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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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축국과 축구
3. 역사
3.1. 중국
3.2. 한국
3.3. 일본
4. 미디어
4.1. 소설
4.2. 드라마
4.3. 영화
4.4. 게임


1. 개요[편집]


蹴鞠 / Cuju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한 공차기 놀이이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지며, 격구와 마찬가지로 군사훈련용 놀이로 쓰이기도 했다. 단순히 공을 차는 것이 아니라, 공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고도의 기술들이 동원되었으므로 무예를 익히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2. 축국과 축구[편집]


축국은 FIFA에선 가장 오래된 형태의 축구(와 유사한 놀이)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현대 축구, 곧 풋볼의 종주국은 당연히 영국이며, 그냥 FIFA가 중국 시장에 꼬리를 흔드는 거라며 일축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야구의 종주국이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원에서 영국크리켓을 지목할 수 있듯이,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축국을 축구의 기원으로 지목하는 설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송시대의 축국 규칙을 보면, ㄱ. 각 팀 10명의 선수가 ㄴ. 공을 상대 골문에 차넣어서 ㄷ. 승패를 겨눈다는 점에서 단순 '공차기'라 보긴 어려우며, 거의 누구나 축구를 연상할 수 있다. 축국이 단지 현태가 축구와 비슷한 별개의 수렴진화 스포츠인지, 혹은 어떤 경로로든 영국의 축구와 역사적 연결이 있는지는 더 명확히 설명되어야겠으나, 축국이 '돈에 눈 먼 FIFA가 단지 공차기라는 이유로 지목한 것'이라 보는 건 너무 단순한 결론이며, 축구와의 유사점에 공감한 것도, 중국 시장을 의식한 것도 맞을 것이다.

북송시대에는 매년 10월 12일에 궁정에서 축국을 하였는데 경기법·인원·복장·승패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① 경기법-중앙에 세원진 구문의 양쪽에 두 팀이 마주 보고 선다. 먼저 공을 잡은 팀이 패스를 하여 구문을 통과, 상대의 진영에 차 넣는다. 상대는 그 공을 받아 구문을 통과시켜 다시 상대의 진영으로 차 보내는 것을 계속한다. 경기를 하는 동안에는 음악이 연주되었다.

② 인원-10여 명

③ 복장-좌군은 홍금의, 우군은 청금의를 입으며 주장은 매듭이 긴 幞頭를, 나머지는 짧은 매듭의 복두를 착용한다.

④ 승패규정-승자에게는 銀碗과 錦布를 하사하고 패자의 주장은 鞭打를 당하며 수모를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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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편집]



3.1. 중국[편집]


축국의 발상지로, 기록 자체는 한나라 등에도 보이나 특히 유행한건 당~송 시기쯤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송태조 조광윤이나 송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 수호전의 악역 고구가 축국의 달인으로 유명했다. 고구는 원앙차기를 비롯한 화려한 볼키핑 스킬로 황제의 눈에 들어 태위까지 승진한다. 그 외 정위 등 다른 이름도 전해진다.

축국은 점점 시스템이 체계화되면서 북송 시기엔 전문적으로 축국을 하는 축국팀도 있을 정도였는데, 이런 단체를 '원사'라 했고 원사의 회원을 '원우'라고 했다. 하지만 북방민족의 침입과 유희로 즐기는 축국은 탄압해야 한다는 변질된 유교 사상 등으로 축국 금지령이 여러 차례 내려지면서 축국은 쇠락했다. 명나라 중후기가 되면은 축국은 여자들의 기예로 여겨지던 수준이었고, 청나라때는 이마저도 금지되어서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다.


3.2. 한국[편집]


삼국사기 등에 따르면 신라 화랑들이 축국을 많이 즐겼다고 한다. 이 당시 축국의 규칙이 어떠했는지는 중국과 일본 문헌에 의존해야되지만 이 당시에는 그래서인지 축국과 관련된 유명 일화로 김유신이 축국 놀이 도중 일부러 김춘추의 옷자락을 실수인 척 밟아 찢은 뒤, 자신의 여동생 문희(훗날의 문명왕후)에게 바느질하게 하여 둘을 이어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또 당나라 당서에 보면 고구려 사람들이 축국을 잘했다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사실 제기차기족구의 조상이 이 놀이라고 한다. 규칙 중 하나가 서로에게 공을 차면서 발로 다시 차 되돌려보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럼 원바운드는?[1]

명청대에 축국을 하는 전통이 쇠락한 중국이나 개인기예로 바뀐 일본과는 달리 조선시대에 와서도 축국씨름, 격구, 수박과 함께 인기 스포츠로 손꼽혔고, 겨울철이 되면 축국으로 한가로움을 달래는 것이 세시풍습으로 남았다. 당시 축국은 농구 비슷하게 펼쳐놓은 장대위의 망속으로 공을 넣으면 점수를 얻는 발로하는 농구에 더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다가 구한말에 서양식 축구가 들어오면서 점차적으로 서양식 축구로 바뀌었으나, 축구가 들어온 초창기에는 조선인들은 축구를 축국처럼 플레이했다. 축국은 높이 차는 사람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놀이였는데, 축구할 때도 높이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전용 신발도 있었던 모양인데, 현대 축구화처럼 스터드도 달려 있다.


3.3. 일본[편집]


일본에서는 축국이 상당히 고전적인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일본의 공가 귀족들이나 무가에서도 축국을 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가업으로서 전승되면서 현대까지 남게 된 것이다. 다만, 게임 형식은 없어지고 일종의 교양으로 주로 공을 튀기면서 기예를 보이는 형태로 바뀌었다. 프리스타일 축구?[2]


4. 미디어[편집]


한국 사극에서 축국 장면을 묘사하는 경우 편의상 현대 축구와 매우 유사한 형태의 경기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4.1. 소설[편집]


소설 《수호전》의 고구는 축국의 달인이었다. 그 때문에 휘종에게 신임을 얻어 길거리 양아치에서 태위[3]가 되지만 간신배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4.2. 드라마[편집]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한 SBS 대하사극 <연개소문>에서도 축국이 나온다. 다만 공 차는 CG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김춘추와 문희를 이어주기 위해 축국을 차는 장면이 나왔는데, 김춘추를 연기한 배우 최수종은 실제로도 축구실력이 상당한 축구광으로 작중 화려한 축구실력을 뽐냈다.

2015년에 방영한 MBC 창사 54주년 UHD 특별기획 <퐁당퐁당 LOVE>의 주인공 이도도 축국을 좋아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배역을 맡은 배우 윤두준 자체가 워낙 축구매니아인지라, 운동은커녕 건강관리조차 젬병인 현실 속 세종대왕과는 전혀 다르게, 잘 어울리게 묘사됐다.

2021년에 공개한 중국 텐센트의 웹드라마 <장가행> 제1화에서의 주 내용은 당나라 대표 대 유목민족 대표의 축국 경기이다. 가죽 공이 아니라 등나무로 만든 세팍타크로 공을 쓰며, 다른 선수 등을 밟고 뛰거나 팔다리를 잡아채는 등 반칙도 없고 거의 날아다니며 경기를 한다. 극중에서도 말로만 축국 대결이고 서로의 무술, 전투력 대결로 여긴다.

2022년에 방영한 일본 NHK 대하드라마 <가마쿠라도노의 13인> 제1화에서는 가마쿠라 막부 초대 정이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오오이즈미 요 분)의 정실인 호조 마사코(코이케 에이코 분)가 여동생 미이(미야자와 에마 분)와 축국을 하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리토모에게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요리토모가 현란한 트래핑 실력을 뽑내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후로도 교토로 올라갈 사람들이 교토의 공가 귀족들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기 위해 축국을 연습하는 장면이나, 요리토모의 후계자 미나모토노 요리이에 등이 교토에서 선생님을 초빙해 축국을 배우는 장면 등이 나온다.


4.3. 영화[편집]


2008년, 2009년에 개봉한 중국 영화 <적벽대전 시리즈>에서 조조군이 축국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리지널 캐릭터 손숙재는 일개 병사였다가 축국 실력만으로 천부장으로 승진해서 스파이로 잠입한 손상향과 우정을 나누게 된다.


4.4. 게임[편집]


'전국무쌍 시리즈'의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무기가 바로 이 축국이다.

'오다 노부나의 야망'에서도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특기로 나온다. 독수리 슛을 날리기도...

프롬 소프트웨어의 게임 세키로: 섀도우 다이 트와이스지역 중 하나인 기원의 궁에서는 축국을 하는 오카미 여인무사가 등장한다. 일종의 저격수 역할을 하는데 인식 범위가 넓은 데다 점프해서 공을 차는 공격이 데미지가 크므로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적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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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축국은 공을 발로 다루어 떨어트리지 않고 주고 받는 재간을 겨루는 경기이므로 당연히 원바운드는 인정되지 않는다. 뭣보다 축국에서 사용하던 공은 현대의 공처럼 공기를 땡땡하게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가죽 껍질 안에 깃털따위를 집어넣은 것이었기에 땅이나 벽에 부딪히면 힘차게 튕겨오르는 것이 아니라 푹 하고 힘을 잃고 구르게 된다. 즉 도구의 특징상 원 바운드 패스가 성립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기 스타일 자체도 공을 빠르고 강하게 뻥! 차서 날리는 축구와 달리 밀듯이, 또는 걷어올리듯이 차서 높은 궤도로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장대위의 망이나 동료 선수의 발 앞)에 정확하게 떨어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바운드가 인정되는 족구보다는 공중에서 공을 차야 하는 세팍타크로에 더 가깝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사실 공의 재질 자체가 강하고 빠르게 찰 수 있는 축구공이나 족구공, 세팍타크로 공과는 달리 강하고 빠르게 차기는 불리한 재질이라 공의 움직임이든 선수들의 움직임이든 현대 스포츠와 비교하면 느릿느릿하고 우아한(?) 편이다.[2] 사실 체계화되기 전 초기 축국이 프리스타일에 가까웠다고 추론하는 의견도 있긴 하다.[3] 현재의 국방부 장관급 위치. 다만 항목에도 있듯 명예직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