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종건 (문단 편집) == 생애 == [[경기도]] [[수원시|수원군]] 안용면 평리[* 현 [[수원시]] [[권선구]] [[평동(수원)|평동]].]에서 [[아버지]] 최학배(1900~1962)와 [[어머니]] 이동대 사이에서 8남매 중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인]]인 아버지는 나무장수(임업)를 하다가 1926년 상점 '대성상회(大成商會)'[* 그래서 일각에선 이 시점을 적산을 받은 1953년 대신 [[SK]] 창립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있다.]를 세웠으며, 볏집과 잠업으로도 확장, 이후 떼돈을 벌었다.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 공향면 해창리(현 [[화성시]] [[팔탄면]]). 하지만 아버지 대부터 자식의 교육을 위해서 수원군 안용면으로 이사하였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경성공립직업학교]] [[기계|기계과]]를 [[졸업]]하고 [[일본인]]이 경영하던 [[SK네트웍스|선경직물공장]]에 견습기사로 입사한 것은 [[8.15 광복]] 직전이었다. [[졸업]]과 함께 3급 기계정비사 자격을 획득한 그는 어디를 가거나 취직은 문제없는 조건이었다. 그랬던 그가 선경직물공장에 입사한 것은 그의 [[본적|본향]]인 [[수원시]]에 소재하고 있다는 이유만은 아니었다. 직물공장이 들어서기까지 아버지의 물심양면적 지원이 있었던 것도 큰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8.15 광복]] 직후 ‘선경치안대’를 조직하고, 다니던 [[적산]]회사인 ‘선경직물공장’을 1953년 인수해 창업했다. 선경직물을 법인으로 세울 당시 회사 이름인 ‘선경’이 과거 일본회사이던 시절 ‘선경직물공장’의 이름을[* 1939년 설립됐으며, 재조선 일본인 기업 선만주단(鮮満綢緞)과 일본 교토의 교토직물(京都織物)의 머릿글자를 합친 것이다. 참고로 일본 교토직물은 시부사와 재벌 계열사였으며 1968년 경영 악화로 파산해서 없어졌다고 한다.[[https://tobira.hatenadiary.jp/entry/20090911/1252634115|#]]] 그대로 따왔기 때문에 [[왜색]]이 있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선경 자체가 일본어스러운 어감은 아닌데다 기존 사업 인지도도 생각해서인지 그대로 써서 오늘날 [[SK|SK그룹]]의 모태기업인 선경직물을 창립하고 사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뒤 사업영역을 [[직물]] 장사에서 [[무역]], [[정유]][[화학]] 등으로 넓히며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폐암]]으로 투병 생활을 하다가 결국 [[1973년]] [[11월 15일]] 지병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향년]] 47세. 이후 회사는 동생인 [[최종현]]이 이어받게 된다. 공교롭게도 동생인 최종현 회장도 폐암으로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이른 나이에 사망한 최종건 회장과는 달리 부인인 노순애 여사는 장수해서, 남편인 최종건 창업주가 사망하고도 43년 후인 2016년에 사망했다. 향년 88세. 하지만 장남이자 [[범SK가|SK가문]]의 장손인 최윤원도 폐암으로 49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먼저 떠나보내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