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축국 (문단 편집) === 한국 ===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신라]] [[화랑]]들이 축국을 많이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축국의 규칙이 어떠했는지는 중국과 일본 문헌에 의존해야되지만 이 당시에는 그래서인지 축국과 관련된 유명 일화로 [[김유신]]이 축국 놀이 도중 일부러 [[김춘추]]의 옷자락을 실수인 척 밟아 찢은 뒤, 자신의 여동생 문희(훗날의 [[문명왕후]])에게 [[바느질]]하게 하여 둘을 이어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 당나라 [[당서]]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을 잘했다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사실 [[제기차기]]와 [[족구]]의 조상이 이 놀이라고 한다. 규칙 중 하나가 서로에게 공을 차면서 발로 다시 차 되돌려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 원바운드는?[* 축국은 공을 발로 다루어 떨어트리지 않고 주고 받는 재간을 겨루는 경기이므로 당연히 원바운드는 인정되지 않는다. 뭣보다 축국에서 사용하던 공은 현대의 공처럼 공기를 땡땡하게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가죽 껍질 안에 깃털따위를 집어넣은 것이었기에 땅이나 벽에 부딪히면 힘차게 튕겨오르는 것이 아니라 푹 하고 힘을 잃고 구르게 된다. 즉 도구의 특징상 원 바운드 패스가 성립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기 스타일 자체도 공을 빠르고 강하게 '''뻥!''' 차서 날리는 축구와 달리 밀듯이, 또는 걷어올리듯이 차서 높은 궤도로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장대위의 망이나 동료 선수의 발 앞)에 정확하게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바운드가 인정되는 족구보다는 공중에서 공을 차야 하는 [[세팍타크로]]에 더 가깝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사실 공의 재질 자체가 강하고 빠르게 찰 수 있는 축구공이나 족구공, 세팍타크로 공과는 달리 강하고 빠르게 차기는 불리한 재질이라 공의 움직임이든 선수들의 움직임이든 현대 스포츠와 비교하면 느릿느릿하고 우아한(?) 편이다.]~~ 명청대에 축국을 하는 전통이 쇠락한 중국이나 개인기예로 바뀐 일본과는 달리 조선시대에 와서도 [[축국]]이 [[씨름]], [[격구]], 수박과 함께 인기 스포츠로 손꼽혔고, 겨울철이 되면 축국으로 한가로움을 달래는 것이 세시풍습으로 남았다. 당시 축국은 [[농구]] 비슷하게 펼쳐놓은 장대위의 망속으로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는 발로하는 농구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다가 [[구한말]]에 서양식 축구가 들어오면서 점차적으로 서양식 축구로 바뀌었으나, 축구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조선인들은 축구를 축국처럼 플레이했다. 축국은 높이 차는 사람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놀이였는데, 축구할 때도 높이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https://sports.news.naver.com/kfootball/vod/index.nhn?firstVid701059=&id=701059&autoPlay=true&category=footballlesson&listType=total|전용 신발]]도 있었던 모양인데, 현대 축구화처럼 스터드도 달려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