커 비용이 290만원인지라 딱 10만원 남았다는 후기도 있었다. 탈북은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탈북, 탈북 계획은 물론 탈북 방조까지도 북한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탈북에 실패한 [[북한이탈주민|탈북자]]들의 처벌은 기본적으로 [[교화소]][* 북한의 교도소]에서 몇년의 노동교화형으로 시작하며,[* 말이 노동교화형이지 수년간의 열악한 수감 생활을 버티지 못하고 죽는게 대다수다.] [[요덕 제15호 관리소]]를 비롯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종신형을 보내기도 하며, 가족이나 친척들은 평생 감시와 사회적 불이익을 받아야 한다. 북한은 [[연좌제]]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탈북자를 두고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갈린다. 실제로 어느 탈북자는 몇번이나 탈북 기도하다가 걸렸음에도 운 좋게 구타 및 욕설과 석방 가능한 수용소 생활 끝에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을 취조하던 군 간부가 "탈북하려는 거 보니 돈 좀 있는 모양이지? 그거 좀 주면 내가 봐주겠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도 고위간부급이 되지 않는 이상 당원이라도 월급이 좀 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당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서민층들보다는 돈을 모으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는 하다. 운 나쁘게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탈북하기는 쉬울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그것도 [[동북 3성]] 지역에서 탈북자들이 잡혀 북송되면, 그들이 중국에서 모은 돈은 보위부에서 전부 다 뺏는다. 그리고 이 [[북한이탈주민]]들은 돈을 바쳐서 나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 결국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통해 10여명의 탈북자 동료와 같이 남한으로 오는데 성공했다. 그 중에는 절반이 같이 수용소에서 탈북기도하다가 걸려 수감된 이들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북한/경제|경제]]가 더욱 악화되어, 감시자들이 탈북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는 돈의 금액이 정해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기획탈북'이라는 것까지 생겼는데, 지역의 정치지도원이나 경찰간부가 탈북을 시켜준 후 탈북자에게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돈을 받았다는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탈북자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더욱 기막힌 것은, 아예 이를 위해 간부가 오히려 탈북하라고 부추긴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겨레중고등학교 재학생들과 인터뷰를 한 것 중에는 탈북 도중에 혼자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3달 가량 감옥에 갇혔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는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와 친척집에 머물다가, 남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재차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탈북자에 대한 처우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탈북자라고 해서 다 같은 탈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연상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들어오는 것을 패키지로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탈북자들이 흔히 탈북했다가 잡혔다는 말을 할 때 의미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는 행위까지인 것이다. 묘하게도 탈북하기 전 한국으로 가겠다고 미리 결심한 후 탈북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실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북한을 뜨자는 일이 대부분이고, 한국행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나왔다가 거기에서 대한민국과 관련된 매체나 정보를 접한 뒤 가겠다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북한 탈출 후 중국 등지[* 대부분 동북 3성 지역에서 활동한다.]에서 유랑 생활을 오래 하다가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다. 이 역시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과 관련된 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야 한국의 실상을 알고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국경지역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밀리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한에 대한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곧바로 남한으로 직통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와 같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남한까지 오는 것을 계획하고 북한을 탈출한 고위층이거나, 이미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기획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 등이다. 북한에서도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처벌이 중하지 않아서 [[징역|노동교화형]]이나 [[구류|노동단련형]] 정도로 처벌받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쪽으로 오는 순간 엄청난 중죄가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잡힌 경우는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으로 봐서 길게는 5년 정도 형을 마치고 풀려나지만 중국 동북 3성과 다른 성[* 랴오닝성/헤이룽장성과 허베이/내몽골자치구의 경계 지역]의 접경지역, 3국의 국경 지대, 중국의 공항이나 항구, 중국 영해 등에서 잡히게 되면 다른 나라, 특히 [[대한민국|한국]]으로 가려는 의도로 봐서 그 처벌 수위가 기본 10년형의 중형으로 늘어난다. 심한 경우에는 한번 들어가면 절대 사회로 복귀할 수 없는 완전통제구역으로 끌려 가거나 끔찍하게 처형된다. 그래서 탈북자 가족들은 현지에서 대부분 탈북자에 대해 '행방불명'이나 '가족들 몰래 중국으로 간 것'으로 해놓고, 확인이 안 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보위부에 [[뇌물]]을 먹이고 눈 감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탈북했는데 가족들에게 뭔 돈이 있냐 싶지만, 놀랍게도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남한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에 [[한국 원]]을 [[중국 위안]]으로 환전하거나 [[미국 달러]]로 환전해서 송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에서 이 돈을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도 마찬가지니, 2단계만 거치면 돈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브로커 여러 명이 끼기 때문에 30% 정도가 수수료로 들지만, 어차피 남한 경제력은 북한에 비하면 매우 양호하니 송금 액수 자체가 커서 나머지 70%의 돈이 가족에게 전달되면 그 가족은 동네 안에서는 꽤 부자가 된다. 하지만 재입북자가 하나원 동기들을 기억해 내서 신상을 발설하는 순간, 탈북자 한 기수 가족들이 줄줄이 수용소행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 문서의 '돌아갈 수가 없다' 문단 참조.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중국과 북한이 국경을 폐쇄 하면서 탈북이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