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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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파일:아프가니스탄 국기.svg 아프가니스탄
면적
1,028.24km²
인구
4,601,789명(2021)
1. 개요
2. 역사
2.1. 카불 샤히 (vs 이슬람 제국)
2.2. 무굴 제국의 산실
2.3. 근현대: 아프간의 수도
2.4. 영국-아프간 전쟁과 근대화
3. 현황
3.1. 2016년
3.2. 2017년
3.3. 2018년
3.4. 2019년
3.5. 2020년
3.6. 2021년
3.7. 2022년
3.8. 2023년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
탈레반이 입성한 2021년 8월 16일 카불 시내[1]

아프가니스탄수도.

힌두쿠시 산맥의 기슭의 해발 1,790m의 고산지대에 있다. 인구는 304만 명인데 광역권을 포함하면 463만 명이다. 위도는 북위 34.57으로 한국의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와 비슷하지만,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실제 기온은 더 낮다. 역대 최저기온, 최고기온, 연평균기온은 각 -26.2°C, 37.7°C, 12.1°C로 서울의 -23.1°C, 39.5°C, 12.5°C 보다 약간 낮다.강수는 겨울에 집중되며 나머지 계절은 건조한 편이다. 겨울에 집중되기 때문에 눈이 자주 오는 편. 종교적으로는 이슬람이 매우 강세를 보이고, 민족적으로는 파슈툰족타지크족이 다수를 차지한다.

역사적으로 기원전 6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었고, 실크로드 무역 도시로 번영하였다. 고대에는 지배국에 따라 페르시아와 인도 문화권을 오고가며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 8세기 말엽 처음으로 자체적인 독립 국가인 카불 샤시의 수도가 되었고, 이슬람화 이후 몽골의 파괴와 함께 침체기를 겪었으나 16세기에 바부르의 거점으로써 중시되었다. 18세기 말엽 두라니 제국을 시작으로 토착 아프간 왕조들의 수도가 되었고, 근대화를 겪으며 아프가니스탄의 확고한 중심이 되었다. 발흐, 헤라트, 칸다하르 같은 고대와 중세에 크게 번영하던 도시들이[2] 아직까지 크게 낙후되어 있는 점과 대조된다.


2. 역사[편집]


파일:카불 바부르 2.jpg
무굴 제국기 공원인 바그 에 바부르에서 바라본 카불 전경

기원전 1500년 경 리그베다에서 처음으로 나온다. 고대 아케메네스 제국 시절 카불은 처음엔 조로아스터교, 후에는 불교 문화가 융성하였다. 이후 잠깐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거쳐 마우리아 제국령이 된 도시는 도량형의 균일함 덕분에 양국간의 무역이 흥하였다. 그러한 수익으로 관개 시설이 확충되어 농업 생산이 늘었고, 장인들과 직공들 등 기술자들이 모여들었다. 마우리야 시대의 안정을 겪은 후 재차 헬레니즘 문화권인 박트리아인도-그리스 왕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후자의 불교 후원으로 주민들 역시 불교도가 되었다. 그러던 기원전 1세기 인도-스키타이가 도시를 점령했지만 곧 샤카족의 쿠샨 제국령이 되었다. (기원전 45년) 2세기에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에서도 등장할 만큼 쿠샨 제국 하에 번영을 이어가던 도시는 230년에 사산 제국에게 패배하였고, 그 속국인 인도-사산 왕국령이 되었다.

당시 도시는 '카풀'로 불렸는데, 페르시아어 (그때는 팔라비어)로 '왕의 다리'라는 뜻이다. 이는 도시 중앙을 관통하는 카불 강에 놓인 다리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한편 고대 그리스 인들은 카불 강을 코펜(Κωφήν(Kōphḗn))이라 불렀는데, 중국 사서에서는 한자로 '계빈(罽賓)'[3] 혹은 '갈빈(羯賓)'으로 표기하였다.


2.1. 카불 샤히 (vs 이슬람 제국)[편집]


카불은 420년 키다리, 460년대 에프탈 등 유목 세력들에게 점령되었다. 그후 서돌궐 출신 튀르크계 왕공들이 집권하였고, 565년 혹은 661년에 카불 샤히가 성립되었다. 알 비루니에 의하면 그 왕조는 무려 60대나 이어졌다고 한다. 다만 당시 수도는 카피사였고, 카불로는 794년에야 천도한다. 한편 642년의 니하완드 전투이슬람 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접근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카불의 샤는 도시에 성벽을 둘렀는데, 보수를 거쳐 현존한다. 카불 시는 40여개의 불교 도량이 링 형태로 도시를 둘러싸고 다시 성벽이 불교 도량을 둘러싼 형태의 도시였다. 664년, 우마이야 왕조의 장군 압둘라흐만 이븐 사무라가 카불을 점령한 후 12,000명 주민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고 한다. 이후 카불의 샤는 우마이야 조에 조공했는데, 압둘라흐만이 사망하자 아랍인들을 축출하고 재차 독립하였다. 이에 칼리파 야지드 1세가 토벌군을 보내었지만 격퇴되었다.

680년경에는 카불의 샤가 막강해지는 동생 루트빌을 응징하고자 우마이야령 호라산의 아물 태수 살름 빈 지야드를 찾아와 복속하며 원조를 청하였다. 이에 살름은 칼리파 무아위야 2세에게 재가를 요청했는데, 무아위야는 아프간 일대의 족속들은 교활하다며 돕지 말도록 지시하였다. 무아위야의 사후 2차 피트나가 더 극심해지는 틈에 샤는 아물을 점거, 루트빌을 축출하고 군대를 보내 자란즈를 포위하는 등 세를 과시하였다. 다만 자란즈 포위는 우마이야 원군의 당도로 풀렸다. 내전이 끝난 후 697-698년 우마이야 군대가 재차 카불을 공격해왔으나 그 사령관 야지드 이븐 지야드가 전사하는 등 대패하고 물러갔다. 그 후 8세기 초반 우마이야 군대는 카불 북쪽의 토하리스탄, 소그디아(트란스옥시아나), 페르가나 일대에 집중하였다.

그 동안 카불은 상대적으로 평화를 구가하였는데, 압바스 왕조의 수립 후 769년 그 군대가 카불을 습격하였다. 792-793년엔 압바스 장군 이브라힘 이븐 지브릴이 토하리스탄과 바미얀의 제후들을 대동, 카불을 점령하고 많은 약탈물과 함께 귀환하였다고 한다. 9세기 들어선 칼리파 알 마문호라산에 체류하며 카불에 원정군을 보내었고 샤는 연공 납부를 조건으로 복속하였다. 포로가 된 샤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그 증거로 은으로 된 왕좌에 앉은 우상을 바쳤다고도 하다. 연이은 압바스 조의 공격 중에 아프간 일대의 많은 우상들이 파괴되었다. 일각에 의하면 801 ~ 815년간 토번 제국이 도시를 점령하였다고도 한다. 여러 전쟁을 거치며 보강된 카불 성채는 외길로만 접근 가능한 천혜의 요새로 명성이 높았다.

이슬람 군대의 지속적인 공격에 카불 지배층의 일부는 무슬림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은 불교도 혹은 힌두교도였다. 870년에 사파르 왕조가 도시를 점령한 후에야 이슬람화가 본격화되었다. 10세기 들어 이란계 이슬람 왕조들인 사만 왕조, 가즈나 왕조, 구르 왕조, 호라즘 제국의 지배를 받은 카불은 13세기 몽골의 침공에 큰 피해를 입었다. 몽골을 피해 남하한 아프간 인들은 북인도에 할지 왕조를 세웠고, 카불은 그 지배를 받았다. 1333년 도시를 방문한 이븐 바투타는 한때 큰 도시였던 그곳에 이제 아프간 인들이 거주한다고 기록하였다. 14세기 말 카불은 티무르 제국에게 정복되었고, 그 무역 거점으로 성장해 미르자 (왕공)들이 통치를 맡게 되었다.


2.2. 무굴 제국의 산실[편집]


파일:카불 바부르.jpg
바부르의 정원 겸 영묘인 바그 에 바부르 전경

티무르 제국은 1469년 술탄 아부 사이드가 우준 하산에게 패하고 처형당한 후 내전으로 치달으며 쇠퇴하였다. 제국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었다. 사마르칸트-부하라의 술탄 아흐메드, 발흐의 술탄 마흐무드, 카불-가즈니의 울루그 베그 2세, 페르가나의 우마르 샤이크 2세였다. 울루그 베그 2세는 33년간 안정적으로 카불을 다스렸는데, 1502년 어린 아들 압둘 라작을 두고 사망하였다. 이후 그의 사위인 무함마드 무킴 아르군이 손쉽게 찬탈하였다. 한편, 페르가나에선 1494년 우마르 샤이크 2세가 사망한 후 아들 바부르가 계승하였다.

티무르 제국의 재통합을 일생 과업으로 여긴 바부르는 두 차례의 시도 끝에 1497년 사마르칸트를 점령했지만 본거지인 페르가나의 반란에 대처하다가 도시를 잃었고, 1500년 재차 점령했지만 이번엔 우즈벡 족의 샤이바니 칸에 의해 축출되었다. (1501년) 그새 페르가나는 다시 반란에 휩싸였고, 바부르는 그곳에서도 패배하며 본거지를 모두 잃고 소수의 병력과 유랑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그는 숙부가 지배하는 타슈켄트에 의탁했지만, 그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던 차에 카불에서 일어난 무킴의 쿠데타는 바부르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파일:바부르 동전.jpg
발행된 바부르의 동전

파일:바부르.jpg
바부르 초상화

1504년 겨울, 바부르는 눈 덮힌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카불로 향하였다. 그는 울루그 베그 2세의 조카라는 명분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아 무킴을 칸다하르로 축출하고 도시를 점령하였다. 정당한 계승자인 압둘 라작에겐 작은 봉토를 주어 무마시켰다. 사마르칸트 수복을 포기하지 않은 바부르는 이듬해인 1505년부터 자금 마련을 위해 카이바르 고개를 넘어 인도 방면 약탈전에 나섰다. 1507년엔 헤라트마저 샤이바니 칸에게 점령되며 바부르는 티무르 제국의 유일한 군주로 남았고, 제국의 옛 귀족들과 왕공들이 우즈벡 족을 피해 카불로 망명해왔다. 따라서 바부르는 파디샤 (황제)를 칭하였다. 1509년 바부르는 반란에 의해 일시적으로 카불을 잃고 소수의 동료들과 도주했지만, 곧 돌아와 도시를 수복하고 귀족들의 복종을 서약받았다. 이듬해 바부르의 원수 샤이바니 칸은 사파비 제국이스마일 1세에게 패하고 살해된다. 바부르는 이 혼란기를 틈타 이스마일에 복속 겸 동맹, 티무르 세력을 결집해 3번째로 사마르칸트를 점령하였다. 그러나 1512년 사파비-티무르 군대는 가즈데완 전투에서 우즈벡 군한테 대패하고 만다.

이후 바부르는 아프간에 웅거하며 북방의 고토 수복을 포기하고 티무르가 그랬듯, 북인도 정복을 시도한다. 그가 사파비 조에게 기울 것을 염려한 오스만 제국이 파견해준 군사 교관 덕에 화승총과 포병 부대를 갖추는 등 군대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여러 아프간 부족들을 평정한 바부르는 1519년부터 펀자브 지역을 공격하였다. 1524년 라호르를 점령한 바부르는 페르가나에서 대규모 원정을 준비하였다. 1526년, 바부르는 파니파트 전투에서 로디 왕조의 술탄 이브라힘을 전사시키며 대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2세기 이상 인도 대부분을 지배할 무굴 제국이 세워졌다. 연이은 전쟁 때문에 아그라델리 등 주로 힌두스탄에 머물렀지만 바부르는 고향 카불을 잊지 못하였다. 특히 그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인도와 달리 습하지 않은 기후를 선호했다고 한다.

اگرفردوس روی زمین است همین است و همین است و همین است

만약 지구 상에 천국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이고, 그것이다

ㅡ 바부르의 묘에 적힌 페르시아어 시구


바부르는 카불에서 20여 년간 통치하며 각별한 애정을 기울였고, 1530년 사망하자 유언대로 2년 전에 건설이 시작된 정원인 바그 에 바부르에 안장되었다. 한편 북인도 정복 후 불과 4년만에 바부르가 사망하자 그 후계자인 후마윤 대에 제국은 크게 흔들렸다. 동쪽에서 아프간계 장군 셰르 샤가 거병, 수르 왕조를 세웠다. 1540년 셰르 샤에게 패배한 후마윤은 라호르로 철수, 샤에게 사절을 보내어 '이미 힌두스탄 전부를 내주었으니 라호르를 남겨준다면 시르힌드를 상호 경계로 삼자'는 뜻을 전하였다. 이에 셰르 샤는 '나는 그대에게 카불을 남겨 두었으니, 그대는 그 곳으로 가야할 터'라고 답하였다. 이에 카불을 지배하던 동생 카므란은 형에게 도시를 넘겨주기 싫어 세르 샤와 동맹을 제안했으나 지나친 요구를 덧붙인 탓에 기각되었다.[4]

철수를 결심한 후마윤은 힘겹게 타르 사막을 횡단한 후 신드에서 전열을 정비하였다. 이후 후마윤은 칸다하르와 카불에서 카므란과 합류하려 하였으나 후자가 군대를 파병하자 대적하지 않고 이란으로 망명하였다. (1543년) 카므란은 자신의 이름으로 쿠트바 진행을 거부한 힌달 미르자를 가택 연금시키고 왕을 칭하였다. 후마윤을 지지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이들에 대한 박해를 가하며 여론을 악화시키던 카므란은 1545년 후마윤이 사파비 군대와 돌아오자 축출되었고, 후에 사로잡혀 실명되었다. 후마윤은 이후 카불에서 10년간 군대를 준비한 후 1555년 남하하여 시르힌드에서 수르 군대를 격파하고 힌두스탄을 수복하였다. 이렇듯 무굴 제국은 카불을 기반으로 세워졌고, 다시 카불에서 재기했다. 다만 악바르 대제 때부터 무굴제국은 현지화가 가속화되며 카불은 변방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그나마 샤 자한의 치세에 1637년 차르 차타 바자르, 1646년 샤자하니 사원 등이 건설되었다.


2.3. 근현대: 아프간의 수도[편집]


카불의 시타델인 발라 히사르

무굴 제국은 18세기 초엽 아우랑제브가 사망한 후 쇠퇴하였다. 그 동맹인 사파비 제국 역시 튀르크계 나디르 샤아프샤르 왕조로 대체되었다. 티무르처럼 인도 원정을 꿈꾸던 나디르 샤는 1737년 칸다하르를 점령한 후 1738년 카불을 정복한다. 카불을 기반으로 이듬 해 카르날 전투에서 무굴 군대를 격파하고 델리를 약탈하였다. 그러던 1747년 나디르 샤가 사망하자 아프샤르 제국은 분열되었다. 그의 부장인 아프간계 아흐마드 샤는 칸다하르에서 왕위에 올라 두라니 제국을 세웠다. 그 직후 카불과 가즈니를 점령하며 현 아프가니스탄 일대를 얻은 아흐마드 샤는 1749년 라호르, 1750년 헤라트, 1751년 마슈하드 등 왕성한 정복 활동을 이어갔다. 1761년에는 인도로 향하여 3차 파니파트 전투에서 마라타 동맹을 격파하였다.

두라니 조의 아미르 티무르샤의 영묘

1772년 아흐마드 샤가 사망하고 계승한 티무르 샤는 1776년 수도를 칸다하르에서 카불로 옮겼다. 동시에 페샤와르의 발라 히사르는 겨울 수도가 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1760년대부터 시크교도들이 소요를 일으키던 펀잡에 더 개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티무르 샤 역시 시크 세력을 제압할 수 없었고 1793년 그가 사망하고 6년 후 시크 왕국이 세워지며 펀잡을 상실하였다. 그무렵 카불을 방문한 최초의 서양인인 영국 출신 조지 포스터는 '아시아 제일의, 가장 깨끗한 도시'라 묘사하였다. 19세기 들어 두라니 제국은 티무르 샤의 아들들 간에 내전이 발발하며 쇠퇴하였고, 1809년 영국과 동맹을 맺었음에도 1819년 시크 군의 카슈미르 정복을 막지 못하였다. 1823년 두라니 조는 멸망하고 도스트 무함마드 칸의 바라크자이 왕조가 세워졌다. 무함마드 칸의 친러 정책을 경계한 영국은 1838년 아프간을 침공,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졌다.


2.4. 영국-아프간 전쟁과 근대화[편집]


1839년, 영국군에 의해 30년 전 폐위되었던 두라니 조의 아미르 슈자 샤가 복위되었다. 그러나 외세의 주둔과 슈자 샤의 폭정에 여론은 반발하였다, 특히 영국군의 사기 진작을 목적으로 그 가족들을 데려오자 영구 주둔에 대한 불안감이 생겼다. 거기에 일부 병사들이 현지 여자들을 건드리자 분노가 증폭되었다. 1841년 11월 카불에선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났고, 영국인들은 보이는 대로 살해되었다. 이후 영국군이 대규모의 민간인들과 천천히 후퇴하는 와중에 무함마드 칸의 아들인 와지르 악바르 칸의 바라크자이 군대가 습격하였다. 패배한 영국군은 항복을 제안했으나 와지르 악바르 칸은 페르시아어 (다리어)로는 사격 중지를 외치고 영국 측이 모르는 파슈토어로는 몰살을 지시하였다. 1841년 1월, 아프간 인들과 가족이 된 여성과 어린이들을 제외한 수천여 영국-인도인들은 간다마크 고개에서 얼어죽거나 잔혹히 살해되었다. 다만 악바르 칸의 잘랄라바드 공격은 격퇴되었다.

한편 영국군이 철수한 후 발라 히사르 성채에 웅거하던 슈자 샤가 1842년 4월 사망하자 악바르 샤가 아미르가 되어 바라크자이 왕조를 복구하였다. 다만 4개월 후 간다마크 참사에 대한 복수로 영국군이 돌아와 재차 카불을 점령, 포로들을 돌려받았다. 다만 역시 일대를 통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영국군은 분풀이로 차르 차타 바자르와 발라 히사르 등 시가지를 약탈, 파괴하고 귀환하였다. 이후 1845년 악바르 샤가 요절하자 인도의 유배지에서 돌아온 도스트 무함마드 칸이 복위하였고, 1863년까지 통치하였다. 사후 그 아들들간의 내전을 거쳐 셰르 알리 칸이 즉위했는데, 그 역시 친러로 기울자 영국군은 1878년 말 영국군이 재침하여 카불을 점령하였다. 셰르 알리칸은 마자르 이 샤리프로 도주해 사망하였고, 후계자인 무함마드 야쿱 칸은 영국과 간다마크 조약을 맺어 외교권을 박탈당한 채 그 보호국이 되었다. 이에 카불에서 반영 소요가 일어나 재차 영국인들이 학살당했으나 결국 진압되었고, 야쿱 칸은 그 배후로 지목되어 폐위되었다.

1880년 헤라트 총독 아이유브 칸이 메이완드에서 영국군을 격파하고 칸다하르를 포위하는 등 반격에 나섰으나 영국의 원군에 패하고 이란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영국은 압둘 라흐만 칸을 옹립, 간다마크 조약대로 아프가니스탄을 속국화한 후 발라 히사르를 파괴하고 귀환하였다. 그 후 압둘 라흐만 칸은 21년간 집권하며 내부 반란들을 철저히 진압하였다. 뒤를 이은 하비불라 칸은 18년간 재위하며 카불을 근대화시켰다. 1903년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근대식 고등학교가 설립되었고 전기, 전화, 우편 시스템도 도입되었다. 1차 대전기에 하비불라는 일종의 중립 외교를 추구했고, 1916년까지 오스만-독일 대표단이 카불에 머물기도 하였다.[5] 1919년 후자가 암살된 후 벌어진 계승 분쟁에서 아마눌라 칸이 숙부인 나스룰라 칸을 누르고 아미르가 되었다. 그는 카불의 이드가 사원에서 간다마크 조약의 구속 없이, 아프가니스탄의 자유를 선언하였다.

민주적인 개혁과 자유의 약속에도 내부 결속이 힘들자 아마눌라 칸은 관심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듀런드 라인을 넘어 1차 세계대전암리차르 학살을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던 영국령 인도를 침공한다. 이로써 발발한 3차 전쟁에서 아프간 군은 카이바르 산지에서 전선을 유지하며 나름 선전하였다. 카불은 이번엔 영국군에게 점령되지 않았다. 다만 1차 대전을 겪으며 성장한 영국 공군이 카불의 아미르 궁전에 폭격을 가하는 등 심리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후 아마눌라 칸은 다른 문제들이 쌓여있던 영국과 협상해 완전한 독립을 얻으며 전쟁을 정치적인 승리로 마무리지었다. 아마눌라 칸은 카불 서남쪽 교외에 베르사유를 모방한 궁전 도시 다룰라만를 지어 머물렀다. 아마눌라 칸 역시 근대화에 힘썼으나 1928년 11월 급격한 근대화에 불만을 품은 부족들이 하비불라 칼라카니를 중심으로 내전을 일으켰다. 1929년 1월 아마눌라 칸은 카불을 탈출하였고, 그의 동생 이나야툴라 칸이 항복하며 칼라카니가 카불을 장악하였다.

바라크자이 왕당파는 그 방계 (도스트 무함마드 칸의 동생인 페샤와르 총독 술탄 무함마드 칸의 후예)인 무사히반 가문의 무함마드 나디르 샤를 중심으로 뭉쳐 1929년 10월 카불을 점령하고 칼라카니를 처형하였다. 이후 정식으로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성립되었고, 도로 건설과 카불 대학 (1932년) 및 4만 상비군 설립 등 근대화가 추진되었다. 그러나 1933년 그는 불만을 품은 하자라인 고등학생에게 암살당하였고, 19세 아들 모하마드 자히르 샤가 계승하였다. 40년간 이어진 치세에 카불과 아프가니스탄은 유례를 찾기 힘든 평화와 안정의 시기를 누렸다. 냉전 속에서도 소련, 영국, 독일 등 다양한 국가들의 투자로 근대화가 진척되었다. 그러나 1973년 그는 해외 순방 중 사촌 다우드 칸의 쿠데타로 축출되었고, 뭔가 낯익다 왕정은 폐지되고 공화정이 세워졌다. 다우드 칸은 자히르 샤의 중립 노선 대신 적극적인 반공주의 노선을 취하였고, 이로써 촉발된 이념 대립은 1979년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이어졌다.

소련, 탈레반, 미군의 공격을 받으며 카불은 한 세기에 걸친 근대화 노력이 무색하게 크게 파괴되고 말았다. 현재도 미국탈레반전쟁에서 탈레반이 승리를 거두고, 거기에다 IS에 의한 테러도 일어나서 상황이영 좋지 않다. 소련의 침공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막장의 역사는 아프가니스탄/역사 문서를 참고. 만약 아프가니스탄의 정국과 치안이 안정되고 어느 정도 기능을 할 수 있었다면, 관광지로서의 잠재력이 상당히 풍부한 곳이다. 문명의 십자로라는 별호답게 시장이 발달해 있고 유서 깊은 볼거리들도 많기 때문. 하지만 탈레반이 점령한 지금으로선 그저 먼 미래에 일어날지 말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 되고 말았다.

결국 탈레반이 점령하면서 안 그래도 나빴던 경제는 더욱 추락하였고 인권, 치안 역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악명 높은 산 페드로 술라, 카라카스보다 훨씬 위험한 세계 최악의 치안을 자랑하는 곳이 되었으니 말 다했다.


3. 현황[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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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점령 전의 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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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이 점령하기 전까진 그나마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사람이 거주할 만한 곳이었지만 탈레반이 점령하고 나서는 걸핏하면 테러 범죄로 시끌시끌해지는 매우 불안정한 치안 상태가 되었다.


3.1. 2016년[편집]


  • 7월 23일, IS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었고 하자라족 사망자가 많이 발생되었다.#
  • 9월 5일, 탈레반에 의한 테러로 최소 25명이 사망하고 100명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 10월 12일, 카불의 시아파 사원에 IS의 총기테러가 발생되었다.# 게다가
  • 11월 16일, 다시 정부 고위관계자를 노린 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10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
  • 11월 21일, 시아파를 노린 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30명이 사망하고 85명이 다쳤다.#
  • 12월 22일, 카불에서는 탈레반 조직원 3명이 하원의원의 집에 침입해서 테러를 저지른 것 때문에 5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3.2. 2017년[편집]


  • 1월 10일, 카불의 국회의사당 근처에서 탈레반의 연쇄폭탄공격으로 인해 38명이 사망했다.# 카불에서 일어난 연쇄테러사건으로 아랍에미리트외교관 등 58명이 사망했고 아랍에미리트대사도 부상당했다.#
  • 2월 7일, 법원 건물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어서 12명이 사망했다.#
  • 3월 2일, 카불 시내에서 탈레반에 의한 테러와 총격전이 발생되면서 23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 3월 8일, 카불의 인근 군병원에서 다에쉬에 의한 폭탄, 총격테러가 발생되면서 30여 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다쳤고,# 테러범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 3월 13일, 통근버스를 노린 테러가 발생되었는데 1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 4월 12일, 정부 청사부근에서 테러가 발생하면서 최소 5명이 사망했다.#
  • 5월 31일, 카불의 독일 대사관 근처에서 대형차량폭발이 발생되면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되었다.# 카불에서 일어난 테러로 90명의 사망자가 발생되었는데, 이번 테러의 주범으로 다에쉬가 배후를 자처했다.#
  • 6월 3일, 다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20명이 사망했다.# 결국 카불에서 대형 테러가 일어나자 시민들이 테러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 7월 24일, 서쪽에서 하자라족들을 노린 테러로 30명 이상이 사망했고 이번 테러를 탈레반이 일으켰다고 밝혔다.# 게다가 카불내 이라크 대사관에서 다에쉬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 8월 25일, IS가 수시간에 걸쳐 모스크에 총기난사한 사건으로 최소 20명의 사망자, 50명의 부상자가 발생되었다.#
  • 12월 25일, 카불에서 다에쉬에 의한 테러가 발생되면서 10명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당했다.# 거기에다
  • 12월 28일, 다에쉬에 의한 연쇄폭탄테러가 일어나면서 41명이 사망하고 84명이 부상당했다.#


3.3. 2018년[편집]


  • 1월 21일, 탈레반 연계조직이 카불의 호텔에서 인질극을 벌이면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1월 27일, 카불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서 110명이 부상당하고 17명이 사망했고,# 결국 사망자가 103명으로 늘어나자 아프간 정부는 2018년 1월 28일을 애도의 날로 지정했다.#
  • 1월 29일, 다에쉬에 의한 자폭공격이 발생되면서 군인 5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 2월 24일, 카불에선 다에쉬에 의한 폭탄테러가 일어나면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했다.#
  • 3월 2일, 카불에서는 다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소년 1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부상당했다.# 카불에서는 시아파 거주지역에 폭탄테러가 일어나면서 9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당했다.#
  • 3월 21일, 다에쉬에 의한 폭탄테러로 노루즈[6] 연휴를 즐기고 있던 주민 90여 명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4월 22일, 유권자등록센터밖에서 IS에 의한 폭탄테러로 최소 48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당했다.#
  • 5월 9일, 카불에서는 경찰서를 겨냥한 테러가 일어나서 최소 5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당했다.#
  • 5월 30일, IS가 내무부 청사 인근에서 테러를 일으켜서 경찰관 1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되었다.#
  • 6월 3일, 카불에서는 폭탄테러가 발생되었다.#
  • 9월 5일, 카불의 스포츠클럽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20명이 사망하고 70명이 부상당했다.#
  • 9월 9일, 오토바이를 탄 괴한이 자살 폭탄 테러를 일으키면서 최소 3명이 사망했다.#
  • 12월 11일, 카불 외곽에서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하면서 13명이 사망했고, 탈레반은 자신들이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 12월 24일, 카불에서 일어난 청사습격으로 43명이 사망했다.#


3.4. 2019년[편집]


  • 1월 14일, 카불의 한 외국인 거주지 건물에서 차량 폭탄이 터지면서 4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 3월 21일, 카불에서는 박격포(!)로 주민들을 노린 테러가 발생되면서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당했다.#
  • 6월 2일, 3차례의 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2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당했다.#
  • 7월 1일, 폭탄테러와 총격전으로 최소 6명이 사망하고 110여 명이 부상당했다.#
  • 7월 19일, 카불대 인근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서 6명이 사망하고 27명이 부상당했다.#
  • 8월 7일, 탈레반의 자살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14명이 사망하고 145명이 부상당했다.#
  • 8월 18일, 카불의 한 결혼식장에서 폭탄테러가 발생되면서 최소 68명이 사망하고 182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되었는데, 다에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 9월 7일, 카불에서 테러가 발생되고 미군 사망자가 발생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3.5. 2020년[편집]


  • 3월 6일, 한 추모식 행사장에서 무장괴한이 총기를 난사해 최소 27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 3월 25일, 카불의 시크교 사원에서 괴한들이 총격을 가해 11명이 사망하고 1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 5월 12일, 카불에서 국경없는의사회 관련 병원 건물이 무장 괴한의 수류탄 공격을 받아 민간인 14명 이상이 사망했다.#

  • 6월 12일, 카불의 모스크에서 폭발물이 터져 최소 4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 9월 9일, 카불에서 부통령을 노린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 11월 2일, 카불 대학교 캠퍼스에서 테러가 발생해 최소 19명이 사망했다.#

  • 11월 7일, 전 텔레비전 앵커이자 현 은행원인 아마 시아와시가 차량에 설치된 폭탄으로 인하여 사망했다. 사망자는 시아와시 본인과 직장 동료 2명을 포함한 총 3명이다.#

  • 11월 21일, 카불 주택가에서 로켓 피격 사건이 발생해 최소 8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했다.#

  • 12월 12일, 카불시에서 로켓탄 여러 발이 떨어져 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3.6. 2021년[편집]


  • 5월 8일, 카불의 한 고등학교 인근에서 여고생들을 타깃으로 삼은 폭탄과 박격포 공격으로 최소 55명이 사망하고 150명 가량이 부상당했다.#

  • 6월 2일, 카불에서 버스2대가 테러공격을 받아 폭탄테러에 의한 사망자가 최소 12명이 발생했다.#

  • 탈레반의 공세가 더욱 강화되면서 카불 코앞까지 다다랐다. 미군 측에서도 2021년 6월 기준으로 아프간 정부가 반 년 버티면 잘 버틴 거라는 절망적인 예측이 나오고 있다.

  • 카불에서 국방장관을 노린 테러가 발생했다.#

  • 8월 12일, 결국 카불 코앞(약 150km)에 있는 가즈니 주의 주도 가즈니가 탈레반에게 함락당했다.

  • 8월 13일, 여러 대도시 및 주도가 탈레반한테 함락되는 와중에 바로 인접한 로가르 주의 주도 풀리 알람까지 함락당했다. 로가르 주 경계만 넘으면 바로 카불이고, 풀리 알람은 카불로부터 불과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걸어서 하루, 차량으로 이동하면 길어야 1시간 거리다.

  • 8월 14일, 카불 남쪽 11km까지 진격했다.#

  • 8월 15일 카불 외곽 지역들이 차례차례 탈레반에 점령당하고, 마침내 탈레반이 카불 시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바부르의 묘지 겸 정원인 바그 에 바부르에서 탈레반 대원이 목격될 정도. 결국 8월 15일 탈레반의 지도자가 아프간 대통령 궁에 입성, 사실상 카불이 함락되었다. #


  • 8월 30일, 탈레반이 카불 공항에 진입해 시설을 접수했다. 9월 1일부터는 탈레반이 항공교통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탈레반은 전직 항공 업계 종사자들을 긁어모아 카불 공항을 간신히 운영하고 있는 실정[7]이다. 결국 카타르터키에 공항 운영과 관련된 도움을 요청하여, 카타르 측 기술진이 카불 공항에 들어왔다. 거의 2주 간 엑소더스급 대탈출이 벌어졌던 곳이라 시설물 파손이 심각해 공항 운영이 정상화되려면 수 개월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 10월 3일, 카불의 모스크앞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해 8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다.#

  • 11월 18일, 카불에서 이슬람국가 호라산에 의한 연쇄 폭탄 공격이 발생해 10명 안팎의 민간인 사상자가 생겼다.#

  • 12월 11일, 카불에서 다에쉬에 의한 버스겨냥 연쇄 폭탄테러가 일어나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 12월 21일, 카불에서 동결된 해외자산을 풀어달라는 시위가 일어났다.#


3.7. 2022년[편집]


  • 2월 18일, 카불의 검문소에서 탈레반 대원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의사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

  • 4월 19일, 카불에서 연쇄폭탄테러가 일어났다.#

  • 4월 29일, 카불시 서부의 모스크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 9월 5일, 카불시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러시아 외교관 2명을 포함한 6명이 사망했다.#

  • 9월 23일, 카불시의 모스크 인근에서 폭탄테러가 일어나 7명이 사망하고 41명이 부상당했다.#

  • 12월 12일, 카불시의 비즈니스 호텔에서 무장괴한들이 침입해 총기테러가 일어났다.#

3.8. 2023년[편집]



4. 여담[편집]


2014년에 이 곳에서는 아프간 최초의 놀이공원이 개장되었다.# 카불 동물원에는 중국이 2002년에 기증한 칸지르라는 돼지가 유일하게 카불 동물원에 전시되어 있다.##

심슨 가족에서는 스프링필드와 자매도시였으나 시즌 15 에피소드 8에서 막장이라는 이유로 관계를 끊었다. 카불 쪽에서.

스펙 옵스: 더 라인에서는 이곳에서 존 콘래드 대령이 부상당해서 움직이기가 어려운 마틴 워커 대위를 헬기까지 반 마일을 끌고 가서 구해줬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곳에서의 임무를 크게 실패한 콘래드 대령은 어떻게든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두바이 구출 작전에 자원하지만 결국...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워 썬더에서는 공중전 전용맵으로 등장한다. 맵 이름은 아프가니스탄. 맵 중앙에는 바그람 공군기지[8]가 있고 바그람 공군기지 중심으로 남서쪽, 북동쪽으로 비행장이 있다. 남서쪽 비행장이 카불과 가깝다. 맵이 작다보니 직진만 하면 바로 적이랑 만난다.그래서 개싸움이 항상 벌어진다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고지 지중해성 기후(Dsa)를 지니고 있으며, 한랭 반건조 기후(BSk)와 점이지대에 있다.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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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라크 국기.svg 이라크
파일:사우디아라비아 국기.svg 사우디아라비아
파일:요르단 국기.svg 요르단
파일:바그다드시 휘장.png 바그다드
파일:리야드 시기.png 리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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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제르바이잔 국기.svg 아제르바이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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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예멘 국기.svg 예멘
파일:바쿠 시 휘장.png 바쿠
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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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스라엘 국기.svg 이스라엘
파일:이란 국기.svg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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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텔아비브.svg 텔아비브
파일:테헤란 인장.png 테헤란
파일:예레반 시 휘장.png 예레반

파일:쿠웨이트 국기.svg 쿠웨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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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키프로스 국기.svg 키프로스
쿠웨이트
파일:Seal_of_Tbilisi,_Georgia.svg 트빌리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cosia_city_fl_n7160.gif 니코시아

파일:오만 국기.svg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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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랍에미리트 국기.svg 아랍에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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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mblem_of_Damascus.svg 다마스쿠스
두바이

파일:팔레스타인 국기.svg 팔레스타인
파일:압하지야 국기.svg 압하지야
파일:남오세티야 국기.svg 남오세티야
가자 지구
파일:Gerb_Sukhum.png 수후미
츠힌발리

파일:북키프로스 국기.svg 북키프로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icosia_city_fl_n7160.gif 레프코샤
중앙아시아
파일:우즈베키스탄 국기.svg 우즈베키스탄
파일:카자흐스탄 국기.svg 카자흐스탄
파일:키르기스스탄 국기.svg 키르기스스탄
파일:타슈켄트시 휘장.jpg 타슈켄트
알마티
파일:Gerb_Bishkek.png 비슈케크

파일:타지키스탄 국기.svg 타지키스탄
파일:투르크메니스탄 국기.svg 투르크메니스탄
파일:Coat_of_Arms_of_Dushanbe.png 두샨베
파일:Ashgabat_(seal).svg 아시가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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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분 1초에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국가가 나온다.[2] 그 때의 카불은 그러한 도시들과는 비교가 되기 힘들만한 중소 도시였다.[3] '계빈'은 카슈미르를 이르는 말이라는 설도 있다.[4] 후마윤은 그의 배신 행각이 드러났음에도 바부르의 유지에 따라 동생을 죽이지 않았다.[5] 이후로는 영국 측에 베르사유 조약 참석을 요구했으나, 참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6] 페르시아력(이란, 아프간 등이 사용하는 태양력)의 새해인 3월 21일(춘분)[7] 물론, 민간인들의 정상 출입국이 되는 것은 아니고, 탈레반 측의 극히 미미한 항공 수요만을 처리하고 있는 실정이다.[8] Bagram AF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