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일언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B베어스 최일언 선수시절.jpg|height=700]]}}} || ||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width=35]] '''[[OB 베어스]] 선수시절'''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최일언 LG시절 팬북.png|height=385]]}}} || || [[파일:LG 트윈스 엠블럼(1990~2005).svg|width=35]] '''[[LG 트윈스]] 선수시절''' [* 딱 1시즌 있었던만큼 정말 찾기 힘든 [[LG 트윈스]] 선수시절 사진. [[http://lgtwinsfanbook.com/1990/|출처]] [br] 왼쪽 사진은 [[김용수]], 오른쪽 위 사진은 [[정삼흠]], 그 밑의 사진이 최일언이다.] || 1984년 [[니우라 히사오|김일융]]을 놓쳐 아쉬움이 컸던 [[OB 베어스]]에 입단했다. 당시 [[OB 베어스|OB]] 감독이었던 [[김성근]]은 [[재일교포]] 출신에다가 자신과 같은 [[일본]] [[사회인야구]] 출신이었던 최일언을 매우 편애했다. 최일언이 입단했을 때 [[김성근]]은 "최일언은 [[일본]] '''[[사회인야구]]에서 정통파로 피칭을 배운 선수'''다."라고 [[https://news.joins.com/article/1758752|치켜세웠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일본의 '사회인 야구'는 한국의 '실업야구'에 해당한다. 그 유명한 [[노모 히데오]]도 1989년 프로 입단 전에는 사회인야구에서 에이스로 활약, 서울올림픽에 출전한 바 있다. 기대대로 입단 첫 해부터 167.2이닝 9승을 올리며 활약했다. 특히 입단 3년차였던 1986년에는 19승 4패 방어율 1.58로 데뷔 후 최고 성적을 올렸다. 이때 승률 타이틀을 수상하면서 [[선동열]]의 4관왕을 저지했다. 또한 단 5명만이 가지고 있는([[박철순]], [[김시진]], [[선동열]],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최일언) 200이닝 이상 피안타율 1할의 대기록을 달성하기도 한다. 또한 시즌 피홈런은 단 2개만을 기록하며, 절정의 구위를 보여 주었다. 당시 [[해태 타이거즈|해태]]를 상대로 엄청나게 강했는데,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등판한 경기에서 13연승을 거두며 [[해태 타이거즈|해태]] 킬러로 활약하기도 했다. ~~거기에 [[OB 베어스|OB]]에 [[선동열]] 킬러 [[김진욱(1960)|김진욱]]이 있는 건 덤~~ 그 이유로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자들이 몸쪽 [[패스트볼]]에 약한 타격폼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몸쪽 [[패스트볼]]에 바깥쪽으로 빠지는 [[커브볼]]을 던지면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자들이 맥을 못췄다고 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김광현]]급.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해태]]와의 1987년 2승 1패로 앞서있던 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연장 끝내기 폭투로 패전했고, 이보다 앞선 1차전에서도 대량 실점하며 패했다. 결국 플레이오프의 승자는 [[해태 타이거즈|해태]]가 되었고, 그 기세를 몰아 [[삼성 라이온즈|삼성]]과의 한국시리즈도 4연승 싹쓸이로 우승했다. 투구 속도보다는 변화구 구사 능력이 뛰어났다. 사실상 한국프로야구에서 [[포크볼]]을 본격적으로 선보인 첫 투수였고,[* 앞서 말한 고등학교 3학년 때 [[포크볼]]을 처음 배웠다고 한다. 그 전이었던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고시엔]] 때는 커브를 주로 던졌다고.] 상당한 각의 슬로우 커브, [[체인지업]], [[스크류볼|싱커]]도 구사하였다. 전성기였던 1986 시즌에는 원하는 대로 공을 유도할 정도로 [[싱커]] 제구가 잘 됐다고 한다. 훗날 [[SK 와이번스]] 투수코치 시절 [[송은범]]에게 느린 커브를 전수하기도 했다. 1989시즌 최일언은 급격한 노쇠화를 겪기 시작했고 시즌이 끝나고 [[김상호(1965)|김상호]]를 상대로 [[LG 트윈스]]에 [[트레이드]]되었다. 이것은 [[LG 트윈스]]에 있어서 [[트레이드]] 잔혹사의 서막이었다. [[김상호(1965)|김상호]]는 포지션을 외야수로 바꾸며 [[OB 베어스]] 타선에 힘을 불어넣었고[* [[1995년 한국시리즈]] 우승과 홈런왕, MVP, 골든 글러브를 차지했다. 이는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팀에서 배출한 최초로 배출한 홈런왕이었다.], 최일언은 개막전 선발투수가 되며 LG 트윈스의 이름을 달고 첫 선발투수가 되었으나 이해 단 3승에 그치며 1990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그나마 LG 시절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우승 반지는 껴보게 되었다. 이후 1991 시즌을 앞두고 [[삼성 라이온즈|삼성]] 감독으로 부임해서 각 팀의 베테랑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대거 영입하고 있던 [[김성근]]에 의해 [[삼성 라이온즈|삼성]]으로 영입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삼성]]에서 잠시 활약했지만, 1992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