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불 (문단 편집) === 카불 샤히 (vs 이슬람 제국) === 카불은 420년 키다리, 460년대 [[에프탈]] 등 유목 세력들에게 점령되었다. 그후 [[서돌궐]] 출신 튀르크계 왕공들이 집권하였고, 565년 혹은 661년에 카불 샤히가 성립되었다. 알 비루니에 의하면 그 왕조는 무려 60대나 이어졌다고 한다. 다만 당시 수도는 카피사였고, 카불로는 794년에야 천도한다. 한편 642년의 [[니하완드 전투]] 후 [[이슬람 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카불의 샤는 도시에 성벽을 둘렀는데, 보수를 거쳐 현존한다. 카불 시는 40여개의 불교 도량이 링 형태로 도시를 둘러싸고 다시 성벽이 불교 도량을 둘러싼 형태의 도시였다. 664년, [[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압둘라흐만 이븐 사무라가 카불을 점령한 후 12,000명 주민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후 카불의 샤는 우마이야 조에 조공했는데, 압둘라흐만이 사망하자 아랍인들을 축출하고 재차 독립하였다. 이에 칼리파 [[야지드 1세]]가 토벌군을 보내었지만 격퇴되었다. 680년경에는 카불의 샤가 막강해지는 동생 루트빌을 응징하고자 우마이야령 호라산의 아물 태수 살름 빈 지야드를 찾아와 복속하며 원조를 청하였다. 이에 살름은 칼리파 [[무아위야 2세]]에게 재가를 요청했는데, 무아위야는 아프간 일대의 족속들은 교활하다며 돕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무아위야의 사후 [[2차 피트나]]가 더 극심해지는 틈에 샤는 아물을 점거, 루트빌을 축출하고 군대를 보내 자란즈를 포위하는 등 세를 과시하였다. 다만 자란즈 포위는 우마이야 원군의 당도로 풀렸다. 내전이 끝난 후 697-698년 우마이야 군대가 재차 카불을 공격해왔으나 그 사령관 야지드 이븐 지야드가 전사하는 등 대패하고 물러갔다. 그 후 8세기 초반 우마이야 군대는 카불 북쪽의 [[토하리스탄]], 소그디아([[트란스옥시아나]]), [[페르가나]] 일대에 집중하였다. 그 동안 카불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구가하였는데, [[압바스 왕조]]의 수립 후 769년 그 군대가 카불을 습격하였다. 792-793년엔 압바스 장군 이브라힘 이븐 지브릴이 토하리스탄과 바미얀의 제후들을 대동, 카불을 점령하고 많은 약탈물과 함께 귀환하였다고 한다. 9세기 들어선 칼리파 [[알 마문]]은 [[호라산]]에 체류하며 카불에 원정군을 보내었고 샤는 연공 납부를 조건으로 복속하였다. 포로가 된 샤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그 증거로 은으로 된 왕좌에 앉은 우상을 바쳤다고도 하다. 연이은 압바스 조의 공격 중에 아프간 일대의 많은 우상들이 파괴되었다. 일각에 의하면 801 ~ 815년간 [[토번 제국]]이 도시를 점령하였다고도 한다. 여러 전쟁을 거치며 보강된 카불 성채는 외길로만 접근 가능한 천혜의 요새로 명성이 높았다. 이슬람 군대의 지속적인 공격에 카불 지배층의 일부는 무슬림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불교도 혹은 힌두교도였다. 870년에 [[사파르 왕조]]가 도시를 점령한 후에야 이슬람화가 본격화되었다. 10세기 들어 이란계 이슬람 왕조들인 [[사만 왕조]], [[가즈나 왕조]], [[구르 왕조]], [[호라즘 제국]]의 지배를 받은 카불은 13세기 몽골의 침공에 큰 피해를 입었다. 몽골을 피해 남하한 아프간 인들은 북인도에 [[할지 왕조]]를 세웠고, 카불은 그 지배를 받았다. 1333년 도시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한때 큰 도시였던 그곳에 이제 아프간 인들이 거주한다고 기록하였다. 14세기 말 카불은 [[티무르 제국]]에게 정복되었고, 그 무역 거점으로 성장해 미르자 (왕공)들이 통치를 맡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