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차승원 (문단 편집) === 1990년대 후반 === '''최초로 모델에서 배우로 전향한 케이스'''며, 모델 출신 [[남자]] 배우들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 중 하나였다. 사족이지만, [[이천희]]의 모델 데뷔 날이 공교롭게도 차승원의 모델 은퇴식 하는 날이었다고 [[SBS]]의 한 토크쇼에서 나왔을 때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지금이야 [[배정남]] 같은 잘 나가는 모델도 있고, [[김우빈]]이나 [[이종석(배우)|이종석]]처럼 모델 출신 배우들도 많지만, 당시는 [[남자]]가 모델을 한다고 하면 완전 [[정신병자]] 내지 [[게이]] 취급받을 정도로 인식이 안 좋은 시절이었기에,[* 당시엔 지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게이]]와 같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취급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썩 좋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홍석천]] 같은 사람들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희화화되는 개그 소재로라도 편하게 쓰일 수 있지만, 당시엔 게이가 정신병자와 동급으로 취급될 정도였다.] 모델계 입성 당시 [[단국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재학 중이던 차승원은 담임한테서 빠따까지 맞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심지어 키가 안 닿으니 점프해서 뺨을 날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요즘 단대 부고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선생은 그때 차승원 때문에 골치 아팠지만 그래도 그때 일에 대해서는 차승원에게 미안해한다고 한다. 모델 생활 이후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 등에 출연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가 연기생활을 시작한 것은 90년대 말부터였다. 1997년 영화 《홀리데이 인 서울》의 단역에 출현해 '''세기말적 암울한 분위기를 보여줬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해가 서쪽에서 뜬다면.jpg|width=100%]]}}} || || {{{#ffffff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변지민''' }}} || 1998년도 [[임창정]] 주연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는 모델 출신답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자랑했다. ||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문명특급차승원.jpg|width=100%]]}}} || || {{{#!wiki style="margin:-6px -10px" [[파일:문명특급차승원2.jpg|width=100%]]}}} || 또한 쇼 프로그램에도 빈번히 출연해 '잘생기고 분위기 있는 외모' 와 어울리지 않게 재미있는 입담을 선보여 대중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고, 캐스팅이 영화 쪽보단 덜 까다로운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조연을 맡으면서 서서히 얼굴을 알리게 된다. 다만, 이듬해까지는 영화계에서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계기는 연기가 아닌 다른 분야였으니 그게 바로 [[토크쇼]]였다. 1998년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에 보조MC로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김혜수]]의 플러스유까지 '''계속해서 연속해서 대박이 터졌던 것. 여기서 차승원은 특유의 입담으로 대중들의 뇌리에 본인의 이름 석 자를 확실히 각인시켰다.[* 지금이야 김혜수의 진행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김혜수의 플러스유 초창기에는 토크쇼 진행에 미숙하여 전임자였던 이승연과 비교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조MC로 들어온 차승원이 이를 잘 메워줬기 때문에 PC통신 게시판에서는 '김혜수가 아니라 차승원의 플러스유라고 불러야 되는 거 아니냐'는 반응까지 있었다.] 토크쇼의 맹활약 덕분에 연기자로서도 지위가 상승,'98년 후반기부터 99년까지 각종 TV 드라마, 시트콤 등지에서 주연으로 기용되기 시작했다. 영화 쪽에서도 99년 [[이성재]], [[김희선]] 주연의 판타지멜로 <자귀모>에서 처음으로 비중 있는 조연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대중의 인식은 그냥 얼굴만 잘생긴 예능인 + TV배우 정도에 불과. 인기를 얻었지만 필모그래피 자체도 얼굴만 강조하는 뻔하디 뻔한 TV 멜로드라마였을 뿐이었다. TV 쪽보다 까다로운 영화계에서도 이런 인식은 마찬가지였던 상황. 이 당시 차승원에 대해 [[발연기]] 운운하는 얘기[* 이런 반응은 1999년에 방영했던 MBC 주말연속극 [[장미와 콩나물]]에서 두드러졌다. 차승원의 경우 캐릭터성이 뚜렷한 배역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이 드라마에서의 셋째 아들 배역은 거의 생활연기 위주였기 때문에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밋밋한 감이 있었다.]도 있었으나, 엄밀히 말해 그냥 99년 후반기 이전의 차승원은 [[연기력]] 자체를 보여줄 무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뭐 여기까지라면 그냥 잘생기고 예능감 있는 TV 연기자 내지 방송인 정도로 커리어가 흘러갔을 터인데 1999년 연말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영화)|세기말]]》에서 평가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 이 영화에서 차승원이 자신에게 얼굴만 있는 게 아니라 [[연기력]]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했던 것. 당시 전문적인 평자들이 이 영화를 논하면서 이구동성으로 언급한 부분이 "차승원에게 저런 연기력이 있었는 줄 몰랐다"는 얘기다. 덕분에 영화계에서 차승원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에선 이런 경우가 아직 흔치 않지만 할리우드에서는 짐 캐리, 아담 샌들러나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와 같은 코미디 전문 배우들이 정극 배우로서 실력을 인정받는 경우가 꽤 흔한 편이다. 극에 잘 녹아들 정도로 코미디 연기를 잘 소화할 경우 다른 장르에서의 연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단순한 미남배우가 아니라 흥행력과 연기력을 갖춘 특급 유망주로 인정받게 된 것. 이렇게 되어 이듬해인 2000년 작품인 《신혼여행》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같은 해 연말 개봉한 당대 최고의 블록버스터 《[[리베라 메]]》에서도 당시에 최고 톱스타였던 [[최민수]], [[유지태]]와 동급으로 지위가 격상했다. 특히 《리베라 메》의 경우, 대중들에게 배우로서 차승원을 처음 각인시킨 첫 작품이다. 《[[세기말(영화)|세기말]]》은 흥행에서 폭망했던 터라 대중들에게 차승원의 연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다만 리베라 메도 흥행에는 참패했다. 서울관객 53만을 모아 나름 성공하지 않았냐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거액이었던 45억 원을 투입한 작품이었다.] 어쨌든 이런 차승원의 경우는 '''매우 드문 케이스'''다. 모델출신으로 연기자나 얼굴로 주목받은 배우들은 부지기수지만, '''차승원처럼 데뷔 이후 얼마 되지 않아 연기력까지 인정 받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