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자 (문단 편집) == 개요 == '''천자'''([[天]][[子]])는 '천제(天帝)의 아들', 즉 '[[하늘]]의 뜻을 받아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자문화권 [[천자국]]의 최고통치자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고대 전설 때부터 있어온, 중국 [[왕조]]의 주권자라 할 수 있는 칭호를 말한다. 천자의 뜻풀이는 말 그대로 하늘의 주인인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아들'인 천자(天子)로, [[하늘]]([[신]])에 [[제사]]를 지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봉선|봉선(封禪)]]'''을 거행할 수 있는 [[신분]]을 말한다. '천자(天子)'란 말은 본래 [[주나라]](西周)때 만들어진 말로 주(周)가 상(商)을 이기고 자신들의 [[정통성]]을 위해 만든 말이다. [[황제]]와 동격의 호칭이고 황제가 곧 천자로 간주되는 기간이 가장 길었으나 황제는 기원전 221년 [[시황제]]가 새로 만든 지위고 천자라는 지위는 그 전 [[주나라]], [[춘추전국시대]]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단지 이 때는 진시황 이후와 달리 황제가 아닌 '[[왕]]'이 천자의 칭호였다. 물론 왕이 천자의 칭호였던 시기는 주나라의 건국시기인 기원전 11세기부터 시황제의 중원 통일인 기원전 221년까지 약 800년 정도지만, 황제가 천자의 칭호인 시기는 시황제가 중원을 통일한 기원전 221년부터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한 1912년까지 무려 2133년이나 되니 황제가 곧 천자로 간주되는것은 당연했다. 시황제 이전에는 [[왕]](王)이 본래 천자의 칭호였으며 오직 [[주나라]] 천자만이 왕이었고, 나머지 [[제후]]들은 [[공]](公), [[후]](侯) 등을 칭했다. [[춘추시대]]의 [[춘추오패]]가 그 예시. 그러나 중국 기준 이민족이던 [[초(춘추전국시대)|초나라]]의 [[초무왕]]이 먼저 주나라와 동일하게 왕을 자칭한 이후로 수많은 [[제후]]가 왕을 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나라 왕 외의 열국의 왕들을 천자라고 부르진 않는다. 결국 [[전국시대]]에 들어서는 주나라 천자의 권위가 약해지면서 제후들이 너도나도 칭왕하면서 왕이란 칭호가 너무 흔해져버렸고 [[고조선]] 같은 주변국 지도자들까지 왕을 칭했다. 이에 전국시대를 통일한 시황제가 차별화되는 칭호를 새로 만들어낸 것이 [[황제]]였다. 춘추전국 때보다 한 단계씩 칭호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격이다. 황제가 [[정치]]적인 절대자라는 뉘앙스가 강한 데 비해 천자는 [[종교]]적 뉘앙스가 더 강한 호칭이다. [[도교]]식 사고방식으로 천자의 아버지는 천황(天皇)으로 [[상제]]([[옥황상제]] 하나가 아니다)를 의미한다. 상제는 하늘의 천황뿐만 아니라 지황(地皇)과 인황(人皇) 등을 총괄하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인 고대 중국의 사상으로는 의인화되어 신격화된 하늘(天) 그 자체의 아들이란 뜻이다. 옛날 농민들은 가까운 주변의 [[사직]]이나 [[조상]]에 제례를 지냈지만 감히 '[[하늘]]'에 직접 말을 걸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것은 일반인의 역량이 아니고 수장인 [[왕]]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었다. 고대 중국인의 의식에서 하늘은 대자연의 질서 조절자이고 변화무쌍한 날씨의 주재자이며 시간의 창조자다. 하늘이 창조한 시간은 순수한 세월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적 사실의 연속이다. 하늘은 또 역(歷, 자연의 주기적 현상)이라는 질서의 거룩한 투영이며 그 실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하늘은 [[자연]]을 주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대한 제례는 하늘과 같은 권위를 갖춘 사람이 집행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중국의 [[군주제]]가 붕괴하는 [[신해혁명]]까지 수천년간 유지됐다. 이로 인하여 [[조선]]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낼 때 달력을 받아왔다. 하지만 중국을 기준으로 만든 달력은 조선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기에 세종이 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칠정산]]을 만들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과 소통하며 하늘과 대화할 수 있는 왕, 즉, 인간의 몸을 받아 하늘로부터 태어난 하늘의 아들인 천자만이 자연의 은혜를 백성에게 나누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천자만이 하늘에 무언가 빌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천자의 밑에서는 각각의 수장이 신분과 재력에 걸맞은 의식을 실시한다. 대국의 [[제후]]는 자기 나라의 [[사직]](산과 강)에 제례 지내고 부족장은 그 영토내의 사직에 제례 지낸다. 천자는 하늘에 제례 지내지만, 그 하늘은 천자에게 있어서는 조상이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조상을 기리며 제사를 지냈지만, 천자에게는 조상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것이 일반인보다 훨씬 중요한 의식이었다. 천자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적 존재나 전설적 인물로 이어진다. 그런 인물들은 또 직접 천자에 이어진다. 바로 그렇기에 왕은 큰 권력을 부여받아 민중의 안녕과 국가의 번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존재라고 믿었다. 천자는 하늘에 제례 지내지만 제례의 대상은 천자의 조상이며 동시에 아버지로서의 하늘이어서, 말하자면 하늘은 조상과 한 몸인 영적 존재다. 고대 중국에서는 제례마다 천자가 하늘에 말을 걸기 위한 멋진 제단을 만들어 거기에 가장 훌륭한 제물을 올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 제물을 바치기도 했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천자의 제례는 반드시 격조 높고 훌륭하게 집행되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례의식을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다. 사회체제나 관례는 이렇게 생겨 예(禮)라는 형태로 정리되었다. 마침내 생산력의 발달에 따라 도시국가가 출현하고 제례는 시절마다 빈번히, 그것도 대대적으로 행해지게 되었다. 그라네는 고대 중국의 노래를 기초로 도시국가 출현 후의 중국인 신앙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 옛날 [[마을]] 중심은 왕과 가신들의 주거였다. 왕이 사는 곳에 가신이 모이고, 왕의 [[궁궐]]을 만들고, 가신들도 신분에 맞는 생활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고 귀족적인 생활을 지키기 위해 왕의 주변을 튼튼히 했고, 겨우 먹고 살 정도의 생활을 하는 민중을 깔보며 왕의 권위를 방패 삼아 자신들의 신분을 지키려 했다. 거기서 정치가 시작된다. 그것을 '덕'(德)이라고 말했다. >덕(정치적 의미)은 도시에 뚜렷이 나타난다. 도시는 한 사람의 '조상'이 건설한 것으로 되어있다. 왕은 우선 산이나 언덕에 올라 정상에서 햇볕이 닿는 산허리와 응달이 지는 산허리(즉 나라의 음과 양)를 확인하고, 강의 흐름이나 산의 위치를 관찰한다. 마을을 정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왕도 일반적으로 높은 곳을 골라 나라 전체를 본다. 이어 햇볕과 그림자를 관찰해 도시의 바른 방향을 정한다. 겨울 초입에 길흉을 점친 뒤 "정"(定)의 뜻을 가진 별자리가 저녁 무렵 자오선에 달했을 때 성벽 공사에 착수한다. 성벽은 왕과 마을의 격(格)에 따라 진흙이나 돌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동서남북에 하나씩 문을 설치하고 사각형으로 성벽을 쌓았다. 이어 사당과 궁궐과 집이 세워졌다.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여 살면서 잉여물을 비축하는 시설을 만든다거나, 거주 이외의 목적(제례용)으로 건물을 짓고 문자를 만들었다. 마을 중심에 사는 가신(귀족)은 당연히 성벽의 중앙에 거처를 정한 주군에게 생활을 의존한다. 이 공동체는 농촌공동체와는 다른 조직이었지만, 농민의 집과 마찬가지로 연대를 중시하고 조화를 중하게 여겼다. 주군의 권위는 절대적이었고 주군은 가신들의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가신들은 질서 있는 집단이 되었다. 그 가운데 분명한 계급이 있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대지와 인간이 조화를 추구하며 서로 부딪히는 가운데 집단이나 개인의 행위에 방향을 세우고, 이를 조정하는 현자가 두각을 나타낸다. 그 중에는 점술 등의 재능을 인정받은 자도 나온다. 이렇게 서서히 특별할 재능을 가진 인물이 수장으로 인정되어 그 가운데에서 왕이 생겼다. 왕은 인간에게 은혜를 베푸는 대지를 주재하는 '하늘의 주권자'가 된다. 부족장의 위에 선 왕이다. 이런 왕은 '천자'라 불린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조화시키려면 자연의 주재자이며 절대적인 힘을 가진 하늘과 통하는 인물이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따라서 천자가 될 인물은 늘 하늘과 한 몸이 되어 하늘을 대변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해서 혈통을 하늘과 이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가계도 신화가 창조된다.[* [[공자]] 같은 사람도 가계도를 위조했다는 의심을 산다.] 혈통을 중시한 것은 왕뿐만 아니라 멀리 공자 이전부터의 전통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상나라]]나 [[주나라]] 시절 [[제정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기에 해당하고, 이후에는 글자 그대로 '하늘의 아들'이라기보다는 '[[천명]]을 받아 천하를 올바르게 통치하는 자'라는 뜻이 된다'''. 기원전 221년 중원이 통일되고 통일 제국이 된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황제]](皇帝) 칭호와 같이 쓰이게 되었다. [[상나라]](商), [[주나라]](周) 시대까지는 천자의 정치적 호칭은 [[왕]]이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부용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들이 왕을 자칭함에 따라 시황제가 지난 [[전국칠웅|육국]]과 같은 호칭에 불쾌하여 삼황의 황과 오제의 제를 붙여 [[황제]]를 칭하면서 진시황 이후부터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하고 공화국이 되기전까지 천자는 왕이 아닌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다. 천자의 상징은 본디 아홉 개의 가마솥 [[구정]](九鼎)이었다. 정鼎이란 다리가 셋 달린 솥으로, 일상용이 아닌 제례용의 솥을 말한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구주|9주]](옛 [[하나라]]에서 다스렸다는 9개 지역. 넓은 의미에서는 중국 전체)를 상징한다. 그러다 시황제에 이르면서 [[전국옥새]](傳國玉璽)로 바뀌었다. 기록에 따르면 [[주나라]]가 멸망했을 때 구정의 소유권은 [[진소양왕]]으로 넘어왔지만, 갑자기 증발이라도 한듯 사라졌다고 한다. 정확히 얘기 하자면 함양으로 운송 도중에 사수(泗水)에 빠졌다고 하고 그 이후로 사라졌다. 진시황도 구정을 찾기 위해 목욕재계를 하고 굿판을 벌이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 대신이라긴 뭐하지만, 진시황은 열두 제후국의 무기를 모두 거두어 12개 금속상을 만들었다. 옹중(翁仲)이라 하는데, 옹중은 이후 한나라까지 황궁 앞을 지켰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