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운산 (문단 편집) == 사후 == 최운산의 행적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기록은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형 [[최진동]]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그는 서훈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다 1977년 최운산의 부인 김성녀 씨가 진정서를 제출했고, 국가보훈처는 이를 심사한 뒤 최운산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국가보훈처는 2008년 [[최문무]]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에 대해 최운산의 유족은 '최문무'는 최운산의 또다른 이름이었다며 국가보훈처가 잘못 서훈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동일인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최문무]] 문서 참조. 최운산의 손녀 최성주 씨는 현재 [[http://www.hddy.or.kr/bbs/board.php?bo_table=introduce_02&wr_id=30|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은 역사학자들이 바로잡아주기를 기다렸으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공적이 완전히 인정받을 때까지 투쟁할 것임을 밝혔다.[[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606|#]] 2020년 6월 6일 최성주씨가 할아버지의 공적을 다룬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 출간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