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룡해 (문단 편집) === 사로청 비서 시절과 숙청 === 젊어서는 청년 문제를 전담하였는데, 1986년 12월 조선로동당 6기 12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출, 1980년대에는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비서직을 맡았으며, 청년동맹 비서 자격으로 최고인민회의 8기 1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에 선출되었다. 1989년 제13회 세계청년학생축전이 평양에서 열리면서 축전 조선준비위원회장을 맡아 개회사와 폐회사를 하기도 했다. 1990년 5월,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93년 1월, [[리계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3년 4월 27일, 사로청을 잘 지도했다고 [[공화국영웅]] 칭호 및 금별메달, 국기훈장 제1급을 받기도 했다. 무려 최현의 아들이라는 빽을 믿고 조선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 비서로 일하던 1990년대 후반 대동강 주체사상탑 근처 청년중앙회관 가라오케장에서 산하 예술단 여성들과 부화방탕하게 놀면서 청년동맹을 자신의 소왕국으로 만들면서 세도를 부렸다. 이 때문에 미운 시선을 많이 받고 있던 찰나에 1997년에 청년동맹에 중앙당 검열이 들어왔음에도 청년동맹 간부들을 최룡해의 위세만 믿고 수사에 비협조적으로 굴면서 뻗대었고 가뜩이나 고난의 행군으로 체제가 위태로운 상태에서 안하무인으로 구는 최룡해의 태도에 대노한 김정일이 청년동맹을 죽탕쳐놓으라고 지시하면서 청년동맹의 주요 간부들이 몰살당하고 최룡해 본인도 2개월간 가택연금당한 후 출당 처분을 받고 1998년 1월, [[리일환]]에게 비서 자리를 내놓고 혁명화를 당하게 된다. 중앙당에서 일했던 탈북자 노희창 씨의 증언에 의하면 [[자강도]] [[랑림군]]으로 좌천됐다고 한다. 원래는 처형까지 당할 뻔했지만 성분도 워낙 좋았으며 친분이 있던 [[장성택]]의 간곡한 요청으로 간신히 처형을 면하고 지방 산골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며 칼을 갈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후지모토 겐지]]의 <김정일의 요리사> 등의 문헌에서 이 때의 일로 처형을 당했다고 알려졌는데, 이후 정보가 수정되었다. 그런데 한가지 재밌는 사실은 최룡해는 원래 고질적인 당뇨병으로 인해서 건강이 워낙 좋지 않았는데, 그런 와중에서 자강도 랑림군으로 떨어져 일반 노동자로 일하면서 콩밥만 먹고 노동을 하면서 이때 건강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한다.(...) 최근 방영된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게스트 최정길 씨의 증언에 따르면, 혁명화 처분을 받게 된 이유는 김정일이 지시한 병원 3동을 짓는데에 쓰는 돈 일부분을 사적으로 횡령하여 사용했기 때문이라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