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체르노빌(드라마)/등장인물 (문단 편집) === 바부시카 (할머니) === 배우는 준 왓슨. 참고로 '바부시카(бабушка)'는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그냥 '할머니'라는 뜻의 일반명사이다. 드라마에서도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딱 한 장면 등장하는 인물이지만, 소련인들의 민족성을 길지 않은 대사로 함축해 표현하여 화제가 된 캐릭터이다. 외양간에서 소 젖을 짜고 있는데 젊은 군인 한 명[* 드라마 설정에는 27세로 나온다.][* 근데 군인의 계급장을 보면 준위 계급인데, 중년급의 고참 부사관들에서만 진급시켰던 당시 소련군의 준사관 진급체계를 생각해 본다면 27세에 준위가 되는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이 들어와 전원 소개령이 떨어졌다며 끌고 가려 하자,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 할머니: 내가 몇 살인 줄 아시오? > > 군인: 모르겠습니다. 많으시겠죠. > > 할머니: 난 82살이오. 평생 여기서 살아왔지. 이 집에서. 이 곳에서. 안전에 대해 뭘 신경쓰란 말이오? > > 군인: 저도 임무가 있어요. 괜히 곤란하게 만들지 마시죠. > > 할머니: 곤란이라. 흠. 댁처럼 총 들고 여기 온 군인이 처음이 아니라오. 내가 12살 때, [[러시아 혁명|혁명]]이 터졌지. [[짜르]]의 병사들. 그 다음엔 [[볼셰비키]]들. 댁같이 젊은 친구들이 줄줄이 왔지. 그들도 우리더러 떠나라고 했어. '''안 떠났어요.''' 그 다음에는 [[스탈린]]이 등장했고, 그의 [[우크라이나 대기근|대기근]]도 닥쳐왔지. [[우크라이나 대기근|홀로도모르(Голодомор)]] 말이오. 우리 부모님은 그때 돌아가셨소. 내 자매들 중 두 명도 죽었지. 그들은 남은 우리 가족에게 떠나라고 했소. '''안 떠났어요.''' 그 다음에는 [[독소전쟁|대전]]이었지. [[독일 국방군|독일 청년들]]. [[소련군|러시아 청년들]]. 더 많은 군인들. 더 심한 기근. 더 많은 시체들. 내 오빠, 남동생들은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오. 그래도 난 여기 남았다오. 그리고 지금도 여기 있고. 그런데 나더러 지금 떠나야 한다고? [[방사선|전혀 볼 수 없는 무언가]] 때문에? '''안 떠날 거요.''' 결국 군인이 소를 총으로 쏴 죽이고 나서야 체념한 듯 군인을 따라간다. 체르노빌 사태는 그녀가 겪어온 숱한 고난들과도 궤를 달리하는 동시에 그런 고난 속에서 지켜온 마지막 삶의 터전조차 앗아간다는 비극성을 드러내는 장면. 드라마에는 상징적으로 한 명으로 함축되어 나오지만, 실제 체르노빌 인근의 많은 우크라이나 할머니들이 드라마처럼 강제 소개를 거부했다. 약 1,200명 정도가 거부했다고 하는데, 이들 상당수는 1차로 강제 소개되었다가 사태가 조금 진정되자 고향집으로 돌아와 지금까지도 수백 명이 체르노빌 인근에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5/oct/29/babushkas-of-chernobyl-film-nuclear-exclusion-zone|살고 있다]]. 2010년대 초에 이들 할머니들을 취재한 미국의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 홀리 모리스(Holly Morris)는 [[https://youtu.be/93hbqLBp_HI|TED Talk]]를 하고 2015년에 〈체르노빌의 할머니들(The Babushkas of Chernoby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실제 체르노빌의 할머니들이 계속 그곳에 남아 살고 있는 이유를 이야기한 내용들이 드라마에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