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자 (문단 편집) == 천자인 인물 == * 일부 [[한국사]] 왕조의 군주들 * [[고구려/왕사|고구려의 군주]][* “주몽이 … 추격해오는 병사들이 닥칠까 두려워 물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外孫)이다. …”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etId=39&totalCount=39&itemId=sg&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types=r&searchSubjectClass=&position=5&levelId=sg_013r_0020_0010&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天帝&searchKeywordConjunction=AND|#]] “천제지자 혹은 황천지자(皇天之子)라는 어구(語句)는 건국신화 속 주몽에 대한 고구려인의 인식이 강렬히 투영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신화 속 주몽은 천제지자(天帝之子)로 기억되고 추앙받았다. 천제지자 관념은 「[[광개토왕비|비문]]」에 처음 등장하여 이후 국내사서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고구려가 신묘(神廟)를 두어 주몽과 하백녀에 대한 추앙을 이어갔음을 말하는 북사의 기록은 이러한 왕실의 시조인식이 주몽신화에 바탕하여 「비문」의 성립 이후로도 계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승호(2011), "「광개토왕비문」에 보이는 천제지자(天帝之子) 관념 형성의 사적(史的) 배경", 《역사와 현실》 81, p. 100, 132.][* “고구려 국왕은 스스로를 天孫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고구려인의 인식 속에서 天은 자연 현상이나 理法 등 관념적 존재가 아니라 인격신인 天帝로서, 왕은 그의 현신이며 후손으로서 신성한 천손이라는 고구려의 전통적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적 관념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구려식 천하관은 중국식 화이관과 달리 상술한 단계적 천하관의 형태로 구현되었다고 본 것이다.” 조영광(2015), "광개토왕비에 보이는 대외 관계와 고구려 천하관에 대한 연구 현황과 과제", [[동북아역사논총]] 49, pp.71~72.] * [[신라/왕사|신라의 군주]][* “건국 초부터 신라 국왕은 천자적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같다. 일찍이 소지마립간과 진지왕은 萬乘의 지위와 위엄이 있는 존재, 즉 天子的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리고 신라에서는 자국중심의 천하관이 확인된다. 우선 ≪삼국유사≫ 권1,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 서는 혁거세의 탄생을 “지금 천자가 이미 내려왔다(今天子已降)”로, 또 제2대 남해왕조에서는 “此王乃三皇之第二”라 하여 南海·弩禮·脫 解 3王을 “三皇”으로 표현하였다. 즉 [[박혁거세]]는 천자였으며, 남해·노례·탈해는 중국의 三皇과 같은 신성한 존재였던 것이다.” 김창겸(2004), "新羅 國王의 皇帝的 地位", 《신라사학보》 2, p.212.] * [[고려/왕사|전기 고려의 군주]][* 일반적으로 고려는 하나의 황제국을 자처하는, ‘[[외왕내제]]’로 볼 수 있는 이중 체제를 가졌었다고 이해되며, 이러한 ‘황제국 체제’가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완전히 와해되었다고 보고 있다. 한편 최종석(동덕여대)은 ‘외왕내제’론의 해석 방향성을 비판하며 [[고려/외왕내제 여부|몽골 지배 이전 고려에는 ‘황제국 체제(외왕내제)’라는 목적지향성이 부재하다고 주장했다.]] {{{-2 <조일수(2022), "몽골 제국의 유산으로서의 조명관계(朝明關係)와 중화주의 문제 재고(再考)", 《역사학보》 256, p.141.>}}}] * [[대한제국/황조|대한제국의 황제]][* [[1897년]] [[고종(대한제국)|고종]]이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개정했는데, [[송나라|대송]], [[원나라|대원]], [[명나라|대명]], [[청나라|대청]] 등의 중화질서에 따라 한 글자 국호 앞에 大 자를 붙인 형태였다. 또한 [[환구단]]을 짓고 천자만이 할 수 있는 의식인 하늘에 대한 제사를 지내면서 황제국임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였으며, [[광무]]라는 연호와 [[폐하]]라는 경칭을 사용하고, [[친왕]]을 책봉했다. 아울러 [[한청통상조약]]을 체결하여 한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화제국과 평등한 외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약소국]]으로 전락한 상태였기에, 10년도 못 가 [[을사조약|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국가의 독립([[한일의정서]])이 빠진 채 황실의 존립만 보장받았을 뿐이었다. 보호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는 [[고종(대한제국)|황제]]가 강제로 [[퇴위]]당하는 굴욕을 겪었고, [[순종(대한제국)|마지막 황제]]는 [[바지사장|실권 없는 허수아비]]로 연명하다가 [[1910년]] [[경술국치|한국이 병합되면서]] 13년의 짧은 황제국 체제를 마감하고 황제는 왕으로, 황실은 [[왕공족]]으로 전락했다.] * [[역사 관련 정보/중국 역대 군주|중국사의 군주 대부분]] * [[중국]]의 군주라도 천자는 아니었던 [[항우]], [[이정기]], [[오월(오대십국시대)|오월]], 그리고 [[동녕 왕국]] 같은 예외가 간간이 있긴 하다. 항우는 본래 [[초의제]]의 신하라는 명분을 내세워서 통치한데다 의제 시해 이후에도 당장 칭제하기엔 대내외적인 여건이 안 좋았고, 이정기와 오월은 특정 지방의 할거 정권에 불과해서 칭제하기엔 명분도 실리도 없었으며, [[정성공]] 가문은 [[남명]]이 없어진 뒤에도 주씨 [[명나라]]의 부흥을 내걸었기에 일부러 천자에 오르지 않았다. * 일반적으로 [[한족|한(漢)족]]을 제외하고, [[원나라|원]](元)/[[청나라|청]](淸)과 같은 정복 왕조와 [[요나라|요(遼)]],[[서하]](西夏), 그리고 한족화를 추진했던 [[북위]](北魏) 등의 비(非)한족 왕조가 천자국의 위상 그 이상이 되거나 스스로 황제가 되어 천자국을 선포하는 경우가 있었으므로, 오늘날 '중국'이라는 이름으로 묶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는 애매하다. * 기본적으로 [[중국]]의 [[황제]]들은 대부분 천자라고 불렸고, 중국 본국과 대한민국과 일본에서 표문에 중국 황제를 높임말인 '덕이 높은 천자'라는 뜻으로 성천자(聖天子)라고도 불렀다. * 천자도 추서가 있었다. [[삼국지|삼국시대]]에서도 [[손견]], [[조등]], [[사마의]] 등이 천자로 추서되었다. * [[태평천국]]을 세운 [[홍수전]]은 [[천왕]]을 칭하며 천자로 군림했는데, 전통적인 중원 왕조의 천자들과 달리 [[야훼]]의 아들이자 [[예수]]의 동생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기존 천자국인 [[청나라]]는 물론이고 [[삼위일체론|정통 기독교 교리]]를 따르는 서구 열강들도 이를 인정할 리가 없었기에, 그의 왕조는 청나라와 서구 열강에게 동시에 처맞다가 2대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 [[천황|일본 천황]] * [[수양제]]에게 '해지는 나라의 천자에게 해뜨는 나라의 천자가 보내노라.'로 시작하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국서를 보낸 사건]]이 유명하며, [[일본]]에서는 [[일본의 자국 찬양|일본의 자주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본다.]] 훗날 [[명나라]]와의 관계에서 명나라 황제로부터 [[아시카가 요시미츠]]나 천황이 아닌 황족이 [[일본 국왕]]으로 책봉되었음을 생각하면, 일본은 [[동아시아]]의 천자국 개념과는 동떨어졌고 호칭에 관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웠음을 알 수 있다. *천황을 아예 천자라고 직접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일본 제국의 문학자인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소설)|마음]]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메이지 천황]]을 시종일관 천자님(天子さま)이라고 부르며 존경한다.[* 주인공은 그냥 폐하(陛下)라고 부른다.] [[NHK 대하드라마]] [[신센구미!]] 초반 미부낭인대가 결성될 때를 보면 천황을 천자님이라고 하는 것을 볼수 있다. * [[남월]] 이후 [[베트남/왕사|베트남 군주 대부분]][* [[베트남]]은 지리적으론 [[동남아시아]] 국가지만, 문화적으론 [[한자문화권]]에 속한다.] * [[조타(남월)|조타]]는 본래 [[진시황]]의 신하였으나, 베트남 북부에 위치한 [[어우락]]을 정복하여 [[남월]]을 세운 후 베트남 최초로 칭제하고 천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진(영성)|진]]이 멸망한 이후 중원을 재패한 [[한나라]]의 눈치를 보느라 당당하게 천자를 칭할 수는 없어서 국내에서만 몰래 쓰는 수준이었고, 2대 군주부터는 왕을 칭하며 제후로서 통치했다. * 남월이 [[한무제]]에 의해 멸망한 후 베트남은 일시적으로 독립한 시기[* [[쯩 자매]], 전 리 왕조 등]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중국 왕조의 지배를 받다가, [[10세기]] [[오대십국시대]]의 혼란을 틈타 독립 왕조인 [[응오 왕조]]를 세웠다. 그러나 응오 왕조는 칭제하지 않고 왕을 칭하며 천자가 아닌 제후로서 통치했다, * [[980년]] [[딘 왕조]]가 [[대구월]]이라는 국호를 채택하면서, 베트남 군주들은 본격적으로 천자 칭호를 사용했는데, [[11세기]] [[리 왕조]]가 국호를 [[대월]]로 변경한 이후부터 [[19세기]] 초 [[떠이선 왕조]]까지의 베트남 군주들은 국내에서는 대월 황제를 칭하며 천자로 군림하고, 대외적으로는 [[안남]] 국왕을 칭하며 중국 천자로부터 책봉을 받았다. * 떠이선 왕조를 멸한 [[응우옌 왕조]]는 대월 대신 '비엣남(베트남)'이라는 새로운 국호를 채택하고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에 칭신하여 책봉을 받았으나, 국내에서는 계속 황제를 칭하며 천자로서 통치했다. 이후 베트남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긴 했으나, [[프랑스인]]들은 동아시아식 황제 칭호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던데다,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비주권군주제|명목상의 천자국 체제]]를 존속시켰다. 이후 베트남의 천자국 체제는 [[베트남 제국|일제의 괴뢰국 시기]]를 거쳐 [[바오다이 황제|마지막 베트남 황제]]가 [[베트민]]에 [[폐위]]당하면서 종식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