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용덕 (문단 편집) === 국민혁명군 항공대 === 1926년 [[북벌]]에 나선 [[국민혁명군]]이 상하이와 난징을 점령할 때 손전방([[쑨촨팡]]) 군벌의 항공대 소속이었던 최용덕, 권기옥 등은 당시 국민혁명군 동로군 참모였던 [[김홍일(군인)|김홍일]] 소령과 접촉하여 투항하였다. 1926년 국민혁명군은 상해와 남창(南昌) 등지에서 군벌들의 항공대를 흡수하여 항공대를 구성하였다. 1927년 3월 이를 근간으로 국민혁명군 총사령부항공처 항공총대(航空總隊)를 편성함과 동시에 손전방 군벌의 항공사령부를 수용하여 동로군항공사령부(東路軍航空司令部)를 설립했다. 권기옥 등과 함께 이곳에서 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28년 초 수상비행대(水上飛行隊) 부대장에 임명되어 북벌에 참여했다. 이후 최용덕은 중화민국 공군에 헌신하며 [[2차 장계전쟁]], [[중원대전]] 중에 활약했고 1930년 10월 국민혁명군 항공 제4대 부대장을 역임하였으며 1931년 [[1차 양광사변]]이 발생하자 광저우 국민정부를 지지했으나 1931년 12월 4차 전국대표대회로 난징 국민정부와 광저우 국민정부가 통합되면서 난징 항공대 소속으로 [[제1차 상하이 사변]]에 투입되었다. 이후 1934년 중앙항공학교 교육처 교관으로 근무하면서 후진을 양성했고, 1935년 남창총참장(南昌總站長), 1930년대 후반 성도비행대(成都飛行隊) 창장(廠長) 및 중국 공군 상교 [* 육군 2성장군 대우] 으로 활약하였다. 이처럼 최용덕은 중국 공군으로 일제와 전투에 직접 참전하여 맞서 싸웠고, 중국 공군의 확장과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이후 공군지휘부 참모장, 공군기지사령관 겸 공군기지학교장직을 수행하였으며, 중국 국민혁명군의 육군대학을 졸업한 한국인 3인 (김홍일 육군소장, [[박시창]] 육군상교, 최용덕 공군 상교 - 중국국 계급 기준) 중 한 명으로 김홍일, [[박시창]] 등보다 1년 앞서 졸업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